경제
핀란드 역사, 자유와 독립을 향한 여정
입력 2019-05-12 17:40 


요즈음 국내에서 핀란드에 대한 관심이 높다. 핀란드 하면 끝없이 펼쳐지는 삼림과 맑고 깨끗한 호수를 떠올린다. 성실하고 진지한 핀란드 사람들, 앞선 복지, 열린 교육, 간결하면서도 편안한 디자인, 혁신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것들이 지금의 핀란드에 대한 우리의 관심 분야라면 과거에는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선택한 대 소련 정책 때문에 핀란드라는 이름이 종종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동서 냉전 시대 핀란드의 대 소련 정책은 강대국의 옆에 있는 작은 나라가 생존하기 위한 현실적이고 현명한 정책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소련에 대해 굴종적인 유화정책이라는 비난 섞인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국내에 핀란드라는 나라의 연원, 1917년 독립에 이르기의 경과, 독립한 후,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동안과 그 이후에 핀란드와 소련 사이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소개하는 자료가 별로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비록 개괄적이나마 핀란드의 기원부터 오늘 날까지의 역사 전체를 소개하고, 2차 대전 이후 핀란드와 소련과의 관계를 전체적인 맥락에서 속에서 살펴보려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핀란드 사람과 핀란드 말의 기원을 소개하여 핀란드의 연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AD 800년대에 시작된 바이킹 시대 이후 핀란드의 기독교화 과정, 그 후 이어지는 600년 동안의 스웨덴 시대에 대한 설명은 핀란드라는 정치 단위의 발생과 성장에 대한 의미 있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1809년 핀란드 전쟁으로 핀란드가 러시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경위와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유익하다. 스웨덴 시대와 러시아 시대의 성격에 대한 정교한 분석도 눈여겨 볼만하다. 우리는 자주 핀란드가 600년간 스웨덴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서 100년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았다는 말을 듣는다. 때로는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는 표현도 사용되는데 이 책은 이 시대에 대해 사실에 기초한 성격 규명을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립 이전 핀란드의 스웨덴과 러시아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그 이후 시대에 대해서도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939년 겨울 소련의 침략으로 시작된 '겨울전쟁'과 그로부터 1년 반 정도가 지난 시점인 1941년 여름에 다시 소련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계속전쟁'의 원인과 진행, 그리고 결말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두 전쟁에 대한 이해는 전후 핀란드의 대 소련관계를 들여다보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이 두 전쟁은 전사 차원에서도 관심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겨울전쟁에 대한 에피소드, 계속전쟁이 시작되기 전 나치 독일과 공동전투자로 손을 잡는 과정, 전쟁의 진행과 휴전, 그리고 이 전쟁이 핀란드 국민들에게 갖는 의미와 교훈에 대해 상세한 설명도 제시하고 있다.

이어서 파시키비 라인이라고 불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의 대 소련 외교 정책에 대해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파기키비 라인을 핀란드의 대 소련 유화정책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패전 후 핀란드가 소련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한 지난한 노력의 일환이었고 실제로 핀란드는 이런 노력의 결과로 다른 동유럽 국가들과 달리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방식과 독립을 지켰다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필자는 그 비결을 소련의 전략적 이익을 충분히 고려하지만 핀란드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파시키비 대통령과 핀란드 국민들의 확고한 결의와 절도 있는 행동의 결과로 보고 있다.
파시키비에 이어 1956년 핀란드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981.10월까지 약 26년간 핀란드 대통령을 역임한 케코넨 시대에 대한 조명은 기본적인 기조가 비판적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후 핀란드 외교의 큰 별로 알려진 케코넨 시대에 대한 철저하고 깊이 있는 분석은 통찰력을 말하기 전에 용기 있는 일로 보인다. 케코넨 시대의 '공'에 대해서는 그렇다 치고 그의 시대의 '과'에 대한 필자의 판단이나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평가에 대한 동의 여부에 관계없이 케코넨의 시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다양한 자료의 제공은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케코넨 시대의 '과' 또는 비용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케코넨의 연설, 그가 소련과 합의한 공동 성명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때로는 이들을 전 후임 대통령 시대의 것들과 비교함으로써 케코넨 시대의 특징과 문제점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최대한 사실에 기초하려한 점이 돋보인다.
핀란드의 역사를 '자유와 독립'이라는 관점으로 일관하여 설명을 시도하고 그 긴 여정 속에서 '계속전쟁' 시기와 케코넨 대통령 시대를 예외적이라고 한 필자의 시각은 공감할지 여부에 관계없이 핀란드 역사 전체를 조망하는 내공이 엿보인다. 케코넨 이후 역사에 대한 부분은 anti climax 같은 느낌이 있으나, 오히려 이 것은 핀란드 역사가 다시 핀란드 국민들의 결에 맞게 차분한 가운데 민주주의, 인권, 복지, 교육, 양성평등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으로서 복귀하는 단계를 다루기 때문으로 보인다.
핀란드가 북유럽 십자군으로 기독교 문명에 속하게 되고 600년간 스웨덴의 시대를 거치고, 100년에 걸친 러시아 시대에도 스웨덴 시대의 종교, 법률, 사회, 제도, 언어 등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어 핀란드가 계속 서유럽 국가로 남는 과정에 대한 설명, 그리고 냉전 시대가 끝나고 소련이 붕괴된 이후 1995년 EU에 가입함으로써 핀란드가 다시 서유럽의 영역 안에 닻을 내린다는 관찰 역시 핀란드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자유와 독립이라는 주제로 핀란드 역사를 일별하는 작업은 단순화와의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평면적인 기술이 아니라 오늘날의 핀란드가 있게 된 내력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하려는 것으로서 의미 있는 지적 작업으로 평가할 만하다.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핀란드에 머물면서 언어적 제약 속에서 핀란드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에 대한 설명을 위해 역사적인 자료들을 살펴보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핀란드의 외교,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의 대 소련 외교정책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핀란드와 우리의 사정과 형편이 닮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아 핀란드의 사례가 우리와 딱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우리가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참고해 볼만한 시사점들을 제공하고 있다. 필자의 결론은 결코 유리하지 않았던 지리적, 국제 정치적인 위치와 여건 속에서도 오늘날 핀란드가 세계에서 모범적인 국가를 이룩한 것은 핀란드 국민들의 정직성, 침착성, 합리성, 인내심과 더불어 자유를 향한 끝없는 열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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