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벌떼 주총` 막는다…하루 개최기업수 제한
입력 2019-04-24 17:54  | 수정 2019-04-24 20:38
지난달 22일, 27일, 29일 사흘간 상장사 1151곳이 주주총회를 개최했다. 12월 결산 상장사가 2000여 곳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3일 동안만 약 58%에 달하는 기업이 동시에 주총을 연 셈이다. 특히 29일에는 526개사가 주총을 열면서 여러 회사 주식을 가지고 있는 주주들은 주총에 참석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사실상 박탈당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주총 집중도(슈퍼주총데이 3일 기준)는 2017년 70.6%에서 지난해 60.7%를 거쳐 올해 57.8%로 다소 완화되고 있고, 같은 기간 최고로 많은 기업이 몰리는 날을 기준으로는 48.5%에서 올해 26.4%로 크게 개선됐다.
다만 증권가에서는 주총 분산 노력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3월 말에 집중된 것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가 매년 반복되는 슈퍼주총데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 주총을 개최하는 회사 숫자를 강제로 제한하는 정책을 내놨다. 내년부터는 선착순으로 주총 일정을 받아 하루 최대 100곳 안팎으로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주총 내실화를 위해 주총 소집통지일을 주총 전 2주에서 4주로 변경하고, 통지 시 사업보고서와 외부감사보고서 고지를 의무화해 3월에 집중된 '벚꽃주총'이 분산될 예정이다. 일부 기업은 5월에 주총을 여는 '장미주총' 현상도 나타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24일 법무부와 협의를 거쳐 '상장회사 등의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금융위는 일일 최대 주총 개최 기업 수를 제한할 방침이다. 특정일이나 특정 주간 주총 개최 기업 수 한도를 정해놓고 선착순으로 신청을 받는 방식이 유력하다. 대만은 2015년부터 일자별로 최대 100개 기업만 주총을 열도록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받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주총 내실화를 위해 주주들의 많은 참여를 유도하고 정보 공개를 강화하면서 주총 일정은 3월 말에서 5월로 변화할 전망이다. 앞으로 기업은 주총 소집 통지 때 참고 서류에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반드시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주주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안건을 분석할 수 있도록 주총 소집 통지 시한도 '주총 전 2주'에서 '주총 전 4주'로 변경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상장사의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사업 연도 경과 후 90일 이내)에 맞춰 외부감사 결과가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3월 말 관련 보고서가 확정되고, 주총 통지 일정이 시작되면 준비를 빨리 하지 않은 기업은 5월께나 주총을 열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은 주총 참석자에게 기업이 소정의 선물을 주는 방안을 허용하고, 주주 이메일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았다. 또 주주의 전자투표 참여 확대를 위해 공인인증서 이외에 휴대폰·신용카드, ID(외국 거주자) 등도 대체 인증 수단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사회의 임원 추천 사유 명시와 사외이사 후보의 독립적 직무수행계획서 제출이 의무화된다.
금융위는 5월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상법, 자본시장법 등 관계 법령의 연내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총 내실화 방안은 주총이 회사 최고 의사결정기구임에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참여율이 낮다는 비판에서 마련됐다.
정부가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내놨지만 정작 주총 개최 의무가 있는 상장사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실제 주총 대란을 야기했던 '3%룰'(지배주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의 최대 3%만 행사하도록 제한)과 같은 규제가 남아 있고 '출석 주주의 과반 찬성, 발행 주식 총수의 25% 찬성'이란 주총 의결 요건도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상장사협의회에 따르면 올해 주총을 연 상장사 1994곳 중 183곳이 의결 정족수 부족으로 주요 안건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상장사 관계자는 "이번 대책을 보면 여전히 주총 부결 사태를 기업의 준비 소홀로 보고 있다"며 "주총 분산 역시 법제화를 통해 기업들의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어 또 다른 규제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진영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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