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항공 관측으로 고농도 미세먼지 주범 밝힌다
입력 2019-03-22 09:03 
20인승 여객기를 연구용으로 개조한 미세먼지 관측 전용 항공기 `비치크래프트 1900D`. 양날개와 좌·우측, 상단의 항공기 표면에 총 6개의 흡입구(오른쪽)가 설치돼 있어 비행 중 외부 대기를 항공기 안쪽 분석 장비로 빨아들여 실시간 분석할 수 있다. [사진 제공 = 미세먼지 국가프로젝트 사업단]

지난 1일 도입된 국내 첫 미세먼지 전용 관측 항공기 '비치크래프트 1900D'가 최근 시험비행을 마치고 서해상에서 중국 등 국외에서 넘어오는 미세먼지를 집중 관측하는 첫 임무를 시작했다. 내달부터 6월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는 도로변과 공장, 사업장 등 위를 날면서 국내 발생 미세먼지를 관측한다. 대기오염물질의 성분별 공간분포와 이동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항공 관측을 상시적으로 할 수 있게 된 만큼 미세먼지 발생 원인과 오염원별 기여도, 봄·겨울철 미세먼지 차이 등을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립환경과학원과 범부처 미세먼지 국가프로젝트 사업단은 21일 충남 태안 한서대 비행장에서 각종 관측 장비가 탑재된 비치크래프트 1900D를 공개하고 향후 관측계획을 밝혔다. 안준영 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은 "현재 서해상에서 국외 유입 오염물질의 공간적 분포와 이동경로, 서해안 석탄화력발전소와 산업단지의 오염물질 배출을 관측하고 있다"며 "이달 말까지 이어지는 서해상 관측은 고농도 미세먼지 발생 사례에서 국외 미세먼지 유입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주목적"고 밝혔다. 약 10시간의 시험비행을 거쳐 이달 9일부터 서해상에 투입된 이 항공기는 현재까지 누적 100시간을 관측했다.
미세먼지 사업단의 비치크래프트 1900D는 한서대의 20인승 여객기를 연구용으로 개조한 중형 항공기로 국내 연구용 항공기 중 최대 규모다. 상공 300~8000m 구간에서 한 번에 최대 5시간까지 비행 가능하며 연구자는 최대 6명까지 탑승할 수 있다. 항공기 표면에 설치된 흡입구 6개를 통해 비행 중 외부 대기를 항공기 안쪽 분석 장비로 빨아들여 실시간 분석한다. 최대 7개의 관측 기기를 탑재할 수 있고 한 번에 12~15종의 항목을 관측한다. 필요에 따라 교체 설치도 가능하다. 풍향, 풍속 등 기상현황도 기본적으로 함께 관측한다. 순항속도는 시속 526㎞ 수준이지만 지표면 가까이에서 날며 오염물질을 관측할 때는 더 느린 속도로 비행하는 편이 유리하다.
미세먼지 국가프로젝트 사업단이 연구용으로 개조한 `비치크래프트 1900D`. 충남 태안 한서대 비행장에서 비행 후 정비 중인 모습. 길이 17.6m, 높이 4.7m에 최대 탑재중량은 1.95t이다. [사진 제공 = 미세먼지 국가프로젝트 사업단]
폐와 혈관 깊숙이 파고드는 지름 2.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이하의 초미세먼지(PM2.5)는 일반적으로 기체 상태로 배출된 오염물질이 대기 중에서 빛에 의한 화학반응을 거쳐 고체 상태로 산화되면서 생성된다. 사업단 항공기는 여러 성분을 동시에 관측할 수 있어 1차 배출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이런 2차 생성 미세먼지의 생성반응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다. 이전에도 항공기를 이용해 국내 대기질을 관측한 적은 있지만 한시적이었거나 매우 제한된 종류의 오염물질을 관측해 신뢰도 높은 데이터를 축적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안준영 연구관은 "질산염, 황산염 등 미세먼지의 조성뿐만 아니라 미세먼지 생성반응의 재료가 되는 오염물질, 반응에 관여하는 산화제 등 크게 3가지를 동시에 관측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가 관측하는 대표적인 대기오염물질은 화력발전소에서 많이 나오는 이산화황(SO₂)과 자동차 배기가스의 이산화질소(NO₂), 주로 석유화학 공장이나 숲에서 배출되는 아세톤, 벤젠, 톨루엔 등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다. 미세먼지 생성반응에 기여하는 물질에는 암모니아(NH3), 일산화탄소(CO) 등이 있다. 1㎛ 이하 극초미세먼지(PM1)의 크기별 수농도, 미세먼지 크기별(0.5∼20㎛) 전체수농도도 측정한다. 이날 국립환경과학원은 40분간 태안~서산 사이 서해안 150㎞ 구간을 날며 항공 관측 시연을 했다.
비치크래프트 1900D는 지난해 4월 미국 항공업체 글로벌에이비에이션테크놀로지스(GAT) 대만지사로 이송돼 약 10개월간 개조 작업을 거쳤다. 비행 중 대기를 항공기 안쪽 분석 장비로 빨아들이는 흡입구 6개를 항공기 표면에 설치했고, 장비를 탑재할 공간과 발전기 추가 용량을 확보했다. 개조된 항공기는 입국 이틀 전인 지난달 27일 시험비행을 통과하고 미국 연방항공청(FAA)에서 최종 운용 허가를 받았다.
`비치크래프트 1900D`의 서해안 관측 임무 비행경로. [자료 제공 = 국립환경과학원]
앞서 2016년 5~6월 한미 양측 과학자 500여 명이 참여한 '한미 공동 대기 질 조사(KORUS-AQ)' 연구진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용 항공기 'DC-8' 등 항공기 2대를 비롯한 인공위성, 선박, 지상관측소 등을 총동원해 한국 대기 질을 입체적으로 관측한 경험이 있다. 다만 겨울철 고농도 미세먼지는 아직까지 항공 관측 사례가 없다. 안준영 연구관은 "고농도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봄철과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관측을 할 계획"이라며 "계절에 따른 미세먼지 발생 양상 차이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KORUS-AQ 총괄책임자 제임스 크로퍼드 NASA 랭글리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매일경제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비치크래프트 1900D는 DC-8보다 작지만 그만큼 더 경제적이기 때문에 수시로 자주 띄울 수 있다"며 "전국의 주요 비행지점을 정해 놓고 주기적으로 관측을 이어나간다면 도로, 사업장 등 오염원별 미세먼지 배출량을 정확하게 산출하고 효과적인 저감 대책을 마련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KORUS-AQ와 미세먼지 사업단 과제에 모두 참여한 김세웅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사업단 항공기는 우리가 숨 쉬는 지표면 가까이에서 더 느리게 비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DC-8은 지표면 위 700m가 최대지만 비치크래프트 1900D는 상공 300m 높이까지 낮게 날면서 관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KORUS-AQ의 최종 분석보고서는 올해 말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2017년 7월 한미 연구진은 늦은 봄철 미세먼지 기여도는 국내가 54%로 중국(34%) 등 국외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을 담은 예비 분석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일반적으로 봄철에는 국내 영향이 더 크고 겨울철에는 국외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난다. 크로퍼드 연구원은 "최종 분석보고서는 앞서 공개한 예비 분석보고서와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도 "다만 이후에 국제학술지 논문 발표가 이뤄진 만큼 분석 결과의 신뢰도는 더 높아졌다"고 밝혔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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