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세가 어려울수록 北과의 지식교류로 이해 넓혀야"
입력 2019-03-07 14:03 
박경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교수가 1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정세가 어려울수록 북한과의 지식 교류·협력을 계속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2011년부터 매년 북한의 신진 학자들을 캐나다로 초청해 연수 기회를 제공하는 '캐나다-북한 지식교류 협력 프로그램(Canada-DPRK Knowledge Partnership Program·KPP)을 이끄는 박경애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교수는 매일경제신문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박 교수와의 만남은 1일 대면 인터뷰와 6일 서면 보충 질의·응답 등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KPP는 북측 학자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북아메리카 지역 유일의 연수 프로그램이다. 북측 학자들은 캐나다에서 UBC에 개설된 영어회화 강좌는 물론 학부·대학원 과정 수업들을 자유롭게 수강하고 오타와·토론토 등 주요 도시를 방문해 경제·금융·법조·산림 분야 전문가들과 토론을 갖기도 한다.
박 교수는 회담 결과를 아쉬워하면서도 북측이 국제사회와 활발하게 교류·협력하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북측이 내부적으로 주요 대학에 경영전문대학원(MBA) 개설을 준비하고 국제관계학원을 신설하는 등 국제사회와 발맞추기 위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북미지역 유일 北교수 초청 프로그램 10년째 주도
■밴쿠버에 온 北교수들이 '큰누님'으로 부르며 따라
■北김일성대 재정학부 부학장도 KPP 참여교수 출신
▷어떤 일로 평양에 다녀왔나.

-올해 KPP에 참여해 밴쿠버에 파견될 북측 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왔다. 공교롭게도 평양 체류 도중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열차로 떠났다. 평양에서는 김 위원장이 떠난 직후 소식이 알려졌다. 다음 날인 일요일에는 휴일임에도 사람들이 다 나와서 정상근무를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우리 위원장이 기차를 타고 (하노이까지) 먼길을 떠나 고생을 하는데 우리가 집에서 편하게 쉴수가 없어서 나와서 일을 하기로 했다'고 대답했다.
▷북측에서는 KPP에 어떤 학자들이 참여하나.
-주로 30대에서 40대 초반의 경제·경영·금융·무역·산림 분야 대학 교수들이 참여한다. 북측과 협력 하에 각 대학 심사와 영어시험을 거쳐 6명을 선발하고 인터뷰를 거쳐 확정된다. 최근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산림과학대학이 생겨서 지난해에는 소속 교수 3명이 처음으로 KPP에 참여했다. 나이 차이가 많다보니 북측 학자들이 나를 '큰누님'이라고 부른다. KPP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북한으로 돌아가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학문적으로 업적을 내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 교수들을 참여시키는 이유는 그들이 학생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으로 자신들이 캐나다에서 보고 배운 지식들을 돌아가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측 교수들이 적응을 잘 하나, 돌아가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
-북한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경영·경제학도 외부에서 통용되는 일반적 내용과 완전히 다르지는 않은 것 같다. 특히 경영학은 더욱 그렇다. 서로 쓰는 학문용어도 비슷해 북측 학자들이 강의실에서 쓰이는 영어도 귀에 잘 들어온다고 했다. KPP로 캐나다에 왔다가 돌아간 북측 교수들이 소속 대학에 새로운 학과를 만들거나 강좌장(학과장 격)들도 많이 됐다. 한 대학에서는 KPP에 참여했던 교수가 '개발학과' 신설 작업을 주도했다. 새로운 강의를 만들기 위해 캐나다에서 연구서적도 많이 들고간다. 번역이나 저술 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강좌장들이 많이됐다. 우리의 일반적인 대학 학과장은 '행정직' 개념이지만 북측에서는 해당 분야에서 학식과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강좌장이 된다. 김일성대 재정학부 부학장도 KPP출신이다.
■"나는 교육자…교육받을 권리는 보편적 인권"
■北 "세계대학랭킹 들려면 어떻게 하나" 관심
■北교수들, 휴일에 만두 빚으며 향수 달래기도
▷어떻게 북측 학자들을 정기적으로 초청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나.
-학부(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직후 미국 유학을 떠나 박사학위 받고 미국에서 10년 정도 가르치다가 밴쿠버에 있는 UBC로 오게 됐다.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북한이 외교관계를 넓혀가고 있던 시점이었다. 마침 그때 캐나다에서도 북측과 '1.5트랙'(반관반민) 같은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캐나다측 외교관들과 함께 평양도 가고 하면서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대화에 힘을 보탰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2차 북핵위기가 터져서 2000년대에는 캐나다와 북한이 서류상으로만 외교관계가 있고 실질적으로 아무 교류가 없었다. 이때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에는 비정치적인 방법으로라도 교류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식공유 프로그램을 만들어 북측에 제안했다. 나는 '교육받을 권리는 보편적 인권'이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다. 또한 나는 교육자로서 학술교류를 활성화시켜 이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고 KPP를 만들어 북측에 제안했더니 북측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캐나다에서 북한 교수들이 생활하다보면 불편한 점도 있을 것 같은데.
-KPP를 제안했을때 북측에서 딱 한가지만 추가적으로 부탁을 했다. '주말에는 직접 밥을 해서 우리 음식을 해먹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나도 유학 초기에는 음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처음에 북측 학자들 받기 전에 1주일 꼬박 부엌살림을 장만했다. 꼭 자식 시집, 장가 보내는 기분이었다.(웃음) 지금도 창고 하나 빌려서 북측 사람들이 오면 풀어서 쓰고 돌아가면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는데 10년 가까이 되는 상자가 몇십 개다. 휴일에 북측 교수들이 둘러앉아서 직접 만두를 빚어 먹곤 했다.
박경애 캐나다 UBC교수가 1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북한 지식교류 협력 프로그램`(KPP)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작년에는 북측 6개 대학 총장·부총장단이 UBC를 방문했는데.
-그동안 UBC에 파견됐던 △김일성대 △김책공대 △평양외국어대 △평양상업대 △인민경제대 △원산경제대 등 6개 대학 총장·부총장들을 초청해 외국 대학들은 어떻게 운영되고, 연구사업을 어떻게 지원하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싶었다. 1년 반을 추진해서 성사가 됐다. 북한에 가보면 '인재중시' '과학기술 중시' 슬로건이 어디에나 붙어있다. 특히 북측 대학들은 최근에는 '세계 대학랭킹'에도 관심이 많다. 북측 총장·부총장들이 왔을 때에는 '세계 대학랭킹에 들어가려면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하느냐'고 질문하는 등 세계 랭킹에 들 수 있는 대학을 만들기 위한 의지가 강했다.
▷북측으로서도 매우 이례적인 대외 행보였던 것 같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다. 총장·부총장들이 연배가 높고 80세 가까이 된 분들도 있어 힘든 점이 많았을텐데 시차 적응할 여유도 없이 강행군을 치렀다. 북측 단장을 맡았던 리국철 김일성종합대 제1부총장의 진행도 매우 유려했다. 낮밤이 바뀐 상황에서 연세도 많은 분들이 일정 중에서 조는 사람 하나 없어 UBC에서도 북측 대학 관계자들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받았다.
■北대학들 MBA개설 관심 커…국제관계학원 설립
■'외부와 교류·협력 늘리겠다' 방향성 분명히 잡아
■北과 비정치적 학술교류 정세 영향없이 계속돼야
▷올해 계획은?
-북측이 요즘 MBA프로그램에 관심이 매우 많고 질문도 많이 받는다. 그래서 MBA 개설·운영에 대한 강습회를 하고 싶은희망이 있다. 북한은 이미 원산경제대학에서 시험적으로 MBA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이전처럼 해외로 북측 대표단을 초청해서 현장실습도 하고 가능하면 국제회의도 진행하고 싶은데 대북제재가 엄격해서 쉬운 상황은 아니다.
박경애 캐나다 UBC 교수가 지난 2013년 평양에서 진행했던 경제특구 관련 국제토론회 현수막.
[유튜브 화면 캡쳐]
▷지금, 북한이 얼마나 국제사회로 나오고 싶어한다고 보나.
-평양에 있는 한 대학교에 최근 '국제관계학원'이 신설됐다. 여기에서 외교관도 양성하고 국제사회에 나가서 외국 사람들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고 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이미 방향성이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MBA도 개설하고 국제관계학원을 만들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는 앞으로 국제사회와 활발하게 상호작용을 하겠다'는 정책을 분명히 세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대학 체계를 이렇게까지 개편하지 않을 것이다. 북측이 실력있는 젊은 교수들을 강의 일선에서 빼서 9년째 KPP에 참여시키는 것도 이같은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북측으로 봐서도 일종의 투자다. KPP를 통해서 배운 것들이 북측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니까 매년 교수들을 캐나다로 보내고 이들이 돌아가서 새로운 학과도 만들고 하는 것이다. 내년이면 KPP가 10기생을 맞게 된다. 그동안 정세의 진폭이 매우 컸지만 학교(UBC)와 캐나다 정부는 물론 한·미 쪽에서도 많이 지지해줬고 북측도 많이 도와주며 교수들을 보내줘서 감사하게도 10년을 맞게 됐다. 비정치적인 지식·학술 교류는 지속·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훈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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