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작품 제작비만 수백만원"…`졸전`에 우는 예술대 학생들
입력 2019-02-27 15:56  | 수정 2019-02-27 16:03
졸업전시로 경제적 부담을 호소하는 예술대 학생들이 많다. 이들은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달하는 작품 제작 비용을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울 소재의 모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김 모씨(24)는 최근 졸업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졸업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는데만 800만원을 썼기 때문. 모형의 바탕이 되는 3D 모델링 외주를 맡기는 데 150만 원, 이후 작품을 실물 모형(목업)으로 제작하는 데 620만 원이 들었다. 작품제작비에만 770만 원을 지출하는 동안 교비 지원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오히려 학생들은 전시회를 위한 준비금까지 부담해야 했다. 김 씨가 졸업전시준비금 명목으로 졸업준비위원회에 납부한 돈은 30만 원. 교내에 마련된 전시장을 사용함에도 학생들이 전시장 가벽 설치 같은 준비 비용도 오롯이 부담해야 했다.이렇게 단 사흘간의 전시회를 위해 1년치 등록금과 맞먹는 800만 원이 김 씨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갔다.
졸업전시회(졸전)는 국내 예술대 학생이라면 대부분 거쳐야 하는 통과 관문이다. 전국 25개 예술 관련 단과대학 학생들이 모여 만든 예술대학생등록금대책위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150개 예술계열 학과 중 146개(97.3%)가 졸업전시를 졸업 필수요건으로 못 박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졸업전시회가 예술대 학생들의 '등골 브레이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김 씨의 경우처럼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소요되는 제작비가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에 달하기 때문.
단순 제작비 이외에도 졸업전시회를 위한 대관 비용과 설치 비용까지 학생들이 부담해야 하는 실정이다. 교내에 전시장이 마련돼 있는 경우라면 30만~50만 원 선에서 해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1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 졸업전시준비금으로 책정된다.
수도권 모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이 모씨(26)는 "갤러리를 대관하고, 전시장을 준비하는 비용이 작품 제작비와 비슷한 수준이었다"며 "예술 관련 학과가 있는데도 마땅한 전시 시설 하나 없다는 건 학교의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제작비와 준비금의 이중고에 갇힌 예술대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빚을 내기도 한다. 예술대학생등록금대책위가 예술계열 졸업생 7746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 40% 이상이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1만16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1000만 원 이상의 부채가 있다고 답한 학생만 642명에 달할 정도였다.
교육부에 따르면 예체능 전공자들의 2017년 연평균 등록금은 779만 800원으로 595만9000원의 인문계열 등록금보다 약 183만 원이 더 많다. 하지만 대부분 대학은 이 같은 차등 등록금의 산출근거를 공개하지 않아 졸업전시에 지원되는 학교 측 비용이 얼마인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차등등록금은 실습비와 재료비로 활용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등록금 대비 실습비의 비중은 대개 10~20%에 불과하다. 터무니없이 적은 실습비 탓에 졸업전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지원금 역시 적거나 없다는 게 예술대 학생들의 주장이다.
졸업전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막대한 비용 부담을 덜어주고자 학칙을 변경하는 학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졸업전시회를 의무가 아닌 선택 사항으로 바꾼 한 대학 관계자는 "졸업전시가 아닌 작품 제출로 졸업 여부를 판단하기로 학칙을 개정했다"며 "다만 전시를 원하는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학생들의 부담도 크지만, 학교 자체에서 교비로 지원해줄 수 있는 부분이 한정돼 있어 학칙을 변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국 오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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