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저씨인 척하는 혼자 사는 여성들…"안전 위해"
입력 2019-02-20 16:07 
혼자 사는 여성들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남성 이름으로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택배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울시 관악구에 사는 김유라 씨(26)는 모든 걸 척척 해내는 자취 경력 6년 차지만 배달 음식을 주문할 때는 일부러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전화 한 통이면 가능한 간편한 주문 대신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음식을 결제하고 주문자의 이름을 남성의 이름으로 바꾼다. 또 요청사항에 김씨의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로 음식을 문 앞에 두고 가라고 적는다. 마치 중년의 남성이 음식을 주문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다. 김씨는 "여자 혼자 사는 집은 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워서 일부러 아저씨인 척했다"며 "피곤하게 산다고 하겠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수고롭지 않다"고 말했다.
혼자 사는 여성들 사이에서 남성 이름으로 배달 음식이나 택배를 주문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남성 이름으로 배달시키기'는 '현관에 남자 신발 놔두기'와 같이 여성들이 안전하게 살기 위한 생활의 팁으로 최근 온라인에서 추천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취하는 여성들이 택배나 배달 주문에 사용할 만한 남성 이름을 추천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있다. 추천되는 남성 이름이 따로 있는 이유에는 모든 이름이 사용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 이상의 나이가 연상되고 거친 성격을 가졌을 것 같은 소위 아저씨 같은 이름들이 가명에 쓰인다. '춘, 덕, 식, 태' 등의 글자가 포함된 이름은 이곳에서 환영받는다. 이름만 바꾸는 게 아니라 택배 종류를 바꾸기도 한다. 화장품과 같이 구매자가 여성임이 드러나는 택배일 경우 '공구류'로 바꿔서 주문하는 것이다.
여성들이 가명을 사용해 남성인 척하는 이유에는 혼자 사는 여성을 노리는 범죄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서다. 지난 2017년 강지현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가 발표한 '1인 가구의 범죄 피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33세 이하 여성 1인 가구는 남성 1인 가구에 비해 주거침입 피해를 볼 가능성이 약 1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여성 1인 가구가 범죄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남성에 비해 약 2.3배 높았으며 범죄 노출위험도 남성에 비해 85.5% 컸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범죄에 취약하므로 이들을 위한 예방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경찰청 범죄통계를 분석한 결과 981건의 주거침입 성범죄가 발생했다. 소 의원은 "성범죄 이후 더 큰 강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특단의 예방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국 손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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