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잡아라 잡(JOB)] 국내 1호 박물관학 박사가 밝힌 `이마트` 탄생 비밀은
입력 2019-01-07 09:20  | 수정 2019-01-07 16:08

"국내 최초 할인점인 '이마트' 이름이 왜 이마트인 줄 아세요? 기획자들이 준비 과정에서 '이(This)' 마트로 칭했거든요. 그게 입에 자연스럽게 붙다보니 사명까지 된 거죠."
지난 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신세계 본사에서 만난 배봉균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이하 신세계박물관) 관장(59·사진)은 인터뷰 내내 상기된 얼굴로 자사 역사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늘어놨다.
배 관장은 1993년 설립된 이마트 사명과 관련해 "Price를 넣은 'P마트'도 검토 대상 중 하나였으나 'Easy'와 'Economy' 등의 의미를 부여해 (이마트가) 최종 결정됐다"고 말했다.
신세계란 사명은 어떻게 유래됐냐고 묻자 역시 답이 척척 돌아왔다. "1963년 고객 공모를 통해서 탄생한 사명이죠. 당시 백화점 이름 치고는 좀 이상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고객 공모를 통한 만큼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마치 그 시대 현장에 있었던 사람 마냥 배 관장이 생생히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신세계박물관에 보관된 기록물 덕분이다. 이마트 점장 등 당시 담당자들에게 건네받은 각종 기록물 수집을 계기로 모은 사사(社史) 관련 자료가 1만5000여점, 한국 상업사 관련 기록물이 1만 여점에 달한다.
이렇게 모인 역사 자료는 1995년 경기도 용인시에 설립된 신세계박물관에서 대중에게 공개돼왔다. 특히 신세계박물관에는 사사뿐 아니라 삼국시대 때부터 개화기, 현재까지의 국내 상업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 상업사 박물관을 신세계가 만든 것이다.
배봉균 신세계한국상업사박물관 관장. [사진 제공 = 신세계]
신세계박물관 초대 관장인 배 관장은 '국내 1호 박물관학 박사'다. 2005년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박물관학과 관련된 논문을 제출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외국에서 박물관과 관련된 학위를 받은 학자는 있었지만 국내에선 관련 교육 과정마저 손에 꼽힐 정도로 보기 드물었다.
배 관장은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대중들에게 어떤 주제로 어떻게 하면 보다 친절히 잘 전달할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그러던 중 1990년대부터 자연사박물관 등 입체형 박물관이 인기를 얻었고, 제대로 된 전시를 통해 역사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박물관학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배 관장은 그 길로 디자인 사무실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역사학자로서 독특한 이력이다. 박물관 개발·설립 컨설팅과 전시 디자인 등의 사업을 하던 그는 1993년 신세계로부터 '신세계 역사관' 개발 용역을 받아 지금의 인연을 맺었다.
배 관장은 "개관 준비를 하며 공부를 해보니 신세계가 한국 상업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됐다"며 "상업사에서 신세계는 '새로운 것'이나 '도전'과 동의어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한국 유통업을 이끈 측면이 컸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단순 기업 역사관에 그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상업사 박물관을 제안했고, 신세계 측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결과 유통업계에서 유일한 상업사 박물관이 탄생하게 됐다.
배 관장은 개관을 준비하면서 전국의 중개상들을 만나고 다녔다. 서울 인사동과 답십리뿐 아니라 지방 출장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판과 저울, 화폐 등을 하나씩 모았고 개화기 당시 상점 간판 등을 찾아내 전시했다.
그러던 중 신세계박물관의 중요한 자료 중 하나인 '수남상회' 30년 장부를 얻었다. 배 관장은 이를 두고 "행운이 뒤따랐다"고 회상했다.
수남상회는 구한말 서울 종로에 있던 비단상점이다. 장부에는 당시 영수증과 거래 문건 등이 고스란히 다 들어 있다. 1900년 초반부터 30년간의 기록이 기재된 장부는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다. 근대 회사의 운영과정을 낱낱이 보여주는 수남상회 장부 가치를 배 관장은 단박에 알아봤다. 한 국립박물관에서 장부 구매가 유찰됐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길로 장부를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배 관장은 "보통 장부는 한 권씩 돌아다녀 회사 전체 규모를 알기가 힘들다"며 "하지만 수남상회 장부는 무려 30년치가 다 있어서 근대 회사의 운영 과정과 거래 내역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기록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수남상회 장부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신청할 계획이다.
1984년 신세계 영등포점 국내 최초 POS 시스템 도입(좌) 및 1975년 신세계 로고. [사진 제공 = 신세계]
'신세계 기네스'도 배 관장의 주요 업적 중 하나다. 신세계 기네스는 배 관장이 신세계그룹이 유통업계에서 국내 최초로 진행한 행사나 내용 등을 모아놓은 자료다. 배 관장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신세계가 보유한 국내 최초 타이틀은 164개에 달한다.
▲1964년 국내 최초 백화점 DM ▲1967년 국내 최초 바겐세일 실시 ▲1968년 국내 최초 쇼핑백(의장등록번호 제2252호) ▲1969년 국내 최초 직영백화점 ▲1969년 국내 최초 여대생 아르바이트 채용 ▲1984년 국내 최초 POS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배 관장은 "어떤 분야에서 선두주자들의 행보를 보면, 그 만큼 앞서 가기 위해 노력하고 그 노력의 결과가 또 다른 업적을 만드는 것 같다"며 "신세계 역시 한국 유통사에서 선두주자적 측면이 많다"고 말했다.
배 관장의 숙원은 은퇴 전 한국은행 앞 사거리를 '박물관 벨트'로 완성하는 것이다. 신세계는 현재 신세계박물관의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에 위치한 옛 제일은행 본점이 검토 대상 중 하나다.
이 곳에 신세계박물관이 들어온다면 길 하나를 두고 위치한 한국은행의 화폐박물관, 우체국의 우표 박물관, 우리은행 본점의 은행사 박물관과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배 관장의 생각이다.
배 관장은 "서울 대표 중심지에 화폐, 우표, 은행, 상업 박물관이 벨트를 형성할 경우 그 의미가 남다르고 매우 클 것"이라며 "신세계박물관의 초대 관장으로 개관 기획을 모두 담당한 만큼 제 2의 개관도 은퇴 전에 직접 이끌고 싶다"고 말했다.
신세계박물관은 이전을 위해 현재 휴관 중이다. 주요 유물들은 전문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배 관장은 휴관 중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에서든지 간이 전시회를 연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 신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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