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빚 못갚는 서민…대부업 연체율 급등
입력 2018-12-05 17:54  | 수정 2018-12-05 20:18
◆ 대부업 연체율 급등 ◆
서울 중산층에 속했던 47세 여성 최 모씨는 최근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급매물로 내놓고 개인회생 절차를 밟고 있다. 가족에게 빌린 돈과 A은행에서 신용대출 1000만원, 소상공인대출 3000만원을 받아 총 3억원의 자금으로 지난해 커피숍을 열었다가, 최근 경기 불황과 최저임금 인상 등이 겹치면서 빚더미에 앉았다. 커피숍 월평균 매출이 1400만원은 됐지만, 매장 월 임대료 700만원과 고정비 등을 내고 나면 매달 600만원이 적자였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최대 16.6%의 이자를 내고 총 10번에 걸쳐 5000만원의 카드론도 끌어다 썼다.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7등급으로 추락하면서 더 이상의 대출이 어려워졌다. 자살까지도 생각했던 최씨는 결국 전 재산이나 다름없던 아파트를 팔고 파산을 선언했다.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소규모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금융 부실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는 최저임금 인상에 경기 악화마저 겹치면서 폐업도 급격히 늘고 있다. 우리카드가 222만개 가맹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올해 들어 9월까지 휴·폐업 점포 수는 66만개로 연간으로는 80만개를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자영업자들이 집중된 요식업·숙박 등의 업종 휴·폐업 비율은 지난 9월 말 현재 31.1%에 달했다. 즉 전체 가맹점의 3분의 1가량이 휴·폐업 상태다.
자영업자 부실은 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저축은행 연체율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업계 상위권 A저축은행의 자영업자 신용대출 연체율(한 달 이상 연체 기준)은 연초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지난 1월 3.4%이던 연체율이 10월 6.9%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자영업자를 포함한 전체 신용대출 차주의 연체율은 6%에서 6.5%로 0.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의존도가 높은 대부업계 연체율도 유사한 추이를 보이고 있다. 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상위 19개 대부업체 평균 연체율은 지난 9월 10.7%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대부금융협회가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래 최고치다. 업계 관계자는 "3개월 이상 회수를 못한 부실채권은 채권추심업체에 매각하기 때문에 연체율 집계에서 제외된다"며 "실제 부실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자영업자와 서민들에 대한 대출에서 부실 발생 비율이 높아지자 서민금융회사는 당장 돈줄부터 죄기 시작했다. 올해 초 법정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낮아지면서 대출 승인심사를 까다롭게 운영해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문턱을 더욱 높였다.
A저축은행은 신용등급 7등급 이하 대출 승인율이 지난 1월 10.01%에서 9월 6.4%로 급락했다. 10명이 대출을 신청하면 과거에는 한 명이 받았지만 지금은 1명도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박덕배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 인하와 경기 부진, 금리 인상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저신용자 금융 소외 현상이 심각하다"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25만명의 신규 대출자가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특히 9~10등급의 저신용자는 저축은행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준 서울지역 저축은행 17곳 가운데 신용등급 10등급 대출을 해주는 회사는 1곳뿐인 것으로 조사됐다. 9등급도 3개 회사에서만 대출이 가능하다. 지난해 같은 달에는 10등급 대출을 취급하는 저축은행이 3곳, 9등급은 4곳이었다. 저신용자들에게는 대부업 문턱도 높다. 박덕배 국민대 교수가 NICE신용평가정보 통계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7~10등급 대부업 대출 승인율은 지난해 1~9월 17%에서 올해 같은 기간 12.6%로 하락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지난 10월 대부중개업체에서 접수한 대출신청 건에 대한 대부업체 평균 승인율은 9.4%에 불과하다"며 "저신용자들의 금융 환경이 해마다 악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이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면서 불법 사금융이 활개를 치고 있다. 지난 5일 찾은 서울 중구 방산시장 골목 바닥 곳곳에는 '바로 대출' '당일 대출'이 적힌 불법 사금융 명함이 수십 개 쌓여 있었다. 시장에서 만난 50대 상인은 "2년 전부터 방산시장에서 일을 했는데 불법 사금융 명함이 예전보다 곱절은 늘어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상인은 "지금 경기는 안 좋은데 돈을 빌릴 곳도 마땅치 않아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이들 명함에 한 번씩 눈길을 주게 된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들 불법 사금융은 차주가 아무 데서도 돈을 빌릴 수 없다는 절박한 사정을 이용해 연금리 환산 시 2000~3000%에 달하는 이자를 부과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금융업자는 1주일 후 원리금 100만원을 상환하는 조건으로 30만원의 선이자를 공제한 뒤 70만원을 빌려준다. 1주일 뒤 차주가 상환하지 못할 경우 매주 연장 비용으로 20만원을 추가한다. 한 달만 빌려도 받은 돈은 70만원인데 갚아야 할 돈이 두 배가 넘는 160만원이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에 접수되는 불법사금융 피해신고 사례는 올 들어 7월까지 7만4420건에 달한다. 이 같은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지난해(10만247건) 신고건수를 넘어 2012년 센터 설립 이후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회적 기업 '희망만드는사람들'의 서경준 상담본부장은 "고금리 대출이나 불법 사금융에 노출되기 전에 일찌감치 개인워크아웃·개인회생과 같은 채무조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승훈 기자 / 김강래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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