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고] "나를 위한 선택" vs. "환경을 위한 배려"
입력 2018-11-23 14:58 

과연 유기농 와인은 더 맛있을까? 지난해 유럽의 한 와이너리를 찾은 적이 있다. 유기농 와인 생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할 법한 운영자는 가야할 길이 멀다며 겸손해 한다. 그러면서 바로 옆의 포도밭도 아직 유기농법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동네 전체가 유기농 와인을 생산할 날을 위해 설득과 협력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변 포도밭이 농약이나 제초제를 쓰는 한, 자신의 생산물이 진정한 유기농 와인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최근 식품 구매와 외식 부문에서 친환경 소비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렇다면 고객은 기꺼이 이런 물결에 동참할까? 프리토레이는 지난 2008년 환경의 날에 식물성 재료로 만든 생분해 포장의 썬칩을 출시했다. 하지만, 생분해 포장에서 나는 소리 탓에 고객의 불만이 높아졌다. 주로 TV를 보거나 대화를 하며 먹는 스낵의 포장에서 나오는 소음이 거슬린 것이다. 결국 포장재가 퇴비로 쓰이는 장점이, 소음을 참으며 썬칩을 먹어야 한다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바로 매출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소비자는 환경보호에 관심이 높지만 본인이 희생해야 한다고 여기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게 쉽지 않다. 실제로 여러 조사에서 소비자는 이들 제품에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표현하지만,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선뜻 지갑을 열지 않는다. 즉 가격, 맛, 편의성, 건강 등을 희생해야 한다면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최근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소용량, 소포장 식품의 소비도 늘고 있다. 이는 더 많은 쓰레기 배출을 뜻하는데, 고객은 건강을 위해 소식을 하고 음식을 남기기도 한다. 여기서 음식쓰레기 문제가 발생한다. 설사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더라도 자신에 대한 혜택이 작거나 희생이 크다면 행동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즉 환경을 앞세우는 친사회적 자아와 건강을 염려하는 친자아적 자아가 충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도와 행동 사이의 괴리는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무엇보다 공급자의 조력이 필요하다. 소비자가 사용할 경우 개인과 사회 모두에 이익을 준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바로 고객이 건강한 음식을 고르면 자연스레 환경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피가 작고 친환경 재질의 포장을 활용하는 것이다. 레스토랑의 경우 음식물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1인 적정량의 메뉴를 구성하되 적절한 영양을 제공해 건강이나 안전에 대한 혜택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근 커피 전문점에서 일회용컵이 금지되면서 머그컵 사용이 늘었다. 환경보호를 위해 매우 바람직한 실천이다. 그러나 고객은 머그컵의 위생이나 힘들어진 종업원을 염려해 머그컵을 선택할지, 아니면 일회용컵을 들고 밖으로 나갈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혹여 환경보호를 위한 대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긍정적 행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건강과 환경에 대한 혜택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시너지 디자인이 필요하다.
맥주 애호가들이 많은 벨기에의 한 연구에 따르면, 맥주처럼 건강보다 맛 위주로 고르는 제품의 경우 유기농 라벨의 긍정적 효과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친환경 소비는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오늘도 유기농 와인을 위해 움직이고 있을 여행에서 만난 생산자가 떠오른다. 그의 진정성 있는 철학이 소비자의 미각 충족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 황조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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