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잠 많다는 오해는 그만, `기면증`은 달라요
입력 2018-10-29 11:09 

밤에 충분한 수면을 취했지만 낮에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오는 '기면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면증 환자를 배려한 권고가 나와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달 10일 기면증을 가진 수험생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정당한 편의가 제공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이하 인권위) 결정이 나왔다. 올해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인 진정인은 2010년 기면증 확진을 받고 현재까지 약물 치료 중이나 하루 5번 이상의 심각한 주간 졸림 증상으로 학업과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며, 일반 수험생과 동일한 조건에서 수능을 본다면 시간 부족으로 실력 발휘를 제대로 하기 어렵고 불리한 결과가 초래되므로 시험시간 또는 쉬는시간 연장 등을 요청한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현재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시·청각, 지체·뇌병변 장애를 겪는 응시생들은 일반 수험생과 동일한 조건으로 시험을 볼 수 없는 특별관리대상자로 지정되어 증상 정도에 따른 시간 연장, 보조기기 등의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는다. 반면, 기면증은 한국표준질병·사인 분류상 '신경 계통의 질환-수면 장애-발작수면 및 탈력발작'으로 등록돼 2009년부터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지정됐으나 현행 '장애인복지법'상의 법정장애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별다른 편의 제공이 어렵다.
인권위는 수능시험의 중요성을 감안해 일반 수험생과의 형평성을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안임에도, 기면증은 학업과 일상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주기 때문에 일반인과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는 건 균등한 교육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면증의 국내 유병률은 0.002~0.18%로 추정되며,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으나, 주로 청소년기나 30세 이전인 이른 성인기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나도 모르게 꾸벅꾸벅, 기면증 "통제 못 해요"
기면증은 낮에도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흔히 게으름이나 만성 피로로 오해하기 쉽지만, 수면과 각성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 히포크레틴의 농도 저하로 인해 발생하는 신경계 질환이다.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업무, 학습 등에 큰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심각한 상해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이 따른다. 최근 미국 시장조사기관 버스타 리서치가 진행한 기면증 인식 조사에서 기면증 환자 200명 중 37%는 기면증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했거나 중도에 그만뒀으며, 25%는 직장에서 해고 되거나 강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단순 피로나 졸림과 구분되는 기면증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탈력발작' 증상이다. 이 증상은 크게 웃거나 화를 내는 강한 감정 변화가 있을 때 순간적으로 몸에 힘이 빠지는데, 탈력발작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기면증 환자의 50~70%가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조사에서는 기면증 환자임에도 증상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해 26%만이 의사에게 자신의 탈력발작 사실을 얘기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도 정신은 깨어 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수면마비, 잠이 들거나 깰 때 나타나는 환각 등도 기면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기면증 진단은 1박 2일간 '수면다원검사'와 '입면잠복기반복검사' 등 두 가지 검사를 받아야 한다. 수면다원검사는 밤 수면 동안 뇌파와 입과 코를 통한 공기의 흐름, 근육의 움직임 등 신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종합적으로 측정해 기면증을 비롯한 다양한 수면장애의 정확한 진단을 돕는다. 입면잠복기반복검사는 주간에 잠이 들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짧은 주간 수면 중에 렘수면이 나타나는 지를 알아보기 위해 두 시간 간격으로 20분씩 낮잠을 자도록 하는 검사로, 수면다원검사를 받은 다음날 낮에 4~5회 반복한다. △낮에 잠드는 시간이 평균 8분 이내, 탈력발작 증상을 동반한다면 렘수면 1회 이상 △탈력발작 증상이 없는 경우 렘수면 2회 이상이면 기면증으로 확진한다.
올 7월부터 기면증 의심 환자는 1회에 한해 수면다원검사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70~100만원에 달했던 검사 비용이 10만원 대로 줄어들었다. 입면잠복기반복검사는 비급여로 운영돼 비용은 약 20~40만원 선이다.
◇약물치료와 행동치료 병행, 약효 지속시간 늘린 치료제도 등장
기면증은 완치가 거의 불가한 질환으로 주로 약물 치료를 통해 증상을 조절한다. 낮 동안의 졸음 증상을 줄이려면 각성제를, 탈력발작, 수면 마비 등의 증상 치료엔 항우울제를 사용한다.
현재 기면증 치료에는 모다피닐 성분의 치료제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성분은 과다졸음 치료를 위해 개발된 약물로 1998년 미 FDA 승인을 받았다. 올 9월에는 기존 모다피닐 성분 치료제 대비 약물 반감기를 늘린 새로운 기면증 치료제가 출시됐다. 반감기란 우리 몸에 들어간 약물의 양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아모다피닐 성분의 새 치료제는 약물 반감기가 10~15시간으로, 기면증 환자의 일상생활 유지에 도움을 준다.
행동 치료 병행도 필수다. 규칙적인 수면 각성 주기를 유지하고 수면 위생을 철저히 지키며, 환자 가족의 이해와 협조를 유도해야 한다. 미리 가장 졸린 시간대를 정해 10~20분 정도 낮잠을 자는데, 낮잠을 자고 나면 약 90~120분은 개운한 상태가 유지되므로 주간 활동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취침과 기상 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키고 숙면을 위해 수면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음주나 야간 운동을 피하는 게 좋다. 고(高)탄수화물은 졸림 증상을 악화시키기 때문에 운전 등 중요한 상황에서는 섭취를 주의해야 한다.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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