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플랫폼 주도권 잡자…금융권 `적과의 동침`
입력 2018-07-15 18:26  | 수정 2018-07-15 20:13
생존을 위해서라면 적과 동침도 불사하는 '오월동주(吳越同舟·어려운 상황에 맞서 적과 손잡는다)'가 최근 금융권 트렌드로 떠올랐다. 간편송금 등 새로운 서비스가 급부상하고 핀테크 기업과 금융사 간 사업 부문 경계가 모호해진 뒤 핀테크 업체와 전통 금융사 간 또는 경쟁 관계인 금융사 간 제휴가 활발해지는 것.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간편송금 플랫폼 '토스'에서는 온라인 전용 자유입출금 통장인 KEB하나은행 'e-플러스 통장'을 만들 수 있다. 토스에서는 다른 은행 계좌를 등록하면 그 계좌에 있는 돈을 한 달에 다섯 번까지 무료로 보낼 수 있는데 토스에서 생성한 하나은행 계좌로는 횟수 제한 없이 송금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토스의 외화 환전 역시 하나은행을 통해 이뤄진다. 달러, 유로, 엔화 등 총 12개 통화를 하루 100만원까지 환전할 수 있는데 이렇게 바꾼 외화는 하나은행 인천공항 환전소나 은행 지점에서 수령할 수 있다. 이렇게 토스와 손잡고 통장 발급과 환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시중은행 중 하나은행이 유일하다. 자체 모바일 뱅킹 애플리케이션(앱) '원큐뱅크'를 통해서도 똑같은 서비스를 운영하는 이 은행이 굳이 토스와 손잡은 것은 모바일 금융을 단기간에 휩쓴 토스 영향력을 인정한 결과다.
토스는 2015년 출범 당시 국내 최초로 공인인증서 없는 빠른 송금 서비스를 선보인 모바일 앱이다. 간편송금, 무료 신용등급 조회 서비스로 출발해 최근에는 다양한 회사와 손잡고 오토론부터 P2P 투자, 부동산·펀드 소액 투자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종합금융 서비스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지금까지 집계된 누적 기준 다운로드만 1800만건에 달하고 지난해 3분기에는 금융 서비스 앱 중 10·20대 월간 서비스 이용자 수(MAU)에서 국내 은행 1위인 KB국민은행, 인터넷 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모바일 금융거래 분야에서는 기존 은행을 압도하고 있다.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인 하나은행이 생긴 지 4년밖에 안 된 신생 핀테크 업체에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원큐뱅크는 기존 하나은행 고객만 이용할 수 있지만 토스는 한계가 없는 만큼 새로운 고객을 모으는 플랫폼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증권사 중에서는 신한금융투자가 유일하게 토스를 통해 러시아 펀드나 아마존 주식 등 해외 펀드·주식을 팔고 있다. 토스 전용 신한금투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만들고 그 잔액으로 투자하는 방식이다. 신한금투 자체 앱으로도 가능한 기능이다. 지금까지 토스를 통해 개설된 신한금투 CMA는 50만좌, 잔액은 1000억원을 돌파했다.
대형 금융사 간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현대카드는 지난 4월 카드 고객이 해외 계좌로 돈을 이체할 때 중계수수료와 전신료를 받지 않고 송금수수료 3000원만 내면 되는 해외송금 모바일 앱을 만들었다. 이 앱으로 접수된 송금 신청은 신한은행과 영국계 핀테크 업체 커런시클라우드를 통해 진행된다. 소액 송금 여러 건을 모아 1건으로 처리해 수수료를 기존 은행 해외송금 대비 6분의1 수준으로 낮추는 '위탁형 소액 해외송금' 방식이다.
신한은행이 신한카드가 아닌 현대카드와 손잡고 이런 서비스를 만든 것은 현재 관련 법상 같은 그룹 계열사와는 해외송금 업무를 하는 데 제약이 많아서다. 연간 2만달러, 건당 3000달러 이하를 보낼 수 있는 소액외화송금업은 기존에는 은행만 가능했지만 2016년 외국환거래법 개정으로 비은행권에서도 참여할 수 있게 되면서 현대카드도 해외송금업에 뛰어들었다.
국민은행은 하나은행과 외화 환전 분야에서 협조하고 있다. 국민은행 모바일 앱에서 바꾼 외화는 인천공항에 있는 하나은행 환전소에서 찾을 수 있다. 4대 은행 중 국민은행만 인천공항 내 환전소나 영업점이 없다 보니 환전 건당 일정 수수료를 하나은행에 지불하는 방식으로 환전소를 빌려 쓰는 것이다.
이 같은 오월동주는 유통사와 금융사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신라면세점은 신한카드와 제휴를 맺고 '더 심플'이라는 면세품 구매 전용 앱을 출시했다. 이 앱에서 이뤄지는 구입 결제는 무조건 신한카드로만 한정된다. 삼성그룹에 카드사인 삼성카드가 있지만 신한카드가 업계 1위일 뿐 아니라 국내 최대 디지털 금융플랫폼인 '신한 판(FAN)'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여기와 손잡는 게 초기 고객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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