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나만 알고 싶은 `간판없는 가게`의 은밀한 매력
입력 2018-07-13 17:18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 이곳은 말 그대로 간판이 없어 지도 앱을 보면서 가도 지나치기 쉽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여긴 그럼 가게 이름을 어떻게 알아?", "이 가게가 지도에 나오긴 해?"
있어야 할 게 없다. 간판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간판 없는 가게'는 말 그대로 간판이 없다. 가게 앞 '파스타 피자 와인 맥주'라고 적힌 투박한 나무판자로 메뉴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식당을 찾은 지난 12일 오전 11시 30분께, 익선동을 방문한 사람들은 '간판 없이 영업하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이곳엔 평일·주말 할 것 없이 대기 줄이 생긴다. 이날도 영업 시작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간판 없는 가게' 내부 모습. 일반 가정 주택을 개조해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화려한 네온사인과 커다란 글씨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던 간판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인기를 얻는 식당이나 카페 중에서 간판을 달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 만들더라도 아주 작게 만들어 숨겨 놓는 식이다. 간판이 없다는 특이한 콘셉트가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뛰어난 품질과 세련된 분위기가 무(無)간판 가게의 주 무기다.
간판 없는 가게를 두 번째 방문한다는 대학생 백 모씨(22)는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간판이 없다는 게 신기해서 가봤다"면서 "막상 가니 음식이 입에 맞아 또 찾아오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은 "지금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콘텐츠(맛이나 비쥬얼, 경험 등)이 확실히 있다면 골목 구석에 숨어있어도 찾아가는 시대"라면서 "손님의 취향에 부합하는 제품과 공간적 매력만 갖춰지면 SNS를 통해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보 공유가 빨리 되고, 순식간에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을지로의 인쇄 골목에 위치한 카페 '클래직' 입구. 간판이 없고 좁은 골목길에 있어 찾기 어렵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지난 3월 서울 중구 을지로의 인쇄 골목에 들어선 카페 '클래직'도 간판이 없다. 좁은 골목길에 위치한 데다 위치를 확인할 간판이 없어 근처에 도착해서도 헤매기 일쑤다. 각종 지도 앱 역시 무용지물이다. 도저히 카페가 있을 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계단을 올라야 카페가 나온다. 클래직 김새롬 대표(27)가 스스로 "찾아오시는 손님들이 신기하다"고 인정할 정도다.
독특한 분위기의 '클래직' 내부 모습.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김 대표는 "일반화할 순 없겠지만 (을지로에는) 원하는 간판을 세울 수 없었던 분들이 많다"면서 "요즘은 단순히 음료를 즐기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보고 오기 때문에 (간판이 없어도) 손님들이 찾아오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을지로입구역 일대에는 이렇게 간판을 달지 않는 가게들이 많다. 근처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원하는 간판을 만들기 쉽지 않고, 좁은 인쇄 골목 사이로 각종 자재를 실은 오토바이와 소형 트럭이 지나다녀 큰 간판은 위험하다는 지자체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가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간판을 억지로 달기보단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집중했다.
을지로 인쇄골목에 위치한 술집 '십분의 일' 입구.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을지로 일대가 2030 사이에서 '힙(hip)' 한 거리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을지로에서 간판 없는 술집 '십분의 일'을 운영하는 이현우 대표(31)는 인근에 간판 없는 술집 2호점 격인 '빈집'을 냈다. 두 가게 모두 간판도 없고 입구도 허름하지만 아기자기한 실내장식으로 유명해지면서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속출한다.
'십분의 일' 인근에 위치한 간판 없는 술집 '빈집'. 이곳 역시 간판이 없지만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속출한다.[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최근 친구들과 빈집을 방문했다는 직장인 김모씨(25)는 "간판이 없어서 찾기 힘들었지만 고생해서 발견했을 때 쾌감이 있다"면서 "이곳에서 인증사진을 찍어 올리는 게 아무도 모르는 핫플도 잘 찾아다니는 힙스터가 된 느낌"이라고 밝혔다.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위치한 빵집 '오헨'. 간판이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 간판이 없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간판이 없어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 있었던 바탕엔 SNS의 발달도 있다. SNS를 통해서 맛집을 검색하고 지도 앱으로 찾아다니다 보니 간판은 부차적인 요소가 된 것이다. 굳이 내세우지 않아도 품질이 좋으면 저절로 SNS에서 알려진다는 게 업주들의 얘기다.
2년 전 서울 마포구 신수동에 문을 연 빵집 '오헨'도 최근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다.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든다고 소문이 나서다. 간판도 없고 어떤 빵을 파는지 짐작할 수도 없지만, 최근엔 단골까지 생길 정도로 인기다.
이준석 오헨 대표(42)는 "마음에 드는 간판을 오래 고민하다가 여의치 않아서 그냥 만들지 않은 것"이라면서 "대부분은 SNS를 보고 외지에서 찾아오신다"고 밝혔다. 인근 동네 어르신들은 아직 "신장개업했냐"고 묻지만, SNS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제주도에서도 찾아온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인기 카페 'ZAPANGI'. 말 그대로 자판기를 열고 들어가야 한다. [사진 촬영 = 송승섭 인턴기자]
찾아오는 손님에게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면서 알려진 곳도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간판 없는 카페 'ZAPANGI'는 말 그대로 자판기를 열고 들어간다. 회색 콘크리트 벽에 붙어 있는 두꺼운 분홍색 자판기가 카페로 들어가는 문이다. 간판을 굳이 세우지 않아도 자판기를 열고 들어간다는 '유쾌한 체험'이 알려져 망원동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꼭 사진을 찍어야 하는 명소가 됐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간판 없는 가게의 유행에 대해 "일종의 '히든'(hidden) 마케팅으로 볼 수 있다"며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가게들을 찾고 발견해 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뉴스국 송승섭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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