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리 주변 악(惡) 탐구" 강원국제비엔날레, `축제` 강원도에 반전매력 더해
입력 2018-02-09 14:58  | 수정 2018-02-09 15:03

"개인의 어떤 행위로 인한 악의 형태를 넘어 그것이 악이 될 수밖에 없도록 한 사회적 악, 보편적 악, 평범한 악이 우리 인류공동체의 도처에서 일상적으로 빚어지고 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지난 3일 개막한 '제1회 강원국제비엔날레'의 홍경한 예술총감독의 말이다. '악의 사전(The Dictionary of Evil)'을 주제로 열리고 있는 '제1회 강원국제비엔날레'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꾸준히 관람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9일 강원국제미술전람회민속예술축전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3일 강원 강릉시 녹색도시체험센터에서 개막한 강원국제비엔날레에 지난 7일까지 5일동안 약 4만370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하루 9000명에 달하는 관람객이 다녀간 셈이다. 평창올림픽의 성화가 강릉시에 도착한 날에도 단체 관람객을 태우고 온 관광버스들이 행사장 주차장을 메웠다.
예술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불편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국내외 60여명의 작가들의 110여개 작품이 전시된 강원국제비엔날레는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럼픽 기간에 맞춰 다음달 18일까지 열린다.

◆홍경한 감독 "어려운 이웃 외면한 스포츠 축제는 위선"
홍경한 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사진 제공 = 강원국제비엔날레]
홍경한 강원국제비엔날레 예술총감독은 이날 매경닷컴과의 통화에서 무거운 주제의 미술 전시회의 흥행에 대해 "축제 분위기의 강원도에서 무거운 주제를 던진 게 주는 의아함과 이에 대한 (관람객들의) 공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올림픽 정신으로 꼽히는 평화, 평등의 가치가 무너진 곳이 세계적으로 많지만, 대회가 열리는 동안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우리의 실상이 올림픽 축제를 즐길만한지 의문이다. 평등·평화의 올림픽 정신이 구현되려면 그 반대되는 지점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지만 우리는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 악이 뿌리내리고 있는데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축제 분위기를 만드는 건 위선이다"
실제 전시장에는 평소 사람들이 무심코 넘기던 행동이나 상황으로 인해 타인이 고통받는 모습,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는 미디어의 행동으로 부조리한 일이 감춰지는 데 대해 비판하는 작품들이 관람객들에게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
홍 감독은 ▲시리아 작가 압둘라 알 오마리의 '보트' ▲멕시코 작가 호아킨 세구라의 'G8' ▲싱가포르 작가 한 사이 포의 '검은 숲' 등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압둘라 알 오마리의 '보트' [사진 제공 = 강원국제비엔날레]
난민 출신인 오마리는 나룻배 위에 세계 각국 정상들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세계 각국이 지구촌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다는 의미와 함께 정상들에게 난민의 지위를 부여해 그들의 아픔을 투영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홍 감독은 설명했다. 특히 오마리는 개막식에 참석해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세구라는 G8 정상회의가 열릴 때 세계화에 반대하는 단체가 시위를 하면서 태운 각 나라의 국기를 틀에 걸어 작품을 만들었다. 강대국들이 만든 질서가 작가의 나라인 멕시코의 입장에서는 전혀 보편적이지도, 선하지도 않다는 걸 표현하고 있다.
호아킨 세구라의 'G8'. [사진 = 한경우 기자]
사이포의 검은 숲은 숯으로 만든 숲 속을 관람객들이 직접 걷도록 만들어 놓은 구조물이다. 경제논리로 지구의 허파인 정글이 파괴는 것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홍 감독은 "올해 76세인 사이포는 이번 전시회의 출품 작가 중 최고령"이라며 "검은 숲은 강원국제비엔날레의 섭외 제의를 받고 15일동안 작업해 만든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이 포의 '검은 숲'. [사진 제공 = 강원국제비엔날레]

◆주최 측, 평창올림픽과 연계로 흥행 기대
강원국제비엔날레 주최 측은 이날 평창올림픽이 개막하면 관람객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시회장이 꾸려진 강릉시는 올림픽 빙상 경기가 진행되고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실제 평창올림픽을 위해 마련된 무료 셔틀버스 노선은 모두 강원국제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강릉녹색도시체험센터를 경유한다.
관람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부대 행사도 준비하고 있다. 당장 다음날에는 소외된 이웃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다 지난해 작고한 고(故) 박종필 감독을 기리기 위한 관람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이 자리에는 박 감독과 함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사 다큐인을 운영해온 송윤혁 감독,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상임대표 등이 참석해 200여명의 관람객들과 강원국제비엔날레에 출품된 박 감독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오는 24일에는 '팽창하는 비엔날레, 그 자폐적 증세들'을 주제로 한 학술 프로그램도 계획돼 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개최하고 있는 비엔날레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진단하고 향후 비엔날레가 담아야 할 정신에 대해 전문가들이 논의하는 자리다.

토마스 허쉬혼의 '픽셀 콜라주'.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소녀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난민들의 참혹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고통받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감추는 미디어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다. [사진 = 한경우 기자]

[디지털뉴스국 한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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