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시장 홀리듯…암호화폐 테마株 우후죽순
입력 2017-12-18 17:36  | 수정 2017-12-18 20:03
비트코인 광풍이 코스닥시장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금융당국이 구두 경고에 나서고, 한국거래소도 감시 레이더를 가동하기 시작했지만 가상화폐주를 표방하는 코스닥 종목 수는 오히려 늘고 있다. 정부의 가상화폐 규제책이 예상보다 낮은 수위에 머물면서 '묻지마' 투자에 오히려 불을 댕겼고,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까지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 달 전만 해도 대여섯 개에 불과하던 가상화폐 테마주는 최근 30여 개로 부쩍 늘어났다. 코스닥 기업들이 너나없이 가상화폐 사업에 새롭게 뛰어든 탓이다. 이로 인해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본부가 매일 감시하는 종목만 30여 개에 이른다.
한일진공이라는 코스닥 기업은 지난달 24일 가상화폐거래소를 사업목적으로 하는 케이씨엑스 지분 일부를 19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한일진공 주가는 18일 상한가를 치는 등 공시일 이후에만 두 배 상승했다. 19억원을 투자해 불과 20일 새 시총을 900억원이나 불린 셈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업적자(연결기준)인 기업이다. 역시 케이씨엑스에 지분 투자를 한 케이피엠테크, 디지탈옵틱 등도 이날 20% 이상 폭등했다. 이들 역시 만년 적자기업이다.
SCI평가정보 역시 가상화폐거래소를 운영하는 자회사 에스코인에 불과 5억원을 투자했다. 지난달 말까지 1000원 수준이던 주가는 7배 가까이 뛰었고 시가총액은 2000억원 이상 불어났다. 빗썸 운영사 주식을 보유한 비덴트, 옴니텔 등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이 밖에도 '엠게임'이 가상화폐 채굴사업에 뛰어든다는 소식에, '모다'는 게임 마일리지를 가상화폐로 교환하는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힌 뒤 폭등했다. '씨티엘'은 아예 새로운 가상화폐를 직접 발행하겠다고 선언한 뒤 역시 이날 상한가를 쳤다. 또 '포티스'는 가상화폐 결제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이와는 반대로 '퓨처스트림네트웍스'의 경우 가상화폐거래소 코인원과 사업 연관성을 부인하는 공시를 낸 뒤 주가가 하락했지만 18일엔 뚜렷한 이유 없이 주가가 다시 급등했다.
가상화폐 테마주의 공통점은 상당수가 기존 주력사업이 부실한 적자기업이라는 데 있다. 이들 기업 중 상당수는 주가 급등세 속에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등을 통해 운영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겨우 몇억 원을 투자해 주가를 띄우고 있고, 더 악의적으론 투자계획에 대해 소문만 흘리는 곳도 있다"며 "대주주가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주식을 매매하거나 고점에 주식을 매도하는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래소 입장에선 현저한 주가 변동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하거나 투자위험 종목으로 지정해 거래를 하루 중단하는 것 외엔 뾰족한 대처법이 없는 상황이다. 그러는 동안 코스닥시장은 바이오 광풍에 이어 이번엔 비트코인 광풍으로 혼탁해지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상화폐 테마주 30여 개를 추려 집중 모니터링 작업을 하고 있다"며 "근거 없는 소문이 확산될 경우 즉시 해당 기업에 조회공시 요청을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루머에 대해서는 근원지를 파악하고 불공정거래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사법처리 절차를 밟아나갈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이 같은 구두 경고는 가상화폐 테마주 광풍에 별다른 제동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주 긴급 회의를 통해 금융기관에 대해 가상통화 보유와 매입·지분 투자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또 미성년자에 대해서도 가상통화 계좌 개설을 금지했다. 가상화폐를 통한 불법 외환거래인 '환치기' 실태조사에도 착수했다. 또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도 검토하고 있다. 일단 거래 자체는 허용하되 투명성 확보를 통해 투자자 보호에 나선다는 방침인 셈이다. 하지만 기업들로선 연관 사업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여전히 불명확하다는 점을 이용해 너도나도 신규 사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신헌철 기자 / 진영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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