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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사람] `Mr.원`의 귀환…김용덕 신임 손해보험협회장
입력 2017-10-31 17:32  | 수정 2017-10-31 20:30
31일 손해보험협회 총회에서 협회장으로 선출된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2년 전 자신이 펴낸 `금융이슈로 읽는 글로벌 경제`란 책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주형 기자]
'국제금융통이 돌아왔다.'
31일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손해보험협회 수장으로 선출되자 금융계에서 나온 평가다. 김용덕 신임 협회장은 1974년 행시 1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외환위기 직후 5년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과 차관보로 활약하면서 국제금융계에선 '미스터 원'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일본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전 재무성 재무관이 '미스터 엔'으로 불린 것과 대비된다.
그 후 관세청장, 건설교통부 차관 등을 거쳐 금감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을 지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캠프 정책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에서 금융정책을 입안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이날 열린 손보협회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새 협회장으로 추대됐다. 11월 6일 공식 취임해 3년간 손보협회를 이끌게 된다.
이날 총회 직후 서울 중구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매일경제신문과 만난 김 신임 협회장은 "손해보험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나아가서는 노후 보장 문제와도 연관이 깊은 국가 경제의 핵심 산업"이라며 "건전성과 수익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의 가교 역할을 잘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새 손보협회장으로서 업무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 생각인가.
▷공식 취임 때까지 시간이 있는 만큼 업무보고를 받고 현황도 파악하고자 한다. 2008년 이후 글로벌 차원에서 금융감독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인데, 특히 보험업계는 IFRS17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감독 규정이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여기에 맞는 새 지급여력(RBC) 비율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되는 만큼 이 부분을 들여다볼 계획이다.

―손보업계의 재무건전성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겠다는 뜻인가.
▷손해보험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책임지는 금융상품이다. 최근에는 저축성 보험도 많이 판매하다 보니 국민의 노후 보장 문제와도 관련이 깊다. 손해보험 산업이 수익성을 잃지 않고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이 국가 경제를 위해 중요하다. 협회장으로서 이 부분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숙고하려고 한다.
―관료 출신 협회장으로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생각인가.
▷세계 경제 패러다임이 스트롱맨 시대를 맞아 파워 위주로 가고 있지만 이보다는 융합하고 민주적으로 배려하는 게 중요하다. 업계는 업계대로, 당국은 당국대로 각자의 입장이 있는 만큼 중간에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 자연스럽게 해법을 찾도록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손보업계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 역할을 하고 싶다.
―오랜 공직생활을 거쳤지만 보험업계와는 인연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전문성 부족을 지적하는데.
▷공직생활을 하며 국제금융 분야에서 활동해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보좌관이나 금감위원장, 금감원장을 거치면서 금융의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 볼 수 있었다. 특히 손보업계가 국내외 감독당국의 정책 방향에 맞춰 각종 현안을 조화롭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협회가 중간자로서 역할을 하는 데 있어 그간의 경력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100세 시대를 맞아 보험사의 수익성이 악화될 우려가 있는데.
▷보험사들의 수익성이 나빠진 것은 금리 변화 영향도 크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다 보니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상품이 회계적으로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미국을 필두로 글로벌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보험사들의 투자 수익은 다시 올라가 과거의 손실을 완충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여기에 맞춰 앞으로 보험 산업에서 자산 운용이 갖는 중요성에 업계와 당국 모두 주목해야 한다.
―최근 글로벌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질서와 관련된 세 가지의 큰 트렌드 변화가 있었다. 하나는 1990년대부터 20여 년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주류로서 맹위를 떨쳤던 신자유주의 기조가 퇴조한 것이다. 시장의 힘을 키우고 정부 규제를 축소한 것이 부동산 버블과 과잉 여신을 거쳐 금융위기를 불러왔다고 판단됐다. 이제는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글로벌 금융 규제 강화 쪽으로 전환되고 있다.
두 번째는 과거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가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며 세계 권력이 분화되는 다극 체제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G1)이라는 절대적인 조정자가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앞장서서 해결책을 찾았지만 지금은 누가 그 역할을 할지 불확실한 'G―What?'의 시대가 됐다. 마지막은 돈을 많이 풀어도 소비와 투자, 물가가 제자리인 유동성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유효수요를 창출해 소비와 투자, 고용을 늘려 낙수효과를 만든다는 과거 케인스 경제학의 논리는 이제는 맞지 않게 됐다.
―이 같은 변화가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은 미국·북한 간 긴장, 한반도 주변 4강 간 갈등까지 함께 겪고 있다. 특히 가장 심각한 것이 고용 없는 성장이다. 한국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1% 늘어날 때 고용이 얼마나 증가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인 고용탄성치가 0.2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0위에 불과하다. 그간 고용을 대거 창출했던 제조업, 대기업이 최근에는 자동화로 전환하고 인건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특히 대기업들은 많은 이익을 실현해도 주로 내부유보로 돌리고 배당이나 투자, 임금 인상에는 인색하다.
―고용 문제 해법은 무엇일까.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가 늘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대기업 중심의 불균형 성장 전략은 버리고, 균형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서비스나 내수 부문에서 관광산업, 문화 콘텐츠, 물류, 유통, 통신, 의료 등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도록 정부의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 지식 기반의 4차산업을 육성해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용없는 성장 딜레마…中企·서비스업 키우는 균형성장이 해법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발 외환위기를 맞은 지 20년이 흘렀다.
▷과거를 돌아보면 금융위기는 빠르면 5년, 길면 10년 주기로 발생해왔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금융위기를 맞는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욕과 부주의, 망각이라고 본다. 특히 1997년의 외환위기는 과거의 성장 위주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시대의 소명을 무시한 결과다.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의 신화가 관치금융, 부족한 금융 리스크 관리 행태와 맞물렸고 여기에 금융당국의 규제 실패까지 겹쳐 대규모 부실을 가져왔다. 단기 외화 유동성 관리에 실패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시중은행의 부도를 막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쏟아붓다 보니 한 달 만에 국가부도 상태까지 가서 결국 IMF의 지원을 받은 것이다.
―'제2의 IMF'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국 경제는 자강자고(自强自固), 즉 스스로 강하고 단단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코 자만해서는 안된다.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고 외국 자본도 시장에 많이 들어온 상황에서, 특히 대외 부문 안정성을 유지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경상수지가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외환보유액도 상당 수준으로 쌓아놨지만 북·미 갈등처럼 우리가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한반도에 벌어질 때 언제든 한국 경제는 취약해질 수 있는 만큼 자만은 금물이다. 특히 국제금융 부문은 국가 경제의 파수꾼이다.
훌륭한 예방의가 유능한 외과의보다 낫다. 외과수술까지 가지 않도록 평소에 적절한 운동과 약물 처방으로 금융시장에 거품이 커지지 않도록 건전성 감독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지난해만 해도 활발했던 구조조정 논의가 올해는 잠잠해졌다.
▷구조조정 이슈는 단발성이 아닌 상시 대응 체제로 다뤄야 한다. 2015년 말 기준 3년 연속 이자보상배율이 100% 미만인 한계기업은 3300여 개이고 그 비중이 14.7%에 달한다. 3년 동안 영업해도 이자를 못 갚을 정도면 구조조정이 돼야 하는 곳들이다. 아직 세계 경제 부진이 이어지는 데다 글로벌 공급과잉 현상까지 이어지면서 산업 차원의 구조조정 압박도 늘어나고 있다. 선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경기가 조금 좋아지고 수출이 늘어난다고 해서 한계기업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보는 것은 성급할 수 있다.
―최근 금리 인상 분위기도 한계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것으로 보이는데.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연말에 한 차례, 내년과 후년에도 인상을 이어가 2019년에는 기준금리를 3%대까지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도 금리 역전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이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금리가 3%대에 돌입하면 그동안 버티던 기업들도 못 버티는 곳이 많아질 것이다. 금리 정책도 구조조정과 마찬가지로 항상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김용덕 손보협회장은…
△1950년 전북 정읍 출생 △1969년 용산고 △1974년 고려대 경영학과 △1974년 행시 합격(15회) △1992~1994년 재무부 경제협력국·국제금융국 과장 △1994년 재정경제원 통상과학예산과장 △1996년 대통령경제수석실 선임행정관 △1998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 △1999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 △2001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차관보) △2003년 관세청장 △2005년 건설교통부 차관 △2006년 대통령비서실 경제보좌관 △2007년 금융감독위원장 겸 금융감독원장 △2009년 고려대 경영대 초빙교수·법무법인 광장 고문
[대담 = 김대영 금융부장 / 정리 =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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