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퇴직금 안주고 버티던 얌체 버스회사…`버스 요금통` 압수당한 사연은
입력 2017-10-11 14:58  | 수정 2017-10-11 15:55

경영난이라며 운전 기사들의 임금·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던 한 시내버스 회사가 한밤중 버스 요금통을 압류 당해 밀린 돈을 물게 됐다. 법원의 근로자 승소 판결 후에도 지불을 미뤄온 업체의 꼼수에 '요금통 강제집행'으로 재치있게 응수한 셈이다.
11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전주지법에 따르면 전주 A여객에서 20년간 버스기사로 일하다 지난 1월 퇴직한 김 모씨는 "퇴직금 5730여만 원과 체불 이자를 지급하라"며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6월 승소했다. 소송 과정에서 퇴직금 일부는 받아냈지만 지연 이자 등 350여만 원이 아직 남아있었다.
판결대로 돈을 받기란 쉽지 않았다. 회사가 주요 수입원이자 한 달에 한 번씩 카드회사에서 정산하는 교통카드 대금 수백억 원의 권리를 제3자에게 넘겨버린 것이다. 김씨를 대리한 공단 전주지부의 박왕규 변호사(39·사법연수원 33기)는 "피해 근로자가 100여 명에 달했는데도 회사는 수십 대 버스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고, 자산은 허위로 미리 이전 조치를 해둔 것으로 의심됐다"고 말했다.
김씨와 박 변호사 등은 회사에 다른 재산이 있는지 머리를 맞댄 끝에 버스마다 타는 곳에 놓여있는 요금통을 생각해냈다. 교통카드가 보편화된 후에도 현금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이 적지 않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이 회사는 전주 시내버스 392대 중 약 100대를 운행하는데, 하루 요금통 회수액만 400만~70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에 전주지법 집행관과 김씨 등은 버스 운행이 끝난 뒤 요금통을 한꺼번에 정산 중이던 회사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공단 측은 "사측도 당황해 현장에서 김씨에게 밀린 돈을 모두 갚았다"고 전했다. 게다가 지난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말께에는 다른 버스기사 100여 명의 체불 임금 2억여 원을 모두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변호사는 "임금체불 근로자 중 김씨가 처음으로 소송을 내고 요금통 강제집행까지 시도한 사례였는데 결과적으로 근로자 대부분이 임금을 받게 됐다"며 "진행 중인 유사 소송들도 잘 마무리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법률적 도움이 필요한 경우 법률구조공단에서 법률상담·소송대리를 지원받을 수 있다. 공단 관계자는 "승소하더라도 집행을 못하면 판결문은 '종이 조각'에 불과한데, 회사의 특수한 사정을 파악해 근로자의 권리를 실현한 사례"라며 "향후 유사 사건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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