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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청소년금융교육協 회장 취임한 신제윤 前금융위원장
입력 2017-10-10 17:03  | 수정 2017-10-10 19:22
34년간의 공직생활을 뒤로하고 제6대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을 맡은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의욕을 상실한 청년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게 한국 사회·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충우 기자]
행정고시(24회) 수석 합격. 뛰어난 국제 금융 감각과 대외 협상력을 가진 관가의 대표적 '국제금융통'. 기획재정부 제1차관과 국내 금융계를 총괄하는 금융위원회 위원장(장관급)을 지낸 관료. 34년의 관직 생활 동안 수많은 수식어를 받았다가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60)이 지난달 29일 금융교육을 이끄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제6대 회장에 취임했다. 회장 취임식 직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한 그는 금융 관료 선배로서 현 정부의 반기업 정서와 공공 부문 일자리 확대, 소득 주도 성장론 등에 대한 안타까움을 털어놨다. 그는 "공무원을 늘리기보다는 의욕상실증에 빠진 한국 청년들에게 확실한 보상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관직 생활을 끝으로 이제는 민간 부문에서 한국 금융을 위해 일하기 시작한 신 전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후임들을 위해 아낌없는 충고를 했다.
―최근 기업하기 힘들다는 말이 많이 들린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등으로 노동시장 유연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기업의 불만이 많은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자체가 노동을 존중하는 경제로 가겠다는 것이니, 정권 초기에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으로부터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가 현실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혁신 성장'이라는 화두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앞으로 이런 방향으로 보완될 것이다. 혁신 성장은 다른 측면에서 말하면 '규제 완화'와 '기업가 정신 함양'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정책의 무게중심이 노동계 쪽에 있었다면 이제는 다시 경영인 쪽으로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예산과 금융·재정 정책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좋든 싫든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인 소득 주도 성장에 대한 개인적 견해는.
▷과거에도 그런 정책을 안 한 것이 아니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때 임금과 배당을 높여서 소비를 진작하자고 했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다만 소득 주도 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적절한 혁신이 들어가 줘야 한다. 외국인이 국내 기업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당 확대로 국민소득을 늘려 성장을 유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부 유출 문제도 있고 임금을 올리게 되면 국내 기업들은 해외로 가거나 외국인을 고용할 것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성이 크지 않다. 단기적인 '마중물' 효과 정도로 보면 된다. 반드시 혁신이라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이런 것이 없으면 힘들다. 늦게나마 정부가 혁신 성장을 중시한 것은 반갑다. 지금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최근 반도체 부문에서 이익이 많이 나면서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다른 산업 부문이 침체하다 보니 경제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석도 있는데, 지금 위기라고 느끼는가.
▷현시점을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분야별 불균형 문제도 우리 경제에 항상 있었다. 1990년대는 반도체, 2008년 전후는 조선·해운 분야 이익이 급증하면서 착시 현상을 초래했다. 업종별로 분명한 업다운이 있다. 이 같은 착시 때문에 구조개혁 노력을 안 할 경우 그 업종이 언젠가는 침체에 빠지고 그때 상당한 위기가 올 것이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정책을 가져가야 한다. 지금 반도체 분야 이익 때문에 정부 세수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데 재정 부문에서 수입을 아껴서 써야 한다. 무상 정책 등 정치적인 유혹이 강하지만 보수적으로 가는 게 재정의 기본이다.
―현 정부에서 복지 관련 재정을 쏟아내고 있는데.
▷가장 걱정되는 것은 공공 부문이 확대되는 것이다. 고령화 문제 해결 등과 달리 공무원의 경우 한번 뽑으면 연금까지 30~40년 동안 계속 돈이 들어간다. 이 때문에 공무원 증원, 공기업 확대 등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문제다. 이건 5~10년 문제가 아니라 항상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최근 공무원 수를 늘리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럽다. 정책 최우선 순위는 지속 가능성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은 법인세를 인상하겠다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 추세다. 어떻게 보나.
▷법인세 인상은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기 위한 것 같다. 나름대로 논리는 있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특성상 국제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이 인하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올리는 것은 국제 경쟁력 확대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 법인세 인하를 서두르면 기업들은 자꾸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겠다고 할 것이다. 이것은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청년들이 의욕상실증에 빠져 있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보상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도 안정적이고 편한 쪽으로만 가고 있다. 청년들의 모험 정신이 사라지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청년들이 모험 정신을 갖고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동기 부여를 해주는 게 시급하다.
―왜 청년들이 의욕을 상실했는가.
▷우리 경제가 성숙 단계로 접어들면서 우선 기회가 많이 줄어들었다. 모험 정신 하나로 물건을 팔아 돈 버는 시절은 지났다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자식들에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청년들이 모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적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한데 아직 우리는 이런 제도가 미약하다.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금융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는데 왜 안 지켜지는 것인가.
▷금융은 규제 산업이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금융은 규제 산업이다. 문제는 건전성 규제, 소비자 보호 규제 외에 여러 가지 다른 규제를 어떻게 철폐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사 개입, 특정 기업에 대한 대출 등 경영 간섭 문제다. 이런 보이지 않는 규제를 없애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우선적으로 당장 보이는 규제들만 없애려고 했다. 보이지 않는 규제는 없애도 보이지가 않으니 없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정권을 창출하면 금융기관 인사 몫을 당연히 정치인들이 갖고 있다는 인식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관치라기보다는 '정치금융'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인들이 일은 하지 않고 정권에 선을 대려고 줄을 선다. 이런 부분의 고리를 어느 순간에는 끊어야 한다. 법적 권한이 없는 기관에는 과감하게 인사 개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게 필요하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출범 초기 돌풍을 일으켰다. 인터넷은행이 은행권에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하는가.
▷출범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고객 서비스 부문이나 금융의 접근성 부문에서 대형 은행들의 영업이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변해 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터넷은행의 도입은 고무적이다.
―인터넷은행을 출범시킬 때 은산 분리 완화가 중요한 전제였는데.
▷과거의 논리 때문에 미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가 있다. 은산 분리가 바로 그런 대표적 사례다. 과거에는 단순하게 저축하면 기업들에 돈이 흘러들어 가고, 그 돈으로 기업이 장사를 잘해 경제가 돌아간다는 논리가 통했다. 은행이 '갑'의 위치에서 기업에 대출해 주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대기업이 과거처럼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리는가. 은행이 더 이상 갑이 아닌 시대가 됐다. 과거 논리가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면 이를 과감하게 수정해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나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산운용업서 '금융의 삼성전자' 도전해야
과거 금융권을 이끈 수장으로서의 아쉬움은 물론이고 앞으로 금융교육을 이끌어갈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으로서의 각오도 솔직히 털어놨다. 유명 방송인 딸을 둔 아버지로서의 인간미 또한 인터뷰 도중 묻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금융의 삼성전자는 나올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 단기간에 나오기 어렵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다. 글로벌 금융회사인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UBS 등은 오랜 역사를 통해 전 세계 시장과 국민에게 신뢰를 받았다.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 기업들은 제품이 훌륭하면 단기간에도 성장이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금융 역사가 짧고 금융 규모도 작아 세계적으로 신뢰를 쌓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자산운용업은 단기간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나 맥쿼리 등도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당장 지금 세대에 세계 1위가 될 수는 없어도 차근차근 100년 정도 실력을 쌓으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동남아시아 등에서 차근차근 올라가면 될 것 같다.
―최근 유행하는 가상화폐 투자는 어떻게 보나.
▷만약 다음에 금융위기가 일어난다면 여기서 일어나지 않을까 싶다. 어느 순간 신뢰가 무너지면 그대로 무너지게 된다. 현재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과열로 치닫고 있다. 정식 화폐로 인정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
―최근 은행과 증권 등에서 전업주의가 충돌하고 있는데.
▷어느 것이 맞는다고 말하기 어렵다. 겸업이든 전업이든 일관성 있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금융 혁신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쓸데없는 것에 업력을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
―금융위원장 시절 가장 아쉬웠던 것은.
▷2014년 신용카드사 신용정보 유출 사태가 터진 뒤 카드사들의 정보 이용을 강도 높게 제한했다. 당시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조치였다. 개인정보 가운데 신용정보가 가장 유용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잘 활용할 수 있는데 이것을 과도하게 규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무척 아쉽고 안타깝다.
―국민의 금융교육을 책임지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그리고 한국 금융교육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 국민은 다른 분야에 비해 금융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2003년 카드 사태, 2011년 저축은행 사태를 겪은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금융 정보 비대칭성 때문에 나온 문제들이다. 이 같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 청소년을 중심으로 전문 금융 지식을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재미있는 교재와 참신한 아이디어로 청소년이 스스로 금융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의욕을 불어넣고 싶다. 탈북자, 다문화 가족, 장애인 등 취약 계층도 더 쉽게 금융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개인적인 취미와 건강 관리는.
▷잠을 잘 자는 것이다. 어느 때나 어느 시간이나 가능하다(웃음). 그밖에 특별한 취미는 없다.
―딸인 신아영 아나운서가 최근 활발한 방송 활동으로 유명하다.
▷딸이 아주 독립적이고 자아 의식이 강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가족이지만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준다. 마음속으로 많이 응원하고 있다.
신제윤 前금융위원장·청교협 회장은
△1958년 서울 출생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1981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총무처 행정사무관 △2002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2004년 재정경제부 부이사관 △2007년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2007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2008년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 △2011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 △2011~2013년 기획재정부 1차관 △2013~2015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장관급) △2017년~현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 회장
[대담 = 박봉권 금융부장 / 정리 = 박준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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