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바닥 근접한 한국전력 주가 기회일까 더 기다려야 할까
입력 2017-10-10 06:03 
한국전력 나주 사옥 / 사진=매경DB
[증권투자 비밀수첩-154] 10년만에 돌아온 위기의 한국전력 주가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따른 원가상승 압력에
주가 3년래 최저치 기록…PBR은 0.35배 수준

2008년 어느 날의 일로 기억합니다. 기자들은 소위 '출입처'라는 곳으로 출근해 기사를 쓰고 취재를 하는 업무를 하는데요, 당시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한국전력 본사 기자실로 종종 출근을 할 때였습니다(현대차그룹이 10조원 넘는 돈을 주고 베팅해 가져간 바로 그 건물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기자실로 올라가는 와중에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 표시된 한국전력 주가가 속절없이 폭락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당 2만원대 초중반을 찍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직원 한 명이 "와, 정말 엄청나게 떨어졌네. 이제 좀 들어가야 할 때 아니야?"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당시 한전은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2008년 여름은 원자재값에 엄청난 거품이 있을 때였습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 근처까지 치솟았습니다. 지금 가격의 세 배쯤 되겠네요. 그 덕에 알뜰주유소가 생겨나고, 셀프주유소가 갑자기 확 늘어났지요.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 차를 몰고 다니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글로벌 원유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원유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며 잔뜩 겁을 줘서 전 세계가 공포에 질렸던 해였습니다. 원유, 석탄을 비롯한 원자재 전반 시장 모두가 하나같이 미쳐서 날뛰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당시 정부는 '공기업 예산 감축'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공기업의 방만 경영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마른 수건 쥐어짜기'가 유행할 때였습니다. 2008년 한국전력은 상반기에만 1조6700억원의 원료비 손실을 봤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원료비 손실분의 50%인 8350억원을 보전해주는 대신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는 뜻을 밝혔지요. '산업의 쌀'인 전기요금을 올리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많을 테니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나온 대책이었습니다.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기업 한전을 상대로 "예산 절감에 더 힘을 써라"는 압박도 함께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원료비가 치솟아 적자가 임박한 상황인데 제품 가격은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지요. 그러니 주가가 바닥을 기는 건 당연한 상황이었습니다. 한전은 2008년을 시작으로 3년 넘게 적자 행진을 합니다. 그러니 주당 3만~4만원대에서 놀던 주가가 2만원대로 급락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당시 한전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가치투자라는 렌즈를 기반으로 주식을 보는 몇몇의 사람들은 조용히 한전 주식을 바구니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한전은 절대 망하지 않을 회사라는 거였습니다. 한전은 국가 기간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회사인데, 한전이 망한다면 국가가 망한 거나 마찬가지가 되겠죠. 주식이 휴지가 되는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둘째는 당시 한전의 주당순자산비율(PBR)이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치를 기반으로 주식을 보는 사람들은 주당수익비율(PER) 보다는 PBR에 더 무게를 두고 의사결정을 합니다. PER는 쉽게 변하지만 PBR는 그렇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 기업이 예상치 못한 특별이익으로 한 해 순이익이 확 늘어나면 PER는 그해 뚝 떨어집니다. 하지만 PBR는 그에 비해서 훨씬 무겁게 움직이지요. PER가 기업이 이 순간 얼마나 반짝거리는지를 '스냅샷'으로 보여준다면, PBR는 흑백사진으로 구성된 한 권의 사진첩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한전은 2002~2004년 PBR가 0.3~0.4배선에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2005년 이후에는 가치를 좀 더 인정받아서 PBR가 0.4~0.6배선에서 거래되고 있었죠. 사실 말도 안 되는 저평가 상황입니다. 기업이 가진 순자산이 시가총액만큼도 비치지 못한다는 거니까요. 2008년 한전 주가는 다시 0.4배 선을 깨고 밑으로 내려올 만큼 가치가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바로 "이럴 때 한전에 투자해야 한다"는 '역발상 투자'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었죠. 2008년 10월 20일 김승우 당시 삼성증권 연구원이 쓴 '한국전력-발상의 전환, 지금이 기회다'라는 리포트의 일부를 발췌해 소개합니다. 거의 10년 전에 나온 리포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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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견을 기존의 '홀드(HOLD)'에서 '바이(BUY)'로, 목표주가는 3만4800원에서 3만6900원으로 상향 조정함. 동사의 경영진과 정부 사이 연료비 조정 요금제도 도입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판단됨. 이러한 요금제도 도입은 동사의 주주가치 훼손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의견에는 변함이 없음. 최근 주가의 가파른 조정으로 인해 현재 PBR가 0.37배까지 떨어져 있음. 과거 10년간 역사적 PBR 저점이 0.3배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매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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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요약하자면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원료비는 올라갔고 요금은 못 올린 상태다. 그래서 주주가치가 훼손됐고 주가가 추락했다. 이 상황을 극복한 유일한 대책은 결국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다. 10년간 PBR 0.3배가 최저였는데, 지금 0.37배다. 주가가 여기서 떨어져 봤자 얼마나 더 떨어지겠느냐. 과감히 지금 살 것을 권한다.
이 당시 김 연구원의 용기 있는 조언을 듣고 한전 주식을 산 사람은 돈을 벌었을 수도, 아니면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김 연구원은 한전 주가가 주당 2만4800원 할 때 이 보고서를 썼는데, 이후 한전 주가는 2010년 초 주당 4만2000원 안팎까지 올랐거든요. 하지만 한전 주가는 이후 다시 내리막을 타서 2011년 8월 주가가 주당 2만원 밑을 깨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주가가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이때까지 들고 있다가 눈물을 머금고 손절매했다면 아마도 손해를 봤겠지요.
하지만 그냥 묻어놓고 끝까지 버틴 투자자는 돈을 크게 벌었을 겁니다. 2016년 한전 주가는 연일 승승장구하면서 주당 6만원을 넘기도 했거든요. 그러니 돈을 벌었는지 여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참 힘든 상황입니다. 주식으로 돈을 벌려면 사는 것도 잘 사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잘 파는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조언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왜 10년쯤 전 얘기를 갑자기 꺼내놓은 것일까요. 그건 지금 한전이 처한 위치가 10여 년 전 당시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전은 지금 위기입니다. 다만 한전을 위기로 몰아넣은 변수가 당시와는 달라졌을 뿐입니다. 10여 년 전에는 치솟는 원료값이 한전을 그로기로 몰고 갔습니다. 지금은 원자력발전소 폐지 변수가 한전을 흔들리게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정부는 원자력발전소 축소 및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를 실천에 착착 옮기고 있습니다. 이게 맞는 방향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릅니다. 원자력 발전은 겉보기에 가장 싼 발전수단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비용, 예를 들면 폐기물을 처리할 때 드는 사회적 갈등 등 무형의 비용과 지진 등 사고가 났을 때 어마어마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싼 발전수단이 아니라는 반대논리에도 설득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가치판단의 영역이니 더이상 여기서 다룰 주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원자력 발전 비중이 줄어들면 한전 입장에서 원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겁니다. 원자력 발전대신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 전기를 만들어야 하니 그렇지요.
이 같은 우려는 주가에 반영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전 주가는 3년래 최저점을 맴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기요금 인상은 불투명합니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전혀 가닥도 잡히지 않습니다. 정부는 지난 8월 말 올해 한전 별도 순익 전망치를 1조7128억원으로 제시했습니다. 2021년 순이익은 4974억원까지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올해 대비 70% 가까이 하락한다는 얘기입니다. 당분간 투자자들은 한전 주식을 쳐다볼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역발상 투자'방법을 꺼내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지금 한전 PBR를 볼까요. 지금 한전 주식 PBR는 0.35배선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10년래 최저점인 0.3배가 머지않은 수준입니다. 한전 주식은 회사가 3년 연속 적자를 보던 시기에도 PBR 0.3배선은 사수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원전 관련한 이슈와 관련된 위기가 원유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오르내리던 10여 년 전 당시와 비교해 더 심한 상황일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지금쯤 한번 베팅을 해볼 시기가 됐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극히 보수적인 잣대로 투자를 하는 분이라면 한전 주식이 PBR 0.3배를 찍는 순간을 기점으로 돈을 태우면 어떨까요. 한전 주가가 그만큼 내려온다면 주식을 사고, 그렇지 않다면 주식을 사지 않는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PBR가 0.3배선까지 내려오려면 주가가 주당 3만원 안팎으로 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9월 28일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이 쓴 한전 관련 리포트 '3분기 프리뷰 : 상처가 아물어 간다'보고서 일부를 또 인용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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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는 한전에 대해 투자의견 '바이(BUY)', 목표주가 5만5000원을 유지한다. 현재 주가는 정부 정책 불확실성이 반영되며 부진한 상황이다. 그러나 주가가 대부분의 악재를 반영 했고, 당사가 추정하는 기업가치 하단(한전의 한국 송배전 부문 가치 25조원, 주가 3만9650원)을 하회하고 있어 저평가 국면이라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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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를 믿고 한전에 투자한 사람들은 돈을 벌 수 있을까요. 주가가 오를지 내릴지는 지나봐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PBR가 역사적 저점 부근까지 내려온 한전 주식을 한번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는 증권가에서 많이 들립니다. 일단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할지 여부를 다루는 공론화 결과가 이달 중에 발표될 예정인데요, 이 결과에 따라 단기 주가는 출렁일 전망입니다. 주가가 브이(V) 자 반등을 할 수도, 아니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이지요.
[홍장원 증권부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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