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로힝야 엑소더스` 50만 돌파…비극의 배후엔 `식민통치의 역사`
입력 2017-09-29 14:34 

유엔이 미얀마 정부군의 로힝야족 소탕작전이 시작된 지난달 25일 이후 미얀마를 탈출해 방글라데시로 들어온 로힝야족 난민수가 50만 명을 넘어섰다고 28일(현지시간) 밝혔다. 미얀마에 거주하던 로힝야족 인구가 110만 명이었음을 고려하면 로힝야족 2명 중 1명 꼴로 난민이 됐다는 얘기다. 이날 방글라데시로 탈출하던 로힝야족 120명을 태운 배가 방글라데시 해안에서 뒤집혀 어린이 9명을 포함해 최소 15명이 숨지는 등 탈출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비극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미얀마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8일 로힝야족 사태를 다룬 안보리 회의에 참석해 "로힝야족 사태가 악몽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군사작전 중단을 촉구했다.
특히 200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미얀마의 실권자로 꼽히는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 겸 외무장관에 대한 시선은 싸늘해졌다. 각종 인권단체에서는 수지의 상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내부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국제사회의 한결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수지의 인기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1일 다수 미얀마 국민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수지의 사진과 함께 "우리는 당신과 함께하고 있다" 등의 글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국내외 시선의 차이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로힝야족의 비극이 '근대 제국주의의 폭력적 강제이주'에 탄생 기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로힝야족의 비극은 단순히 미얀마 내부의 사정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 근원엔 식민통치가 유린한 약소국의 뒤틀린 역사, 그리고 이를 외면해온 국제사회의 무책임함이 자리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가장 활발하던 19세기, 대영제국은 미얀마 최후의 왕조인 알라웅파야와 치열한 전쟁 끝에 미얀마를 식민지로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이어진 미얀마인들의 완강한 저항에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영국은 곧 제국주의 시대다운 해결법을 생각해냈다. 미얀마 원주민을 농토에서 내쫓고, 그 자리에 이미 식민 지배 중이었던 인도 동부 벵갈지역의 이슬람교도 일부를 이주시켜 중간 지배 계층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건너온 벵갈인들이 로힝야족의 조상이다.
원주민들로서는 출신도 종교도 다른 이주민이 자신들이 내쫓긴 토지에 주인으로 들어온 데 고운 시선을 보낼 리 없었다. 여기에 로힝야족이 영국에 의해 지속적으로 우월적 법적 보호를 받아온 사실도 미얀마인들의 혐오감을 부채질했다.
2차 세계대전 때 미얀마를 침공한 일본은 미얀마의 뒤틀린 역사를 다시 한 번 자극했다. 영국군을 완전히 내쫓고 싶었던 일본은 미얀마인들을 포섭하기 위해 로힝야족이 점거하던 농장을 해체해 다시 미얀마인들에게 돌려줬다. 이 과정에서 쫓겨난 로힝야족 또한 미얀마인들에게 앙심을 품게 됐다.
1942년 '아라칸 대학살 사건'으로 로힝야족과 미얀마인은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됐다. 영국군은 내쫓긴 로힝야족을 재무장시켜 대일 항전에 나서게 했는데, 로힝야족은 일본군 대신 농토를 돌려받은 미얀마인들을 집중 학살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와 인접한 라카인주의 아라칸족은 로힝야족의 대학살로 이 해에만 2만여 명이 희생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슬람교를 믿는 로힝야족은 미얀마의 주류 종교인 불교의 절을 부수고 승려를 학살해 거의 모든 미얀마 민족의 원한을 사게 됐다.
미얀마는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영국은 대규모 복수전이 벌어질 것을 우려했으나 "로힝야족을 영국이 다시 데려가든 방글라데시로 이주시키든 책임을 져라"는 미얀마 정부의 요구엔 난색을 표했다. 대신 로힝야족의 처우 보장을 독립의 조건으로 내걸었고, 정부와 의회 다수 요직에 로힝야족을 배치한 뒤 떠났다. 그러나 이 조치는 오히려 미얀마인들의 증오감만 자극하는 결과를 낳았다.
쿠데타를 통해 1962년 정권을 잡은 버마족 출신의 네윈 장군은 '로힝야 지우기' 작업에 착수했다. 1982년 새 시민법을 통과시켜 로힝야족의 미얀마 국적을 박탈했으며, 원 거주지로 여겨지는 방글라데시로 추방하기 쉽도록 인접한 라카인주 일대로 강제이주시켰다. 지속적 박해에 질린 로힝야족의 일부는 방글라데시로 난민이 돼 떠나고, 일부는 분리주의 반군에 소속돼 활동하는 등 굴곡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수용 능력을 넘은 탈출 행렬에 지친 방글라데시 정부마저 "로힝야족은 미얀마 출신이니 난민을 데려가라"고 요구하고 있다. 할 말이 있는 이는 많아도 책임지려 하는 이는 없는 게 로힝야족 사태를 대하는 모두의 현실이다. 역사의 원죄를 이고 태어난 로힝야족의 후손들만 조상의 업보를 속죄하며 살아가고 있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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