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해상에서 침몰해 29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결정적인 사고원인이 과도한 우현 조타각 조정과 이로 인한 적재화물 쏠림이라는 연구결과를 담은 국내 연구진 논문이 저명 국제저널에 등재됐다. 이는 사건 발생 6개월 후 선사 측의 무리한 선체개조 및 과적, 조타수의 조타미숙 등을 직접적인 침몰 원인으로 밝힌 검찰 수사 결과와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참사 이후 일각에서 제기해온 미군 잠수함 충돌설 등 외부충격에 의한 침몰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이다.
24일 학계에 따르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김용환 교수 연구팀은 최근 세월호 전복의 전후 상황에 대한 수치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한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연구는 이달 6일 선박해양공학 분야의 SCI급 국제학술저널인 '해양환경엔지니어링저널(JEME•Journal of Engineering for the Maritime Environment)에 게재됐다. 세월호 침몰 당시와 가장 근접한 시나리오를 찾기 위해 연구팀은 총 7166만회에 달하는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실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확률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원인을 도출해낸 셈이다. 과거 미국 타이타닉호가 빙하에 부딪친 뒤 23도로 기울어졌을 때 두동강이 나는 등 사고과정도 이와 유사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밝혀졌다.
김교수팀은 서울대 해양유체역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선박 조종운동 수치 해석 프로그램'을 세월호 사고 당시 물리적 현상에 맞도록 수정해 연구를 진행했다. 세월호 개조 전 선박인 페리 나미노무에호의 시운전 데이터와 비교·검증해 세월호의 운항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매일경제가 입수한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 논문에 따르면 연구팀은 검찰이 파악한 사건의 정황을 토대로 사고 경위를 초기 우현 선회 발생, 과도한 선회각 발생, 선속의 급격한 감소, 과도한 횡경사각 발생 등 4가지로 정리했다. 연구팀은 "화물의 과도한 적재 상황에서 출발부터 횡 경사 복원력이 심각하게 손실된 상태에서 (세월호가)운항됐으며, 20도 이상의 과도한 우현 조타(급격한 우회전)으로 인하여 회전 방향의 반대쪽으로 원심력에 의해 '외방경사'가 발생하면서 화물이동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애초 과적으로 복원성이 현저히 악화된 세월호가 급격한 선회 후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서 선체가 왼쪽으로 기울어져 화물들이 급하게 쏠렸고, 갑판침수를 일으킬 정도로 횡 경사각이 발생해 침몰에 이르게 됐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화물의 과적·고박이나 조타의 문제 중 어느 하나라도 발생하지 않았다면 침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침몰의 '결정적 방아쇠'가 된 과도한 우현 조타각은 사람 조작 실수이거나 기계가 오작동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김교수 팀의 이번 시뮬레이션에 의한 사고원인 결과는 지난 2014년 10월 검찰이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검찰도 선원들의 진술과, 침몰상황 증거분석 등을 근거로 무리한 선체개조와 과적, 조타수의 조타미숙 등이 직접적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최근까지도 잠수함충돌 등 숱한 음모론이 난무하고 정부 선체조사위원회가 여전히 사고원인을 조사중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과학적 실증에 의한 연구결과가 나온 것이어서, 원인규명에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검찰의 세월호 수사와 재판과정에도 원인조사 작업에 참여한 국내 조선해양공학 분야의 대표 석학으로 손꼽힌다. 영국 왕립조선학회 석학회원이며 세계적 선박 인증기관인 영국 로이드선급협회의 연구기금에서 2008년부터 약 45억원의 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편 이번 논문과 관련해 김창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장은 매일경제와 통화하면서 "워낙 제기된 이론이 다양해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여러 새로운 논문이나 보고서,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년 5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순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