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국가유공자 정부가 책임진댔는데…죽어도 묻힐 곳 없는 상의용사들
입력 2017-08-28 14:30  | 수정 2017-08-28 14:34

문재인 정부가 국가보훈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하고 국가유공자와 가족들에 대한 지원 정책을 늘리는 등 보훈정책 강화에 나섰으나 정작 국립묘지 안장 수용 능력은 3년 내 고갈될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충북 괴산과 제주특별자치도 등 신규 국립묘지·호국원 신설이 주민 반대 등으로 잇따라 진통을 겪고 전북 임실과 경기 이천 소재 호국원은 당장 올해 말이면 안장 공간이 동이 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다. 참전용사 등 국가유공자들 사이엔 "살아선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더라도 죽어선 국가가 책임져 줄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다"는 불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8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국가보훈처의 '국립묘지 안장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국내 국립묘지와 호국원 등의 안장 능력은 총 29만 9138기로 그 중 85.8%인 25만 6797기가 안장돼 있다. 잔여기수는 4만 2341기로 현재 안장 대상자가 46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국가유공자 '열 명 중 한 명'만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는 형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달초 발간한 '2017년 국정감사 정책 자료집을 통해 "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안장기수가 1만 6693기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오는 2020년에는 국가 지정 '묏자리'가 동이 날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매일경제 취재 결과, 강원권에는 국립묘지 조성계획이 전무해 2만1290명에 달하는 안장대상자들이 타지역 국립묘지나 개인 봉안 시설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베트남참전용사로 국가유공자에 등록된 김진승 강원도상이군경회 복지부장 (66)은 "국립묘지로 돌아가신 분을 모시려면 대전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참배를 위한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유족들이 선뜻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국가유공자를 개인봉안 시설로 모셔야 하는데 국가 지원이라고는 위로금 20만원과 태극기 한 장뿐이라는 게 이들 얘기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강원도의 안장 대상자는 제주도 안장대상자의 세배 규모에 이르고 있다. 당장 신규 국립묘지나 호국원 등 조성이 급박한 실정이지만 추진중인 신설계획은 예산문제로 지연되거나 주민들에게 '혐오시설' 취급당하며 건립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제주시 노형동 일대에 신설이 계획된 제주국립묘지는 지난 2012년부터 조성사업을 본격 추진해 왔지만 5년 넘게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업은 국비 363억이 투입돼 1만기를 안장할 수 있는 시설로 제주권역 내에서 사망한 국가유공자 안장에 숨통을 틔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신설 국립묘지 진입로 확장에 필요한 토지는 9000㎡이지만, 해당 토지주가 32만㎡에 달하는 부지 전체 매입을 주장하고 있어 건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제주도 보훈지청 관계자는 "14년 전 이미 도로가 난 것을 알면서도 토지를 샀고 그동안 이의를 제기하지 않다가 최근에 전체 토지를 매입해 달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며 "수용 등 절차를 밟고서라도 실시 설계와 공사 착공 등을 신속 추진해 2019년에는 제주국립묘지를 개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괴산 호국원은 지난 2012년 신설이 추진돼 왔지만 올해 겨우 착공에 들어갔다.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주민들이 현수막을 내거는 등 난항을 겪다 괴산군 예산으로 200억 규모의 주민 지원 방안을 내놓은 뒤에야 겨우 삽을 떴다. 앞서 충북 보은군 역시 호국원 유치를 희망했으나 일부 군민들이 호국원을 '공동묘지'로 취급하는 등 거센 반발에 부딪쳐 계획을 접어야 했다.
당장 2~3년 안에 국립묘지 수용능력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임시로 국립묘지 한켠에 '납골당' 등 봉안 시설마련이나 '시한부 안장제'라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 외교안보팀 관계자는 "새롭게 모시는 호국용사 등의 경우 가족의 동의하에 일정기간 지나면 이장하거나 봉안으로 전환하는 등 묘지를 재활용 할 수 있는 방법도 고려가 필요하다"며 또는 "서울현충원의 충혼당처럼 작은 공간에 유골을 봉안할 수 있는 봉안시설 설치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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