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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역사 뒤집는 ‘직지코드’, 진정한 화합의 시작
입력 2017-06-22 07:31  | 수정 2017-06-22 08:23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그 동안 몰랐던 숨겨진 역사를 추적한다. 고백컨대, 이 미스터리한 여정의 시작에는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하고픈 기대감과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대한 반항심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치열한 취재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급기야 애초에 품었던 본질적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넘어 더 큰 세계관과 깨달음과 마주하게 한다. 자긍심, 그 이상의 감동과 사명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난 21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직지(직지심체요절, 이하 ‘직지)와 동서양 문명사의 숨겨진 관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직지코드(정지영‧우광훈‧데이빗 레드먼 감독)가 뜨거운 관심 속에서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LIFE지 선정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1위로 꼽힌 구텐베르크의 서양 최초 금속활자 발명이 당시 동양 최고의 문명국 고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동서양 금속활자 문명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프랑스 파리부터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와 한국을 종횡무진하며 완성된 다이내믹한 대장정은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것.
실제로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논쟁의 중심에 오르기도 한 이 가설은 제작진의 탄탄한 취재력과 끈질긴 열정이 뒷받침됨에 따라 점차 신빙성을 더해간다.
물론 이 과정은 예상보다 더 험난했다. 현재 ‘직지의 원본을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은 연구 목적으로 사전 허가를 받은 일부 관람객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열람을 허락, 제작진의 취재 요청을 수차례 거부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는 제작진의 촬영분이 모조리 도난당하기도. 모든 촬영을 마친 이들이 힘든 여정의 마무리를 자축하며 축배를 드는 사이 그들의 버스는 알 수 없는 이들에 의해 모든 걸 도난당하게 되고, 현지 경찰관들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 없는 절망의 상황에서 결국 제작진은 한층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촬영에 돌입한다.
뭐 하나 쉽지 않은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제작진의 끈질긴 추적 과정은 ‘직지를 둘러싼 은밀한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극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과 희열을 선사한다. 여기에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생생한 에너지가 매력을 더한다.
결국 노력 끝에 제작진은 천주교의 새로운 역사이자 가설을 입증하는 데 큰 힘이 돼 줄 ‘편지를 찾아내고야 만다.

1333년 교황이 고려의 왕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한 것. 해당 편지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1455년 이전의 것으로 교항 요한 22세가 고려 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왕이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해줘서 기쁘다는 내용의 편지는, 한국에 온 최초의 유럽인을 1594년 세스페데스 신부로 기록돼 있는 천주교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발견이자 고려와 유럽 금속활자 역사 사이의 비밀을 풀어줄 연결고리인 셈이다.
게다가 결정적 단서를 찾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된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과연 존재할까. 결론은 ‘없다였다.
구덴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 성서 인쇄본에는 그가 활자를 찍었다는 내용, 즉 발행인에 대한 기록이나 표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실, 글자 모형, 인쇄기 또한 남아있지 않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독일 마인츠 박물관에 부재한 상황.
박물관 관계자가 제작진에게 제시한 증거는 그가 언급된 법정 공방 공증 문서 뿐이었는데, 문서에는 ‘구텐베르크는 책에 관한 일에 돈을 썼다고 말했다는 불분명한 표현만 있었을 뿐이다. 독일 마인츠에 세워진 구텐베르크의 동상 또한 독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며, 초상화조차 실제 인물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은 안기기도.
무엇보다 이 과정은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인 데이빗이 주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영화는 보다 개관적이다.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의 관점에서 한 참 떨어져 다양한 관점, 다양한 나라의 전문가들의 의견들을 폭넓게 담아낸다. 기존의 감성적인 추측이나 다른 자료에서 정리했던 내용을 답습하거나 재정리한 게 아닌 직접 ‘직지의 행방을 쫓아 입체적인 취재를 감행해 높은 신뢰도를 갖게 한다.
여기에 이 험난한 과정 속에서 밝혀내야할 팩트와는 별개로 ‘직지가 내포하고 있는 정신, 그 가치와 내용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리게 한다. 결국 이 다이내믹한 여정의 끝엔 확장된 세계관, 상식을 뛰어 넘는 도전 정신, 왜곡된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진정한 ‘화합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끔 만든다.
결국 ‘직지코드는 너와 나의 역사를 뒤엎는 혁명이 아닌, 우리의 바른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시작이다. 너를 뛰어넘는 나의 우월함이 아닌, 우리도 모르게 오랜 시간 함께 연결돼왔었다는 친밀함, 주류·비주류가 아닌 정확한 팩트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진짜 역사를 찾는 여정의 한 과정인 셈이다.
한편, 영화는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을 연출한 한국 영화계의 대표 지성 정지영 감독이 제작을 맡고, 캐나다인 데이빗 레드먼과 우광훈 감독이 현장 취재를 맡았다. 6월 28일 개봉.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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