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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증권社 기업대출…은행과 업권다툼 점입가경
입력 2017-06-08 17:43  | 수정 2017-06-09 08:00
은행과 증권사 간 먹거리를 놓고 하영구 은행연합회장과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 사이에서 벌어졌던 설전(舌戰)이 국회 입법전 양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숙원인 증권사의 기업 신용공여 한도를 늘리는 법 개정이 진행되는 데 맞서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아예 기존 증권사에 허용된 기업 신용공여 범위를 확 줄이는 새로운 개정법 발의를 위한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은행·금투업계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증권사가 할 수 있는 기업신용공여(대출) 대상을 신생·혁신 기업으로 한정하고, 용도는 투자은행(IB) 고유 기능에 맞는 인수·합병(M&A) 등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 건의안을 만들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현재 정무위 전체회의에 계류돼 있는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의 증권사 신용공여 규모 확대(자기자본의 200%까지 허용) 개정안을 폐기하고 현행 기준(자기자본 100%)을 유지하는 내용도 담겼다. 하 회장도 직접 일부 야당 의원과 만나 법 개정 필요성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연합회는 오는 3분기 중에 초대형 IB 지정이 이뤄질 예정인 만큼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기업신용공여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 지급보증, 어음·채권 매입, 시설 대여 등을 말한다. 원래는 은행 고유 업무였지만 금융당국의 초대형 IB 육성 전략에 따라 2013년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인 증권사를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해 기업신용공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풀어줬다. 지난해 11월에는 정 의원이 증권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신용공여 규모를 자기자본 100%로 묶어둔 것을 200%까지 확대하고 이 중 기업신용공여 한도는 자기자본 100%까지 허용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게다가 금융당국이 최근 증권사에 은행 예금과 유사한 수신 업무까지 허용하는 '초대형 IB 육성 방안'을 내놓자 은행업계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2분기에 IB 육성 방안 시행에 들어가면 자기자본이 4조원을 넘는 대형 증권사는 만기 1년 이하 어음 발행이 가능해지고 8조원을 초과한 증권사는 일반 고객에게 예금처럼 팔 수 있는 종합투자계좌(IMA)를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초대형 IB 육성 방안은 증권사에 은행 고유 업무인 일반 기업 대상 대출(여신업무)과 어음 발행, IMA 운용 등을 통한 수신 업무를 모두 허용하자는 것"이라며 "결국 은행법 규제를 받지 않는 '유사 은행'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는 만큼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은행이 전담하는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증권사에 허용해주는 이슈도 논란거리다. 기업의 제품 판매대금과 하도급 업체 자금 등의 지급결제 업무를 하기 위해 증권사들은 10년 전 지급결제망 사용료 명목으로 금융결제원에 3000억원이 넘는 돈까지 냈다. 하지만 관련 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과정에서 "증권사가 일부 대기업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법제화가 무산됐다. 이 때문에 금투협회가 법인 지급결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은행연합회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뿐더러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신탁업을 어디까지 허용하느냐를 놓고서도 은행과 증권업계를 대표하는 두 협회장이 '운동장론'을 내세우며 날선 공방을 벌였다.
정부가 추진하는 신탁업법 개정과 관련해 하 회장은 "금융 규제 패러다임을 과거 전업주의가 아닌 종합운동장을 만드는 겸업주의로 바꿔야 한다"며 "업역 확대 차원에서 과거 은행이 했던 불특정금전신탁을 다시 허용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황 회장은 "은행이 신탁업으로 증권사 고유 업무인 자산운용업에 진출하려고 한다"면서 "금융투자업계에 불합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황 회장이 "국내 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이 세계 최저"라며 "은행 업역 확대보다는 비용 효율화부터 하라"고 비판하자 하 회장이 "증권업계 효율성이 은행보다 더 떨어진다"며 반박하는 등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두 업계의 업권 영역 다툼 배경에는 장기화하고 있는 저성장과 저금리 상황에서 어떻게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고민이 숨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하던 사업으로는 수익을 거두기 힘드니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한편 원래 업무는 '고유 영역'이라며 고수하려다 보니 다툼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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