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외국인은 역시 빨랐다
입력 2017-06-08 17:38  | 수정 2017-06-08 19:42
◆ 한국형 스튜어드십코드 윤곽 ◆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참여 지침) 도입을 앞두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자사주 비중이 높거나 보유 현금성 자산에 비해 주주환원에 인색한 기업을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면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외국인들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은 지난해 말 19.0%에서 전날 종가 기준 25.0%로 급증했다. 지난 2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금호석유화학 보유 지분율이 처음으로 5%를 넘었다고 공시했다. 외국인은 올해 들어서만 이 회사 주식 1379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주가와 실적 전망만 놓고 보면 금호석유화학에 대한 외국인 매수세는 다소 의아하다. 대형주들의 상승세로 코스피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와중에도 금호석유화학 주가는 연초 이후 7.5% 하락했다. 지난 5년간 2014년을 제외하면 매년 실적이 감소했고 올해에도 합성고무 공급과잉이 지속되고 있어 전망이 밝지 않다.
박영훈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저유가 기조에도 다른 석유·화학업체와 달리 금호석유 실적은 부진하다"며 "금호석유의 주요 원재료인 부타디엔 등은 유가보다 수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공급과잉 상황 해소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주가치 제고 관점에서 보면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설명이다. 금호석유 자사주 비중(18.4%)이 높은 만큼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순이익(EPS)이 늘어나고 주당 배당금도 증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현금성 자산이 넉넉함에도 배당성향(순이익 중 주주에게 지급되는 배당 총액)이 상대적으로 낮은 삼성엔지니어링 대우건설 등에도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고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적자 여부에 관계없이 2013년부터 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대우건설도 2010년부터 배당성향이 0%다. 반면 시가총액 대비 현금성 자산 비율은 각각 28.5%와 44.0%로 높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외국인 지분율은 연초 7.6%에서 15.0%로, 대우건설은 같은 기간 6.7%에서 13.0%로 늘어나 주주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외국인들이 행동주의 콘셉트에 적합한 종목의 매수세를 강화하는 분위기"라며 "자사주 지분이 너무 높아 소각 요구 가능성이 있거나 현금성 자산 대비 배당성향 또는 자사주 비중이 낮은 기업들이 지난해 12월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이후 외국인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된 아이마켓코리아·LF·세아제강 등은 보유 현금성 자산이 많은 반면 자사주 비중이 너무 낮아 자사주 매입 요구 가능성이 높은 종목들이다. 특히 아이마켓코리아(자사주 3.3%)는 지난해 기준 배당성향이 60.5%에 달해 현재 배당만으로도 투자 매력이 높은 상황이다. 자사주 매입 역시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후 소각하면 배당 같은 주주 이익 환원 효과를 볼 수 있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주들의 의결권이 적극적으로 행사된다면 주요 대상은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친화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자율지침이다. 기업들의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자는 차원에서 영국이 2010년 가장 먼저 도입했다.
[이용건 기자 /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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