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단독] 0.3%만 반대…대기업 이사회 `거수기` 전락
입력 2017-05-17 17:51  | 수정 2017-05-17 23:33
상장사 165곳 이사회안건 분석
국내 대기업 계열사 이사회가 기업 최대주주를 견제할 수 있는 역할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거수기 수준에 머물러 유명무실한 존재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1~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 계열사가 이사회에 올린 안건 2만7575건 중 이사회가 영향력을 행사해 안건이 부결되거나 보류·조건부가결된 안건은 95건으로 전체의 0.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기간 공정위가 자산총액 기준에 따라 대기업 소속으로 분류한 239곳 계열사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안상희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전체 안건 수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지난해 165곳 기업을 대상으로 집계한 결과 이사회가 영향력을 미친 안건은 고작 4건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기업 최대주주나 경영진이 내놓는 안건이 아무런 견제 없이 '무사통과'되는 게 여전한 현실이라는 얘기다.
이는 기업 경영진에 건전한 조언을 하며 의사 결정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이사회 제도 본래 취지와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안 연구위원은 "국내 대기업 대다수가 이사회를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요식행위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라며 "기업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개별 안건을 전문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게 심사할 수 있는 이사회 내 전문위원회가 부재한 현실과 맞닿아 있다. 전문위원회가 없으면 모든 안건을 다루는 전체 이사회에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안건을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지배구조 우수기업은 전문위원회에서 안건별로 세부 심사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회책임위원회를 설치하고 관련 안건을 집중 심사하는 미국 GE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국도 포스코, SK이노베이션 등에서 전문위원회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가 작은 계열사로 내려가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상장기업에서 전문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은 것은 문제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국내 30대 그룹(2016년 자산총액 기준) 중 12곳 그룹의 30개 상장사가 전문위원회를 한 곳도 설치하지 않았다. 나머지 18곳 그룹 소속 계열사는 전문위원회를 1곳이라도 만들었거나 상장 계열사가 아예 없다는 뜻이다.
SK그룹은 상장사 16곳 중에 부산도시가스, SK머티리얼즈 등 4곳에 전문위원회가 없다. OCI는 상장사 5곳 중 4곳이 아예 전문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았다. 한진그룹도 상장사 4곳 중 3곳이, 효성그룹은 6곳 상장사 중 4곳이 이를 두지 않았다. 안 위원은 "전문위원회가 법이 정한 필수사항은 아니지만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금이라도 다양한 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수 대기업은 공정위가 정한 사익 편취 규제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고도 관련 위원회조차 설립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정위는 기업 최대주주가 불필요한 계열사를 설립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39곳 그룹 소속 185곳을 선정해 감시하고 있다. 최대주주 지분이 높은 계열사가 별 필요 없는 물류창고를 만들어 비싼 수수료를 받는 식의 사업 모델이 여기에 해당한다.
공정위 선정 185곳 중 내부거래위원회를 두고 있는 기업은 30곳에 불과했다. 30대 그룹에 속해 있는 규제 대상 기업으로 범위를 좁히면 전체 129곳 중 내부거래위원회를 설치한 계열사는 SK, 삼성물산, 롯데정보통신, 한화, 두산, 한국타이어 등 6곳에 그친다.
[홍장원 기자 / 김대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