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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병원비로 빚 내는 4050세대의 그늘
입력 2017-05-17 15:25 

'준비 안 된 노후' 탓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단지 노인들 뿐만이 아니다. 퇴직 후 줄어든 수입에도 병든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40·50대들은 비싼 병원비를 부담하는 한편 자신들의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17일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부모를 부양하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한 경험이 있는 전국 4050대 남·여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부모 의료비 부담에 관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모 부양에 부담을 느낀다'라고 답한 비중이 48.1%에 달했다. 가장 큰 부담으로 꼽은 것은 의료·간병비 부담(48.9%)이다. 생활비 부담이 47.6%로 뒤를 이었다. 응답자 부모의 75.6%는 질병으로 입원과 장기통원 치료를 한 경험이 있고 질병 원인은 암(34.5%)과 고·저혈압(27.6%), 뇌졸중 등 뇌혈관 질환(24.7%) 순이다. 최근 대선 레이스에서 모든 주요 후보들이 치료 지원 관련 공약을 내놓았던 치매를 꼽은 사람도 14%를 차지했다.
'부모는 내가 모셔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을 가진 중년층이 많다보니 부모 의료비도 자녀(자신)가 부담하는게 맞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절반을 넘는 57.8%였다. '향후 감당하기 어려운 부모 의료비가 발생할 경우 얼마까지 부담하겠냐'는 질문에는 '빚을 내서라도 전부 마련하겠다'는 대답이 32.8%로 '생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까지 내겠다'(34.5%)는 비율과 비슷했다. 이미 퇴직했거나 정년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부모 의료비를 온전히 대려면 단순히 여윳돈을 비워내는 것을 넘어 생활비까지 졸라매야 한다. 실제로 부모 의료비를 지원했거나 지금도 대고 있는 40·50중 48.2%가 부모 의료비로 1000만원 이상을 지출했고 이중 3000만원 이상 부담한 비중은 20.5%, 1억원 이상도 2.4%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녀가 노인 부모 의료비를 댈 수밖에 없는 이유로는 부족한 사회보험 시스템과 노인층의 부족한 노후대비가 꼽힌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보장률은 지난 2015년 기준 63.4%로 10년째 60%대 초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78%에도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공공보험의 빈 부분을 책임질 민간의료보험 활용도 역시 낮다. 위원회가 지난해 20대 이상 경제활동인구 15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노후 의료비 대비를 위한 민영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26%에 달했다. 보험에 들었다고 해도 의료비 보장 한도가 500만원 미만이라 막대한 치료비가 필요한 중증질환에 걸렸을때는 사실상 도움이 되지 않는 소액보험에 가입한 비중이 50.8%였다.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OECD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빠른 고령화 탓에 당장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는 건강보험 현황을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이처럼 노인 의료비가 가족 전체의 경제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을 막으려면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민영보험 활용도를 높이는 투트랙 전략으로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주문이다.최현자 서울대 교수는 "노년에는 질병으로 인한 의료비와 간병비 지출이 늘어날 수 밖에 없어 생활비 외에 노후의료비에 대한 별도 대책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원식 건국대 국제비즈니스대학 경제학과 교수는 "근로자 절반이 혜택을 못 받는 현행 민영보험 세액공제 혜택을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중 선택할 수 있도록 바꿔 가입률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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