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클래식계 살아있는 전설, 한국으로 몰려온다
입력 2017-05-09 16:03 

한 분야에서 독보적 경지에 다다른 이를 우리는 마에스트로라 부른다. 반짝이는 신예들의 총기도 이들의 카리스마를 당해낼 재간은 없다. 수십 년 세월의 관록이다. 이달부터 내달 말까지 클래식계의 진짜 마에스트로들이 연이어 한국을 찾는다. 고희를 넘어선 이 백발의 노신사들은 모두 각자의 분야서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예술가로 칭송 받는 존재들. 올 초여름은 그야말로 최고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여봐도 좋을 계절이다.
오는 31일 있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70)의 내한이 가장 눈에 띈다. 라트비아 출신인 크레머의 이름은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 자체로 전설이다. 지난해 안네 소피 무터, 이차크 펄만, 막심 벤게로프, 조슈아 벨 등 세계 최정상급 연주자 100여 명이 설문에서 꼽은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20'(영국 BBC 뮤직매거진) 중 현존 인물로는 가장 높은 순위인 6위에 오른 이가 바로 크레머다. 오이스트라흐, 하이페츠, 크라이슬러 등 요즘 세대는 이름만 들어본 지난 세기의 전설적 존재들의 계보를 잇는다.
젊은 시절 퀸 엘리자베스·파가니니·몬트리올·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최고 권위의 경연들을 석권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신묘한 테크닉과 번뜩이는 자신만의 해석으로 독보적 입지를 다져나간 인물. 이전까지 생소하던 현대 작곡가들(아스토르 피아졸라, 필립 글래스 등)의 음악을 날카롭케 발굴하고 세계적 무대에서 연주함으로써 현대음악 대중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도 크레머의 업적이다.
크레머가 일흔이 된 해이자 그가 발트 3국(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출신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한 악단 '크레메라타 발티카'가 창단 20년을 맞는 올해, 이를 기념한 월드 투어가 이뤄지고 있다. 내한 공연에서 크레머는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부터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글래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까지 시대를 초월한 다채로운 레파토리를 선보인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달 18일에는 현존하는 '가곡 반주의 왕' 헬무트 도이치(72)가 한국 관객을 만난다.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슈퍼 신인' 소프라노 황수미와 함께다. 요나스 카우프만, 이안 보스트리지, 디아나 담라우 등 이름만으로도 화려한 세계 최정상 성악가들과만 활동하던 그가 동양의 신예와 호흡을 맞추는 건 아주 이례적인 광경이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그가 황수미에게 먼저 함께 해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후문. 세계 무대서 가장 사랑 받는 테너 중 하나인 카우프만은 도이치와 함께일 땐 다른 어떤 피아니스트와 같이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스물넷 나이에 빈 국립음대 교수가 된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는 1980년대 독일의 스타 바리톤 헤르만 프라이의 반주자로 활약하며 세계적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성악 반주는 성악가와의 극히 섬세한 호흡 조율을 통해 작품의 뉘앙스를 최대한 아름답게 살려내는 일등공신이지만 솔리스트 성악가나 콘서트 피아니스트에 비해 대중의 관심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장르. 세계 클래식 팬들 사이서 현존 최고의 성악 반주자로 손꼽히는 도이치는 황수미와 함께하는 이번 공연에서 브람스, 브리튼, R슈트라우스, 리스트의 가곡을 선보인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고음악 분야의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벨기에 출신 지휘자 필립 헤레베헤(70)와 그가 이끄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은 내달 17일로 예정돼있다. 그는 유럽 현지에서 맹활약중인 고음악 전문 소프라노 임선혜의 인상적인 유럽 데뷔 무대를 지휘했던 인물로도 국내서 이름이 익다. 헤레베헤는 정신과 의사였다가 적잖은 나이에 음악가로 전향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논리적이고 응집력이 강하며, 마치 작품에 진단을 내리는 듯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는 뉴욕타임즈의 평은 이성적 아름다움이 충만한 헤레베헤의 음악세계를 대변한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와 각각 바흐와 모차르트 작품으로 두번 내한했던 그가 70세 기념 투어이기도 한 이번 공연에선 베토벤 서거 190주년을 맞아 대중에게도 친숙한 베토벤 교향곡 5번과 7번을 연주한다. 공연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신혜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