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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정의 직구리뷰]소녀들의 처절하고 찬란한 史, ‘눈길’
입력 2017-02-14 17:39  | 수정 2017-02-14 17:40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누구에나 따뜻하고 찬란해야 할 어린 시절, 그러나 그녀들에겐 결코 허락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니, 어떻게든 지워버리고 싶은 그 시절, 그 공간, 그리고 그 놈들. 1944년 일제강점기 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꽃다운 소녀들의 가슴엔 꿈과 사랑 대신 절대 사라지지 않을 사무치는 한만 깊이 새겨졌다.
앞서 드라마로 먼저 대중과 만난 ‘눈길이 지난 13일 영화로 다시금 베일을 벗었다. 영화는 안방극장을 통해 접했던 느낌 그대로 여전히 안타깝고 애통하며 화가 치밀어 오르고 사무치게 한스럽다. 소녀들을 지켜주지 못한, 여전히 지금까지도 그 아픔을 온전히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과, 제대로 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가슴이 저민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 서로 다른 운명으로 태어났지만 결국 같은 비극을 살아야 했던 두 소녀의 가슴 아픈, 여전히 고통 속에서 통한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과거이자 현재를 담은 작품이다.
가난하지만 씩씩하고 밝은 종분(김향기)과 부잣집 막내 딸에 공부까지 잘 하는 ‘영애(김새론)은 같은 마을에서 태어난 동갑내기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똑똑하고 예쁜 영애를 늘 동경하던 종분은 일본으로 유학길에 오른 영애를 부러워하지만 곧 들이닥친 현실은 끔찍했다. 느닷없이 일본군들의 손에 이끌려 낯선 열차에 몸을 싣게 된 종분은 두려움의 끝에서 상처투성이가 된 영애와 마주한다. 두 소녀는 이 지옥행 열차를 타고 비운의 운명을 함께 맞이하게 된다.
관객들은 그 어떤 영화적 장치나 부가 설명 없이도 그녀들이 어떤 아픔을 겪을지 알고 있다. 감독은 처절한 정서와 역사적 지식의 공유를 바탕으로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끔찍한 성폭력의 순간을 일절 담지 않는다. 소녀들을 연기하는 어린 배우들과 여전히 당시의 폭력으로 인해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감독은 보는 것만으로도 아프고 저미는 이 이야기를 담담하면서도 우직하게 또 아름답게 풀어 나간다. 비록 육체는 일본군들에 의해 상처 입었지만 결코 그들이 더럽히지 못한 소녀들의 순수성은 새하얀 ‘눈길과도 같고, 왜곡된 그리고 치욕적인 아픔의 역사 역시 차가운 ‘눈길이요, 그 극복 또한 오로지 우리의 따뜻한 ‘눈길에 달렸음을 말한다.
그리고 종분과 영애가 당시의 끔찍한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힘은, 늙은 종분이 한껏 비뚤어진 (현재 시점의)불량소녀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힘 역시 ‘따뜻한 관심과 공감, 마음이었음을 거듭 이야기 한다.
감독의 깊은 애정과 고민, 소녀들을 향한 위로는 김새론 김향기의 진정성 있는 연기와 늙은 종분을 연기한 배우 김영옥의 깊은 내공을 만나 비로써 찬란한 빛을 발휘한다. 모두가 알아야 할 이야기이자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만 하는 아픔, 다 함께 위로하고 이겨내야 하는 과제이자 더 이상 같은 맥락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져야 할 역사임을 깨닫게 한다.
가슴을 찌르는 아픈 소녀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아름답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대중들에게 한층 쉽게 스며들 만한 작품이다. 갇혀버린 소녀들의 삭막한 겨울 이야기지만 ‘나는 한 번도 혼자 인 적 없었다는 종분의 말처럼, 우리는 함께 연결돼 있는 따뜻한 연대임을 끊임 없이 말한다.
다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끝내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은 늘 가난하지만 꿋꿋한 ‘캔디형 캐릭터라는 설정과 과거와 현실의 연결고리를 위해 등장시킨 ‘불량소녀, 그리고 그녀의 치유와 소통의 과정 등은 다소 진부한 플롯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존의 위안부 소재 영화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확장된 세계관은 없다는 점에서도 영화적 아쉬움은 남는다.
오는 3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21분.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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