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부처별로 유사한 연구용역에 줄줄 새는 국민세금
입력 2017-02-13 17:25 

#인사혁신처는 2014~2016년 과장급 공무원의 역량개발과 관련해 '과장급 직무분석 및 교육프로그램 개발(2014년)', '과장급 모의과제 개발, 개선 및 직급별 역량진단 기법 개선(2015년)', '과장급 역량평가 실행과제 개발(2016년)등 3건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제목만 봐도 내용 중복이 불가피해 보이는 보고서 작성에 1억5600만원이 지출됐다. 2015년과 2016년 용역 보고서에는공통으로 '과장급 역량평가의 타당성 및 공정성 확보' 방안이 포함돼 있었다.

다른 기관까지 포함하면 용역 중복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농존진흥청이 이미 2010년에 한국인사행정학회에 맡긴 '과장 및 과장후보자 역량평가 기법 개발' 용역 보고서와 대전시가 2014년 경영컨설팅 기업인 디맨드에 맡긴 '과장급 공무원 직무가이드' 용역보고서 역시 인사혁신처가 발주한 보고서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인사혁신처의 2016년 보고서와 농진청의 보고서는 거의 유사한 역량평가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역량평가 대상자에게 모의 실행과제를 주고 이를 수행하는 과정을 관찰해야 한다는 식이다. 과장급 공무원의 역할과 필요 역량에 대한 내용도 여러 보고서에서 내용이 겹친다.
이처럼 정부가 정책기획과 집행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발주하는 정책 용역이 중복 발주되면서 예산이 줄줄 새고 있다.

심지어 보고서의 품질마저 '전문성 제고'라는 당초 취지와는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경영컨설팅 기업이 100일에 걸쳐 내놓은 용역보고서에는 '공무원은 공직자로서 자신 자신뿐 아니라 가족, 친척 등 주변관리까지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는 등 당연한 내용이 이어졌다. 구체적인 방안은 다른 저서의 내용을 그대로 참고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전문가들은 특히 행정학 등 학계와 정부의 공생관계를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립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대학 행정학과 교수들 중 상당수는 관급 용역 수행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꼬집었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에 끼워 맞춘 보고서를 받을 수 있고 학계에서는 정부로부터 나오는 안정적인 연구비를 획득할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가 성립한다는 말이다. 이어 사실 정책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는 공무원 그 자신”이라며 담당 실무자와 국·과장 몇 명이 모여 토론하면 최고의 정책이 나올 수 있는 사안도 수 천 만 원을 들여 외부에 용역을 주고 있는 게 우리 정부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와 같이 비효율적인 예산집행을 부르는 용역비가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현재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출하는 정책연구용역비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자치부는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수행하는 정책연구용역 보고서를 한 데 모아 관리하는 온라인 시스템으로 프리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각 기관이 용역수행 사실과 보고서를 시스템에 등록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관계자는 각 부처가 보고서를 올리지 않으면 행자부에서는 이를 파악할 수 없지만 기획재정부에서는 결산 기준이든 예산 기준이든 정책연구용역에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인지 뽑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획재정부는 연구용역 부분은 행자부가 관리하는 사항”이라며 책임을 돌렸다. 기재부 관계자는 정책연구용역이 개별 사업예산에 포함돼 있는 경우가 많은데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기재부가 관리하고 있지도 않다”면서 총괄적인 파악은 현재로선 기재부가 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정원이나 국방부 등 일부 예외가 있을 수 있어야겠지만, 세금으로 진행되는 연구용역의 결과물을 국민들이 보지도 못하거나 총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효용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지자체든 중앙정부든 공무원이 직접 수행하지 않고 외부에 연구용역을 주는 경우 이를 총괄적으로라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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