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구제역에 뚫린 충북 보은 가보니 "바람만 불어도 겁나"
입력 2017-02-13 16:36 

"백신도 뚫렸으니.…이젠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13일 오전 충북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지난 5일 국내 첫 구제역 확진 농가가 나온 이후 마을 분위기는 을씨년스러웠다. 인기척은 물론 차량 통행마저도 끊겼다. 마을 입구에 설치된 방역초소에서는 초소 관계자들이 외부인과 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했다. 초소 관계자는 "마을 주민과 방역 차량만 진입이 가능하다"면서 "구제역 확진 후 마을주민 조차 왕래가 뜸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16일 충북 음성에서 고병원성 조류독감(AI)이 발생했을 때도 'AI청정지역'을 지켜 왔던 자부심이 순식간에 무너진 것도 모자라 국내 첫 구제역 발생 지역이란 오명에 상처가 큰 듯 했다. 국내 첫 구제역 발생 농가 주인인 최모씨(65)는 전화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최씨는 "내가 기르던 소 100%(195마리)를 살처분 했는데 죄책감에 사흘 간격으로 방역을 하고 있다"면서 "소들이 축사를 왔다갔다 하는 꿈을 꾸고 있는데 이렇게 라도 해야 조금이나마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고통스러워했다.
이 곳에서 2.4km 떨어진 탄부면 상장리는 이날 구제역 확진판정이 내려지면서 반경 1km내 5~6개 축사 주인들은 초긴장 상태로 하루를 보냈다. 일부 농장주는 대형 포장 볏짚과 트럭을 진입로에 설치해 외부인과 차량통행을 자체적으로 금지시켰다.
특히 구제역 발생 주기가 '4일 →2일 →1일'로 좁혀지고, 항체형성률이 정부 제시 안전 기준치인 80%를 넘어선 농장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자 "최후의 보루로 믿었던 백신마저 효과가 없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날 보은에서 4번째 구제역 확진 판정을 받은 농가는 'O형' 항체 형성율이 87%, 'A형' 항체형성율이 83% 였다.

탄부면 성장리 한 축산농은 "지난 6일 백신을 접종해 항체가 형성됐을 기간인데 항체 안전 기준을 초과한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면 백신 접종도 소용없는 것 아니냐"면서 불안해했다. 마로면 소여리에서 한우 30마리를 키고 있는 김모씨(66)는 "우리 면에서 첫 구제역이 발생한 다음날(6일) 내가 스스로 백신접종을 했다"면서 "항체형성률이 높은 농장에서 구제역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이젠 바람만 불어도 겁이난다"고 말했다.
일부 주민은 항체조사가 정밀하지 못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한 농장주는 "일부만 샘플링해서 산출한 항체형성율은 불안감만 가중시킬 뿐"이라면서 "방역당국은 구제역 확진 소의 항체형성율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제역 발생 농가가 모두 최초 발생 농장 반경 3km내 위치한 것을 두고도 "검역당국의 초동 조치가 잘못됐기 때문"이란 비판이 거셌다. A씨는 "구제역이 터지면 방역 당국 관계자가 항체검사 등을 하러 농장을 다니느데 이렇게 되면 구제역을 옮기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서 "구제역이 터졌을 때 할게 아니라1년에 한번씩 주기적으로 미리 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는 전북 정읍과 경기 연천에서는 추가 의심신고가 이뤄지지 않고 충북 보은에서만 방역대인 발생농장 반경 3km내에 소 사육농가에서만 구제역 발생이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방역대를 벗어난 지역에서 발생한다면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더욱 확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보은군 마로·탄부면에서 불과 6㎞ 떨어진 경북 상주시의 경우 충북 보은 구제역 발생농장을 방문한 사료 차가 지난 8일 상주시 화남면 한 한우농장에 들렀던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다행히 해당농장의 소에서 별다른 이상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방역대를 벗어나 인접지역으로 확대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구제역 발생 농가 인근에서 추가 발생 가능성은 있으나 반경 3㎞ 이내에서만 발생하면 소강상태로 볼 수 있다"며 "만약 3㎞ 밖으로 퍼지면 전국적으로 확산할 우려가 크다"고 전망했다.
특히 인접지역이면서 50두 이상 소를 사육하는 농가는 앞으로 일주일이 고비로 보인다. 그동안 구제역이 발생한 여섯 농가는 구제역 발생이전에 농장주가 직접 백신을 접종한 곳이었다. 정부 지원으로 수의사가 직접 접종을 실시한 소 사육 농가에서는 아직까지 구제역이 발병되지 않았다.
정부가 이날까지 강원과 제주를 제외한 모든 사육농가의 소를 대상으로 일제접종을 마치긴 했지만 항체 형성까지는 일주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 안에 항체형성률이 낮았던 농가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날 농식품부는 지난 8일 연천에서 발생한 'A형' 구제역 바이러스가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백신으로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고가 부족하기 때문에 구제역이 돼지로 확산될 경우 '백신 공백' 상태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돼지에 A형 백신을 접종하지 않기로 결정한 상태다. A형 구제역이 '돼지로 번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는 없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에 썼던 '링백신' 방법으로 대비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링백신은 발생지역 인근 3㎞ 반경 주변의 모든 가축에 백신을 맞추고 그 안에서부터 살처분을 해나가는 형식이다. 이럴 경우 현재 보유한 백신물량으로도 해결이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현재 백신 재고량은 O+A형은 99만두분이다. 영국 메리얼사로부터 계약된 예정량인 O+A형은 2월 말~3월 초에 160만두를 들여오고 추가 물량 확보를 협의중이다.
이천일 농식품부 축산정책국장은 "연천 같은 경우에 돼지가 11만 마리 가량 정도이고, 최대 양돈단지인 홍성이 30만 마리 정도이기 때문에 수급이 가능하다"며 "99만두 재고 분량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별도로 확보해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충북 보은 = 지홍구 기자 / 세종 = 서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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