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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준의 스포츠탐색] 야구단장의 고민! ‘감독을 바꿔? 말아?’
입력 2017-02-13 09:40  | 수정 2017-02-13 11:03
프런트의 임무는 장기 플랜을 세워 안정적인 팀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때문에 단기 성적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 감독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진=MK스포츠 DB
프로야구는 포스트시즌이 마무리 되면 오프시즌(off season), 즉 휴면기에 들어간다. 그러나 이때의 휴면이라는 표현은 경기 위주로 설정한 용어일 뿐, 구단프런트의 전술전략이 맞부딪치는 또 다른 전쟁인 스토브리그(stove league)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시즌 동안 야구팬들이 난롯가에 둘러앉아서 트레이드, 자유계약 등 구단과 선수의 움직임을 주제로 담소하는 정경을 묘사해서 스토브리그라고 부르지만 현실은 그렇게 정감어린 상황이 아니다. 이 기간 중에 프런트는 구단의 미래를 좌우할 선수단 전력보강 작업을 비롯한 각종 현안업무 추진으로 시즌 중일 때보다 훨씬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프로야구단의 경영을 총괄하는 실무책임자는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으로 잘 무장된 전문경영자인 단장(團長 : general manager)이다. 현대의 프로야구는 과학적인 데이터분석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추세여서 야구단장은 점차 젊어지고 전문화되고 있다. 최고의 선진 프로스포츠리그인 미국의 메이저리그를 ‘단장의 야구라고 정의하는 이유는 구단의 가치제고에 단장의 영향력이 가장 큰 스포츠종목이 바로 프로야구이기 때문이다.
오늘 칼럼의 주제는 야구단장의 업무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감독 교체작업의 현장실무에 관한 것이다. 칼럼의 내용은 구단 프런트의 역할과 현장과의 조화문제 그리고 감독 교체작업의 실무절차 순서로 총 3부로 나누어서 정리하였다. 최근에 국내 모 프로야구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장과 감독간의 볼썽사나운 다툼을 보면서 우리 프로야구의 연륜과 품격에 걸맞지 않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이제 더 이상 비슷한 사태 재발하지 않기를 기대하며 이 칼럼을 올린다.
(참고사항 : 이 칼럼의 주인공인 단장은 메이저리그와 같이 구단운영의 전권을 행사하는 계약직 전문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사장과 단장의 역할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지만 편의상 의사결정권자를 단장으로 통칭했다. - 필자 주)

제1장 프로야구단 프런트의 역할과 현장과의 조화문제
- 음지에서 활약하는 언성히어로(unsung hero)와 선수단의 공생공존을 위한 경영실무
프로야구단의 조직은 선수단과 프런트로 구성된다. 감독, 코칭스탭, 선수를 ‘선수단(현장), 사장, 단장과 구단직원을 ‘프런트(front office의 약자)라고 부른다. 이 중에서 선수단의 역할은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에 프런트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미흡해서 구단경영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만큼 양측의 조화는 대단히 어려운 과제라는 증거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프런트와 현장은 운명적(?)으로 수시로 충돌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양자 사이에는 책임과 권한, 간섭과 조력의 모호한 경계선이 존재하며 중장기전략(프런트)과 단기전략(현장감독)이라는 태생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현실에서 종종 맞부딪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양자의 갈등현상이 드문 편이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가까이는 LA 에인절스의 제리 디포토(Jerry Dipoto) 단장과 마이크 소시아(Mike Scioscia) 감독이 여러 차례 충돌한 끝에 결국 2015년 7월에 단장이 물러났던 사례가 있다. 따라서 프런트와 현장은 서로의 가치와 역할을 최대한 존중하고, 운영의 묘를 적절하게 살려야 하는 공동운명체이다.
❍ 한국형 단장 체제의 시작 - LG트윈스의 도전과 성공
한국프로야구는 1982년이 원년이니까 올해가 36번째 시즌이 된다. 그동안 프로야구는 외형과 내실 모두 크게 성장해서 국내 최고의 인기스포츠로 자리매김하였다. 야구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팬들이 뜨겁게 화답한 결과이다. 물론 한국야구는 현재 아마와 프로 공히 많은 문제점도 내재하고 있지만 야구기술, 야구행정, 인프라, 관전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크게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인 구단행정력의 향상이 가장 돋보인다.
이 칼럼의 주제는 프로야구단의 단장과 감독의 역할과 운영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 프로야구에서 단장 중심의 야구단 운영방식이 본격적으로 적용된 것은 1990년 LG트윈스의 창단 이후에 시작되었다. LG는 창단 첫해에 통합우승의 기적을 일구었지만 백인천 감독이 이듬해 자진사퇴함에 따라 구단의 운영체제를 전면적으로 혁신해서 메이저리그 시스템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변화에 걸맞게 선진야구시스템에 밝은 이광환 감독을 영입해서 1990년대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 당시 LG가 메이저리그 시스템을 추진했던 배경에는 1990년 창단 첫해 5월에 당시 LG스포츠의 김종정 사장과 필자가 미국과 일본의 10여개 명문프로야구단을 직접 방문해서 운영실태를 세밀하게 점검한 이후에 내린 결론이 뒷받침되었다. 프로야구는 1군의 경기력 이외에도 육성부문, 의료시스템, 스카우트, 마케팅 등의 모든 분야가 상호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성공적인 구단운영을 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이러한 정책변화를 그룹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단장을 중심으로 조직기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메이저리그식 운영방식의 요체는 구단의 각종 운영제도를 선진화하고 인프라를 잘 구축해서 감독에게 양질의 원재료(선수와 운영체계)를 적기에 공급해서 최고의 결과(성적)를 도출하는 것이다. 또한 구단의 경영목표는 각종 운영제도의 기본골격을 튼실하게 잘 갖추어서 연고지역과 팬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생명력이 긴 프로야구단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LG는 최신시설 건설과 운영체계의 정비 그리고 양질의 팀케미스트리를 갖춘 최고의 인기구단을 만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홈구장인 잠실야구장의 라커룸과 체력단련실을 최신식으로 개조했으며 구리시에 전용숙소와 야구장 그리고 동계훈련용으로 경남 진주의 연암공대에 전용야구장을 건설했다. 또한 야구단의 성패는 스카우트와 재활시스템에 달려 있다는 믿음으로 이 분야에 대대적으로 투자했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LG는 대부분의 신인선수가 가장 입단을 희망하는 전국적인 인기 프로야구단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진야구와 지속적으로 호흡을 같이하면서 기술전수를 받기 위해서 미국(블루제이스, 다저스)과 일본(주니치)구단과의 다양한 상호교류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또한 단단한 팀케미스트리의 구축을 위한 조치로 그 당시 대단한 난제의 연례행사였던 선수단의 연봉협상을 연말 이내에 대부분 마무리해서 스프링캠프에 누수인원이 발생해서 팀의 전력과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등 다방면에 걸친 노력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반면에 LG구단의 정책변화에 대해서 초기에는 여론(특히 언론)이 강하게 저항했다. 그 당시 여론을 주도했던 스포츠전문지는 ‘프런트야구라는 모호한 용어를 동원해서 LG구단을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우선 그 이전까지 감독에게 집중되었던 정보채널이 프런트(단장)로 확장된 현실과 감독의 힘(?)을 빼는 구단의 처사가 못마땅했던 것이다. LG는 프런트가 너무 힘이 세다”는 주제를 필두로 많은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면서 구단을 압박했다. 그렇지만 구단운영체제의 전환 이후 LG구단의 성적과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했고, 다른 구단들이 LG의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기 시작하면서 언론도 점차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필자는 LG상사의 기획실과 뉴욕지사 주재원 출신인 상사맨이었지만 LG상사 직장야구단의 선수와 감독으로 활동했던 경력과 6년여의 미국 주재원 생활로 선진야구를 잘 이해한다는 그룹의 판단에 따라 자매회사로 이동(LG상사 → LG스포츠)해서 야구단의 경영체제 확립을 주도했다. 언제나 개혁 작업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어서 초기에는 구단 내외부적으로 많은 난관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야구행정의 수준향상과 함께 LG트윈스가 최고 인기의 명문구단 반열에 오를 수 있었기에 지금도 크게 자긍심을 느낀다. 그 이후 LG가 시도했던 전문단장체제가 성공적으로 정착하자 다른 구단에서도 야구단장을 그룹의 퇴임을 앞둔 임원들이 거쳐 가는(?) 자리로 활용했던 구태를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따져 보면 지금도 일각에서는 스포츠경영의 전문성을 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
다음으로 야구단장의 자질문제를 살펴보면, 프로야구 감독은 야구선수 출신이어야 하지만 단장은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야구단장은 야구단을 경영하는 행정가이지 야구기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단장에게는 야구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고도화된 선진정보기술을 활용하는 능력과 함께 국제화 시대에 걸맞게 외국어를 포함한 다양한 경영자의 자질이 요구된다. 최근에는 행정력을 겸비한 선수 출신 야구단장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 현상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다룰 예정이다.
❍ 단장과 감독, 누구의 목이 더 질길까?
프로야구는 프런트의 경영능력과 팀 성적이 정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팀 성적이 부진할 경우, 그 원인을 전적인 현장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프런트는 본질적으로 현장을 분석, 비평(second guessing)하는 고유기능과 함께 결정적인 순간에는 속물적인 자기보호 본능도 발휘하는 법이어서 궁극적으로는 현장에 대한 비판이 정책적인 결단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절차적인 프런트의 대응방식을 보면 일차로 코치의 보직을 바꾸어서 분위기 쇄신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감독에 대한 경고조치와 같다. 만일 그래도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결국은 감독을 교체하는 극약처방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단장은 책임을 지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단장 역시 궁극적인 책임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어서 대체적으로 감독 다음의 2차적인 인사조치 대상이 되는 것이 프로스포츠의 경영원리이다. (물론 단장이 1차로 인사조치 되는 경우도 있다.)
참고자료를 보자. 느낌상으로는 감독이 단장보다 훨씬 더 자주 교체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거의 비슷하다. 필자가 단장을 역임했던 LG트윈스의 경우, LG가 근년에 오랫동안 암흑기를 거치면서 감독 교체가 잦은 편이었지만 1990년 창단 당시의 단장(고 조광식)과 감독(백인천) 체제부터 현재의 단장(송구홍)과 감독(양상문) 체제에 이르기까지 단장 총 9명, 감독 총 10명(연인원이며 필자와 이광환 감독은 2회)이 역임한 바 있다.
❍ 단장과 감독의 갈등과 해결방안
일반회사와 프로야구단의 조직 운영체계는 상당히 다르다. 야구단장은 감독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는 최고위급 경영자이지만 감독이 전권을 행사하는 선수단의 지휘문제는 단장의 간접적인 경영영역에 속한다. 일종의 제한적인 분권체제인 셈이다. 따라서 양측은 수시로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때로는 심각한 갈등상황으로 번지게 된다. 그 사례와 해결방안을 상황별로 구분해서 살펴보자.
첫째, 코칭스탭 구성과 보직이동 문제
새 감독의 영입이 결정되면 단장은 즉시 감독을 보좌할 코칭스탭의 인선에 착수한다. 인선방식은 전임 감독이 해임된 이후 공백이 발생한 빈자리를 단장이 신임 감독과 협의해서 영입(또는 내부 승격)하게 된다. 예전에는 감독과 함께 코치들이 같이 몰려다니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와 같은 경우가 극히 드물다. 이때 영입하는 코치의 인선은 최대한 감독의 의견을 존중할 필요가 있지만 최종적인 인사권은 단장에게 있다. 그리고 성적부진에 따른 분위기쇄신 차원에서 코치의 보직을 이동시킬 때 역시 단장이 감독과 사전협의해야 한다. 어차피 감독을 해임하지 않는다면 감독과 같이 호흡하는 코치의 보직이동은 반드시 감독의 의사가 존중되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위에서 설명한 인사절차를 진행할 때 감독의 의견이 무시되어서 발생할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장의 현명한 판단과 배려 그리고 세밀한 절차진행이 필요하다.
둘째, 선수의 이동
신인선수나 외국인선수 영입은 철저하게 구단(단장) 주도로 이루어지는데 이때에도 필요한 포지션이나 복수 이상 대상자에 대한 선택은 단장이 감독과 협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은 선수를 트레이드할 경우인데, 이 역시 최종결정은 단장의 몫이지만 최대한 감독의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 프런트의 애환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은 프로스포츠의 영원(?)한 숙명이다. 화려한 무대의 뒤편 음지에서 애를 쓰는 프런트는 공은 현장 몫이고 과는 프런트에게…”라는 현실인식에 피해의식이 커지고, 현장은 나름대로 프런트의 미약한 지원과 과다한 간섭에 불만을 가지기 마련이다. 서로 신뢰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야 하는 사이지만 때로는 권한과 책임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단장의 경영능력이 이럴 때 빛을 발휘해야 한다.
프런트의 애환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하면, 필자가 LG트윈스 단장 시절 취재기자들과의 저녁모임 중에 프런트의 애환을 다음과 같이 비유했던 적이 있는데 한동안 야구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다. 야구단의 프런트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는 직함이 그대로 증명한다. 과장課長은 과장過腸이니 신경을 많이 써서 항상 과민성장염過敏性腸炎에 시달리고, 부장部長은 부장腐腸 상태이니 내장이 다 썩을 지경이다. 단장團長은 단장斷腸, 즉 내장이 이미 끊어졌고, 사장社長은 결국 사장死腸이 되었으니….”
프로야구단의 프런트! 그들은 비록 화려한 무대 뒤에서 궂은일을 마다 않고 활동하는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이지만 항상 맡은바 직무에 최선을 다하는 영웅들이다. <1부 끝 2017. 2. 13 / 2부에 계속>
글 : 최종준 MK스포츠 전문위원 (前 프로야구 LG/SK 단장 / 前 프로축구 대구FC 사장 / 前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 前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 現 대한바둑협회 상임부회장)[ⓒ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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