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에…학자들 '직접 민주주의' 실현 뒷말 무성
입력 2016-12-06 13:37 
국민투표 부결에 / 사진=연합뉴스
이탈리아 국민투표 부결에…학자들 '직접 민주주의' 실현 뒷말 무성


이탈리아 총리 사퇴를 계기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대표적 제도인 국민투표를 두고 또 학자들의 뒷말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콜롬비아의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 태국과 이탈리아의 개헌, 헝가리의 난민정책 등이 국민투표를 거쳤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고 독재가 강화되거나 사회 분열이 가중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논쟁이 가열됐습니다.

민주 국가에서 중요한 국가적 문제를 결정할 때 국민 찬반, 다수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국민투표가 가장 민주적이 제도일까요.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국민투표에 대한 전 세계 정치학자들의 견해를 6일 두루 소개했습니다.

대다수 학자는 국민투표가 국민이 아닌 정치 엘리트에 의해 좌우되는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했습니다.

더블린 트리니티대의 정치학자인 마이클 마시는 국민투표가 좋은 대안이냐는 질문에 "거의 그런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아일랜드에서도 여러 차례 국민투표가 있었지만 무의미한 것부터 위험한 것까지 있었을 뿐 좋은 것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국민투표를 가장 인기 있고 단순한 통치방식으로 규정하며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기보다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유권자가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정치적 메시지에 의존해 결정을 내리는 까닭에 결과적으로 정치 엘리트에게 권력을 주는 효과만 낸다는 것입니다.

런던정경대의 알렉산드라 시로나 연구원은 "국민투표가 위험한 도구지만 정치인은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이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계산과 달리, 결론적으로 국민투표를 시도한 정치인들은 자주 패배하며 국민투표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새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왜 많은 전문가는 국민투표에 회의적일까요.

어떤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때는 전문가가 결과를 예상하는 데도 몇 년씩 걸릴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을 찬성과 반대라는 단순한 대답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이 지름길에서 필연적으로 문제가 불거진다고 봅니다.

토론토대 명예교수인 로런스 리덕은 유권자들이 국민투표를 제안한 지도자를 좋아하면 찬성표, 싫어하면 반대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덕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서 "중요한 공공 의제에 대한 국민투표가 결국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인기투표가 되어 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지난 10월 치러진 콜롬비아의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국민투표 결과도 대선 당시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을 향한 지지 여부와 고스란히 일치했습니다.

유권자들은 복잡한 사안을 기존의 이념적 믿음에 맞춰 생각하기도 한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이런 현상은 사실상 거의 모든 국민투표에서, 특히 중대한 이해관계가 걸렸을 때 발생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지난 6월 치러진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찬반 진영 어디에서도 EU 회원국으로서 영국이 누리는 지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회원국 지위를 두고 잔류 진영은 '경제적 안정', 탈퇴 진영은 '이민자 유입'을 강조했고 결국 후자가 전자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습니다.

국민투표는 권력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정치 엘리트가 이미 결정한 사안에 합법성을 부여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게 현실입니다.

런던정경대의 시로나 연구원은 "국민투표가 현실에서는 어떤 문제를 국민이 결정해야만 한다는 것과는 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정치인이 국민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득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했다가 나중에 반대진영으로 돌아선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가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힙니다.

태국 역시 군부의 정치 참여를 공고히 하는 개헌을 위해 국민투표를 시행하면서 개헌안에 대한 보도를 제한했습니다.

NYT는 당시 개헌안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반대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EU의 난민할당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이용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평화협정처럼 정치 혼란이나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국가적 논쟁을 해결할 때 국민투표가 좋은 수단이 된 역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역시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투표율이 높고 한쪽이 압도적 지지를 받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만 국민투표의 제대로 된 효력이 발휘된다는 것입니다.

콜롬비아 평화협정 국민투표는 낮은 투표율에 결과 역시 찬반이 거의 반반으로 갈렸습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 역시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고, 이런 결과들은 또 다른 정치적 논쟁으로 이어졌습니다.

전문가들은 여론조사, 언론보도 행태, 정당의 지지율 등락이나 내부 갈등, 날씨 등도 일국의 거사를 결정하는 데 불순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부정적 효과를 지목하며 "민주주의가 아니라 공화국들이 자행하는 러시안룰렛"이라고 주장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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