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낙태금지법안 놓고 두쪽 난 폴란드
입력 2016-09-23 15:04 

여성을 구하자. 아니다 생명이 우선이다.”
지난 22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 위치한 국회의사당 앞은 상반된 구호를 외치는 두 무리의 시위대들로 뒤덮였다. 이날 폴란드 의회가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불법화하는 낙태 전면 불허 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자 낙태 찬반 진영의 행동가들이 일제히 국회 앞으로 쏟아져 나온 것. 좌파 정당과 여성단체를 주축으로 한 낙태 찬성론자들이 검은 옷을 입은 채 여성의 몸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 본인에게 있다”며 항의하자 십자가가 새겨진 옷을 입은 낙태 반대론자들은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올리며 낙태는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현 집권 여당인 우파 성향의 ‘법과 정의당(PiS)은 가톨릭 교리에 따르겠다며 전면적인 낙태 금지법안을 마련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현재 폴란드에서는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임신부 생명이 위태로운 경우, 그리고 태아가 불치병을 갖고 태어날 수 있다는 의사의 진단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 아주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되고 있다. 하지만 새 법안은 생명의 위협에 처한 임신부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태아가 사망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경우에도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기고 낙태를 하면 해당 여성 본인은 물론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5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할 만큼 강력한 낙태금지 법안이다. 새 법안은 또 시험관 인공수정에 대한 정부 지원을 중단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성관계 후 복용하는 사후피임약 역시 카톨릭에서 죄악시된다는 이유로 금지될 전망이다. 앞서 폴란드 가톨릭 주교들은 공개서한을 통해 임신 때부터 자연적으로 사망할 때까지 모든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며 의원들에게 새 입법안을 시행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폴란드 정부와 집권 여당이 강력한 낙태 금지 법안을 마련한 배경에는 가톨릭계 입장을 반영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폴란드는 유럽에서 가톨릭 영향력이 가장 강한 나라다. 국민 90%가 가톨릭 신자이고,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 비율도 40%에 달해 유럽에서 가장 높다. 여기에 법과 정의당은 지난해 10월 열린 총선에서 교회 지지를 등에 업은 덕에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다. 때문에 집권당 대표조차도 교회의 눈치를 보고 있다. 당초 낙태 금지에 반대해 왔던 야로슬라프 카친스키 법과 정의당 당수가 최근 입장을 바꾼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지난 4월 의회에 출석해 가톨릭 신자로서 주교 가르침을 따를 수 밖에 없다”며 낙태 반대 법안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처람 막강한 가톨릭 영향력은 종교의 현실 정치 참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종교 영향력 확대가 이슬람권의 일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AP통신은 집권당이 가톨릭 교회 지지를 받아 정권 교체에 성공했기 때문에 정부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굴복할 수 밖에 없다”고 폴란드의 현 상황을 진단했다.
[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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