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이 발생했을 때 행동요령에 대한 매뉴얼은 사실 한국이나 미국, 일본이 큰 차이가 없다. 대부분 국제연합(UN)의 재난관리 매뉴얼을 활용해서 국가에 맞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 매뉴얼에 따르면 지진이 발생하면 우선 탁자 등 밑으로 피하면서 문을 열어 출구를 확보하고 전기·가스 등을 차단해야 한다. 가구 등이 넘어지거나 떨어져 상처를 입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불이 났다면 빠르게 불을 꺼야 한다.
집 밖에 있을 때는 블록담이나 대문 기둥 등에 가까이 가서는 안 된고 번화가나 빌딩가에서는 유리창 또는 간판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
백화점이나 영화관 등 다중이 이용하는 시설에서는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종업원이나 경비원 등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전철 안에서는 손잡이 등을 꽉 잡아서 넘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의 지진 대비 매뉴얼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하지만 메시지 전달 방식에서는 차이가 난다. 한국의 국민안전처 홈페이지와 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지진 관련 홈페이지, 일본의 도쿄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모두 지진에 대한 안내 매뉴얼이 나온다. 국민안전처의 지진 매뉴얼은 대체로 공급자 중심이고 불친절한 느낌을 주는 반면, 일본과 미국의 매뉴얼은 수요자 중심이고 단계별로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있다.
미국 연방지질연구소(USGS)가 작성한 지진 대처요령 매뉴얼은 7단계로 이뤄져 있는데 내용이 매우 쉽고 구체적인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2단계(대피계획)는 가족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만날 장소를 동네 가까운 곳과 동네 밖 먼 곳으로 두 군데를 정해 미리 약속하라고 권유한다. 3단계(필요물품)의 경우, 3일치의 식량과 음료수 손전등 등 필요한 물품을 빼곡히 기록해 두었는데, 아이들이 대피기간 동안 지루해 하지 않도록 간단한 게임기나 색연필을 준비하라는 내용까지 적시했다. 5단계(행동요령)에는 산책하던 경우, 요리하던 경우, 목욕하던 경우, 수면 중이던 경우 등 상정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서 지진 대처방법을 기록했다.
지진 등 재난이 일상화된 일본에서는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 뿐 아니라 지진 후 복구를 위한 행동 요령까지 매뉴얼에서 안내한다. 일본 도쿄도의 지진 매뉴얼에 따르면 지진 발생 3일 이후 복구 활동을 권유하며 지역의 모두가 자원봉사자, 정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서 모두가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생활재건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이 매뉴얼을 훈련을 통해 몸에 익히느냐 아니냐에 있다.
‘엎드려(Drop), 가려(Cover), 붙잡아(Hold on). 미국 서부지역 초등학교에서 매 학기 초마다 진행되는 지진 대처 훈련이다. 어린이들은 교사의 지도에 따라 단순화된 세 마디를 외치며 책상 아래로 엎드려 몸을 가리고 책상 다리를 붙잡는다. 백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이 한번 실제로 훈련하는 것만 못하다는 지침에 따라 캘리포니아의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지진 대처 훈련을 받고 요령을 체득한다.
미국 초등학교에서는 주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화재·테러·지진을 3대 재난으로 규정하고 실제와 같은 대처 훈련을 1년에 2~3차례 실시하고 있다.
이같은 안전 훈련은 초등학교 뿐만 아니라 3~5세 아동이 다니는 프리스쿨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또 교육청과 시청에서는 이같은 안전 훈련을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병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필요시 학부모들과 집에서 훈련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하기도 한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도 반복 훈련을 통해 매뉴얼을 몸에 익힌다. 특히 지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한신대지진(1995년 1월 17일)이나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 11일) 등의 지진 발생일에는 당시의 교훈을 되돌아보는 방송과 함께 대피 훈련 등이 진행된다.
학교에서는 반복 훈련으로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학생들이 매뉴얼에 따라 우선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고, 흔들림이 멈추면 질서정연하고 빠르게 대피하는 방법을 몸에 익힌다. 일본에 처음 온 외국인 주재원들은 지진이 발생하면 정작 자신은 놀라서 멍하니 있는 동안 아이들은 바로 책상 밑으로 몸을 숨기고, 흔들림이 멈추면 현관문을 열어 출구를 확보하는 모습을 보고 ‘역시 훈련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지자체와 소방청은 가정마다 지진 발생시 필요한 긴급 물품을 한꺼번에 담아놓은 비상물품가방을 구비해놓도록 하고 있다. 강진 초기 최소 3일 동안 정부가 개개인의 식량이나 물 등을 챙겨줄 수 없으니, 스스로 구비하고 알아서 지키라는 얘기다. 지진이 발생한 후 비상물품을 챙기려고 하면 당황해서 빠질 수 있으니, 아예 긴급물품을 담은 가방을 하나 마련해 놓고 긴급상황 발생시 그 가방만 들고 바로 탈출하도록 한 것이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경보시스템에서도 국가간 차이가 크다.
한국의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 발송 서비스(CBS)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현재의 재난문자 발송시스템은 지진을 관측하는 기상청의 상황전파가 즉시 국민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국민안전처의 상황판단을 거쳐 발송되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지체될 수밖에 없다. 이번 경주지진의 경우 1차가 12일 19시 44분 32초에 발생했고 2차는 20시 32분 54초에 5.8규모로 발생했다. 그러나 안전처는 19시 47분에 먼저 총리실 등에 상황전파를 했고, 재난방송 및 재난문자 1차 발송이 이루어진 시점은 19시 52분이었다. 국민들은 지진발생 이후 9분 뒤에야 재난문자를 받은 것이다.
반면, 일본은 지진이 발생하면 즉각 휴대폰은 물론 집안의 가스경보기 등을 통해 지진경보가 울린다. 문자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가스경보기에서 ‘지신데스(지진입니다). 지신데스라는 음성 경보가 나온다.
지진 경보는 흔들림과 거의 동시에 나오거나, 때로는 흔들림보다 빨리 나온다. 지진이 터지면 시속 7km P파(수평파장)와 시속 4km의 S파(수직파장)가 나온다. 실제 흔들림은 S파가 일으킨다. 일본 기상청은 P파를 감지하자마자 지진경보를 보낸다. 흔들림보다 빨리 경보가 나오는 이유다. 지진경보가 나오면 지하철 등은 즉각 속도를 줄인다. 이 짧은 시간에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시스템을 정비해놓은 것이다.
지진과 거의 동시에 NHK 등 방송에서는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지진소식을 알려준다. 진앙지 진도는 물론 지진 파장이 미치는 지역 전체에 걸쳐 어느 정도의 흔들림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방송을 보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흔들림 정도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방송국은 정규방송을 재개하면서도 화면의 3분의 1 정도를 할애해 지진 속보를 문자로 계속 보여준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그동안 ‘지진 안전지대라는 인식 탓에 교육·훈련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다”며지진조기경보 등을 통해 골든타임 확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 김기철 기자 / 최희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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