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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김준수 대폭발 ‘도리안 그레이’, 창작 뮤지컬 한계마저 넘어설까
입력 2016-09-07 11:05  | 수정 2016-09-07 11:44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단언컨대 김준수의, 김준수를 위한, 김준수에 의한 뮤지컬이다. 그 이상의 설명은 어렵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 초상화에 영혼을 팔아버린 타락한 청년 ‘도리안 그레이. 김준수는 분명 인생 캐릭터를 만났고, 인생작을 만났고, 인생 연기를 펼쳤다. 다만,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김준수 없이도 자생력을 갖춘 창작 뮤지컬로 살아남느냐는 미지수다.
도리안 니가 나라면, 도리안 내가 너라면, 너의 시간을 내게 줘. 나의 심장을 너에게 줄게, 너의 젊음을 내게 줘 내 영혼 너에게 줄게 -아름답게 멈춰버린 나 中 ”
뮤지컬 스타 김준수 신작으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던 창작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3일 기대 속에 베일을 벗었다.
타이틀롤을 맡은 김준수는 아이돌 출신의 역량을 최대치로 발현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했다. 현대무용을 비롯한 고난도의 군무, 매혹적인 고음과 신비한 비주얼까지. 상상했던 ‘도리안 그레이의 모습 그대로 등장해 막이 내리는 순간까지 무대를 장악한다.
여기에 체코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실사 영상은 현대적인 감각미로 고전적 스토리와 맞물려 신선한 느낌을 안긴다. 고차원적인 시각효과에 기승전결이 확실한 중독성 강한 넘버들,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을 위한 압축된 스토리텔링 등 곳곳에서 다채로운 시도가 엿보인다.
타락한 순결한 이 알 수 없는 삶이여, 미천한 고귀한 숙명 모순의 삶이여. 기이한 황홀한 고통 인간의 헛된 삶이여, 고결한 비천한 오직 단 한번인 삶이여. 후회 없으라 찬란한 아름다움 -찬란한 아름다움 中”
작품은 19세기 유미주의를 대표하는 아일랜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재해석해 무대 위로 올렸다.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 속 인물인 배질 홀워드는 자신이 생각하는 나이고, 헨리 워튼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이, 도리안 그레이는 자신이 되고픈 나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의 자상적인 분신을 소설 속에 분리해 등장시켜 이중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한 것.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 역시 원작의 이같은 사상을 그대로 가져온다. 표면적으로 보면, 배질은 도리안의 순수성을 지켜주려는 인물이고 헨리는 반대로 도리안을 쾌락주의로 이끄는 인물이다.
도리안은 두 사람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알고 보면 이는 비단 한 개인의 심리적 갈등에 불과한 게 아니다. 사실 이 개인사의 바탕에는 당시 유럽 사회에서 벌어진 사회적 갈등이 깔려있다. 배질은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한 빅토리아 왕조의 도덕적 보수주의를 대변하고, 헨리는 이 빅토리아 도덕의 가식과 위선을 쾌락주의와 유미주의로 맞선다.
헨리는 쾌락주의를 외치지만 말만 극단적일 뿐 사실 철저히 사회적 규범 안에서 행동한다. 쾌락원리에 따라 규범을 파괴하는 건 결국 그의 꼬임에 넘어간 도리안이다. 헨리는 자신을 대신해 도리안을 위험에 몰아놓고 그를 통해 금지된 욕망을 대치 충족할 뿐이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점차 늙고, 혐오스럽고, 추악해질 것이다. 하지만 저 초상화는 영원히 젊은 채로 남아있겠지. -도리안 그레이 대사 中”
김준수는 이같은 도리안의 극적인 변화를 섬세하면서도 처절하게 표현해낸다. 순수한 청년에서 첫사랑 시빌을 잃고 점차 타락해가는, 영혼의 파괴과정을 긴장감 있게 이끌어 간다. 대사에서 느껴지는 미흡함마저도 변화무쌍한 노래와 강력한 퍼포먼스를 통해 완벽하게 커버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형언할 수 없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은 김준수의 몸짓과 노래 속에서 분명하게 형상화된다.
하지만 도리안의 타락을 그려내기까지, 각각의 장면 전환은 다소 급박하다. 웅장한 넘버들의 이음새 역시 마찬가지다. 한 넘버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넘버가 울려퍼진다. 전반적으로 급진적 전환이 반복돼 자연스러운 감정 몰입이 방해되는 아쉬움도 든다.
도리안의 변화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시빌과의 이별, 죽음을 담은 장면은 비극적이라기 보단 개연성이 떨어진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장면이다.
어둠으로 가거라, 늙어가는 얼굴 변해버린 내 육신. 넌 더 이상 나 아닌 허상일 뿐, 난 다시 찾으리라 지나버린 그 순간. 라일락 향기 가득했던 내 아름다운 젊음 그 순간 -넌 누구 中”
헨리의 바람대로 순수함을 잃고 변해버린 도리안. 그의 타락의 끝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피상적으로 보면 작품의 결말은 권선징악의 교훈을 던지는 듯하다. 하지만 작품은 설사 영혼을 포기하더라도 도덕을 초월한 삶, 그 처참한 몰락조차 영웅적 삶의 완성으로 간주한다.
처절한 몰락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도리안은 고전적 영웅이 아닌 낭만적 영웅으로 그려진다. 작품은 신의 구원을 받기를 거부한, ‘선이라고 여겼던 가치가 ‘위선으로 전락한 시대에서 이를 파괴하는 길을 선택한 도리안을 통해 낭만주의적 반어를 완성한다.
김준수는 이번에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160분간 미치도록 아름다운 남자 도리안의 완성 그 자체다. 김준수가 없는 ‘도리안 그레이는 상상조차 어렵다.
'드라큘라', '엘리자벳', '디셈버', '천국의 눈물', '모차르트', '데스노트' 등을 통해 뮤지컬계 슈퍼스타로 우뚝 선 김준수, 프레스콜 무대 전 ‘도리안 그레이는 창작 뮤지컬이라 자유롭고 홀가분하다”면서도 기본 베이스가 없어서 더 중압감과 압박감도 느낀다”고 토로했다.
2016년 가을 ‘도리안 그레이와 함께 화려하게 귀환한 김준수가 과연 창작 뮤지컬의 리스크와 한계마저 넘어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10월 29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
kiki2022@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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