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초교생 선거 과열…"돈 없으면 출마 못해"
입력 2016-09-04 11:18 
사진=연합뉴스
초교생 선거 과열…"돈 없으면 출마 못해"



초등학교 '전교 회장' 타이틀을 따내기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가 홍보 비용을 마구 써가며 자녀의 당선에 열을 올리다 보니 경제적으로 형편이 여의치 않은 학생은 출마할 엄두를 내기조차 어렵습니다.

과열된 선거경쟁은 '일단 되고 보자'식의 무리한 공약 남발을 불러와 학교내 갈등을 부추기고 선거의 교육적 취지마저 퇴색시킨다는 지적입니다.

◇ 홍보 벽보·피켓·어깨띠 제작…"업체 홍보전 방불"

충청도의 한 '폼아트' 업체는 초등학교 개학과 동시에 밀려드는 주문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일부 학교에서 2학기 전교 회장선거가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중·고등학교와 달리 1·2학기 두 차례 전교 회장을 뽑는 초등학교가 제법 많아졌습니다.

후보자들은 투표일 2∼3일을 앞두고 등하굣길과 점심시간 재학생들을 상대로 홍보활동을 하는데, 예쁜 손글씨가 들어간 폼아트가 한눈에 잘 들어와 인기리에 팔립니다.

주로 '벽보 3장(장당 3만원), 피켓 4개(장당 3만5천원)' 단위로 주문이 들어오는데, 그 가격만 23만원에 달합니다.

여기에 회장, 부회장과 홍보를 도와주는 친구들의 어깨띠(개당 2만원) 5개를 추가하면 33만원에 이릅니다.

업체 관계자는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가격이 좀 나간다"며 "그래도 디자인이 깔끔하고 색감도 좋아 (폼아트를) 선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등굣길 선거 벽보를 보니 죄다 전문 업체가 만든 것들이었습니다. 너무 휘황찬란해 이게 초등학교 선거인지 업체 홍보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며 씁쓸해했습니다.

◇ 스피치 학원·사진관도 '성행'…"돈 없으면 출마못해"

사진과 언변 등 보이는 부분이 당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스피치 학원과 사진관을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습니다.

서울 강남의 한 사진관은 선거출마용 기본 명함사진과 전신·측면사진을 5만∼15만원에 찍어주고 있습니다.

이 사진관 관계자는 "사진 한 장으로 학생의 이미지가 달라지기 때문에 많이 찾아온다"며 "일반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푸른 배경으로 찍는다"고 말했습니다.

유려한 선거연설을 위해 한 달에 40만 원씩 스피치 학원에 투자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습니다.

선거비용을 부담하기 어려운 학생들은 선거출마에 선뜻 도전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인천 서구의 한 초등학교 학부모는 "100만원이 넘는 돈을 전문 업체에 주고 선거 벽보, 조끼, 피켓, 홍보도구 등을 만들어 회장에 당선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적은 비용으로 재료를 사서 친구들끼리 선거 벽보나 홍보물을 직접 만드는 다른 어린 학생들의 동심을 멍들게 하는 것 같아 씁쓸했다"고 말했습니다.


◇ "에어컨 교체" 무리한 공약 남발…낙선학생 항의에 '골머리'

과열된 경쟁 탓에 학생 신분으로 이행할 수 없는 공약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강원 B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주 1회 딸기 우유 배식' 공약을 내세운 후보가 당선됐다가 홍역을 치렀습니다.

색소가 들어 있는 우유는 건강을 이유로 배식하지 않았는데 당선학생이 학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까지 동원해 공약을 지키게 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양교사는 "끝까지 소신을 지켰지만 지금도 그때 당한 압력을 생각하면 씁쓸하기만 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경기도 수원의 C초등학교에선 '에어컨을 교체해주겠다. 1년 내내 빵빵하게 틀어주겠다'는 막무가내식 공약까지 나왔습니다.

C초등학교 교사는 "무리한 공약을 낸 학생이 덜컥 당선되면 학생들은 '해달라'고 아우성이다"며 "또 당선자가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낙선자 측에서 항의가 들어오기도 해 골머리를 앓는다"고 말했습니다.


◇ "업체 금지하니 출마학생 늘어…부모 욕심 버려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교들도 저마다 대책을 마련해 선거 과열을 막고 있습니다.

광주 대성초등학교는 올해부터 업체에 벽보 주문하는 것을 금지했더니 경제적인 부담으로 학생회장 출마를 포기했던 학생들의 지원이 늘어 총 6명이 나서는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울산 남구의 한 초등학교도 학생들이 손수 만든 홍보물만 사용하도록 하고 벽보도 3개로 제한해 선거 과열을 막았습니다.

학생들로 꾸려진 선거관리위원회를 만들어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사전에 점검했더니 공약이행률도 높아졌습니다.

수원 산의초 관계자는 "후보가 스스로 고민하고 학생 신분으로 지킬 수 있는 공약을 만들어 내는 것, 학생들이 서로의 공약을 점검해 보완, 수정해 가는 것이 모두 교육이다"라며 "그러다 보면 공약이행률도 자연히 높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교육 당국의 올바른 선거교육과 지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학생들의 선거에서 부모의 욕심이 빠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임진희 참교육학부모회 광주지부장은 "학생들이 본인의 힘으로 공약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어 선거에 임해야지, 부모들이 업체에 맡기거나 선거운동을 도와주는 것은 교육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나연정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장도 "학생회 선거마저도 입시점수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초등학생 선거 과정이 어릴 때부터 민주주의를 배우고 체감하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도록 교육 당국이 지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