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비운의 천재 여성화가 최욱경…작품으로 다시 살다
입력 2016-08-30 16:22 
최욱경

신화처럼 사라진 한 천재 여성 화가가 있다. 마흔 다섯에 요절해 삶도 예술도 미처 꽃을 다 피우지 못한 비운의 화가다. 최욱경(1940~1985)이다. 1970년대 국내 화단을 점령했던 단색화나 1980년대 민중미술, 그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다. 굳이 끼려고도 하지 않았다. 철저한 이방인인 그녀가 서 있는 지점은 지금도 독보적이다. 1960년대 전후 세계 미술사의 중심이었던 뉴욕의 추상표현주의라는 도도한 흐름을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온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을 독특한 추상 색채 화풍으로 정립한 작가다.
그녀를 다시 꺼내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활발하다. 단색화 열풍을 이끌었던 국제갤러리는 1970년대 단색화와 또 다른 축을 담당하고 있는 최욱경에 주목해 그녀를 국내외에 알리는 데 팔을 걷어 붙이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개막으로 전세계 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는 이번 주 국제갤러리는 최욱경의 개인전 ‘미국 시대 1960년~1970년대을 개막한다. 국내 화단에서 장욱진만이 가지고 있는 전작도록(카탈로그 레조네)도 만든다는 계획이다.
전시장인 ‘K2에는 1963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에 15년간 체류했던 기간에 그렸던 회화 70여점이 걸려 있다. 유족인 형제들의 소장품들이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최욱경은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미 초등학교 시절 당대 유명한 화가였던 김기창ㆍ박래현 부부 화실을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김흥수, 정창섭, 김창렬과 같은 최고 화가들에게 개인 교습을 받았다.

진짜 화가가 되겠다는 포부 아래 미국에 건너간 시기가 1963년이다. 크랜브룩 미술학교와 브룩클린 미술관 미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받은 뒤 프랭클린 피어스대학 조교수를 역임했다. 당시 뉴욕에는 잭슨 폴록, 윌렘 드쿠닝, 로버트 마더웰 등 추상표현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며 앤디워홀의 팝아트가 발아하던 시기였다. 한국 작가라고는 6.25 전쟁 중 도미해 미국과 유럽에서 활약하던 백남준 정도가 전부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 화가라곤 거의 전무했으며 더구나 키 155cm, 몸무게 43kg의 가녀린 체구의 여성 작가가 뉴욕에서 분투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최욱경이 지금도 미국 추상표현주의가 한국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화가로 남은 셈이다. 그녀는 형체를 그리고 그것을 지우는 식의 추상 회화를 추구했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표현을 중시했던 추상표현주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창작을 하는 동안 추상표현주의는 즉흥적이고 표현도 자유스럽지만 일말의 허무감을 안겨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추상표현주의를 염두에 두면서도 형체를 찾아내보려고 하였다.” 이러한 고백에서 알 수 있듯, 말년 캔버스에는 점차 형태가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색도 단청이나 민화 등 한국적인 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품을 마주하면 그녀가 얼마나 대담한 영혼의 소유자인지 짐작할 수 있다. 큰 붓으로 빨강과 초록 등 보색을 대비하며 강렬한 색채를 추구했으며 노랑과 검정색을 거침없이 풀어내며 화폭을 화려하게 장악했다. 팝아트 영향을 받은 듯 콜라주와 미국 사회의 그늘을 포착하려는 시도도 눈에 띈다.
나의 작품들은 단순히 무엇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닌 내가 살아온 순간의 경험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시도”라고 밝힌 그녀는 생전 작업실에 일어나라! 좀더 너를 불태워라”는 전투적인 문구를 붙여놓고 스스로를 강철처럼 단련시켰다.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불꽃같은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러다 마흔 중반에 접어들 무렵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덮쳤고 1985년 7월 홀연히 세상을 떠났다.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예술감독은 미국에서 자기만의 화풍을 완성하고 돌아왔으나 단색화와 퍼포먼스라는 아방가르드 계열과, 보수적인 국전으로 양분된 한국 화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디에도 낄 수가 없고, 끼기도 거부한 채 외로운 길을 걸었던 최욱경을 이제 제대로 조명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10월 30일까지. (02)735-8449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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