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빛보다는 그림자가 편해요"
입력 2016-08-30 15:58  | 수정 2016-08-30 17:42
김별아 소설가

"오- 탄실(彈實)아, 이십팔년간(二十八年間)의네생활이 쓰라리다고, 지루하고억울하엿다고 생각지안니?”
시(詩) 24편, 산문 2편, 소설 1편을 꿰맨 김명순(金明淳·1896~미상)의 ‘생명의 과실(1925) 57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탄실은 그의 아명이니, 비극같던 삶을 자문한 셈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 여성소설가임에도 김명순은 문단에서 기억되지 못했다. 소설가 김별아(47)는 탄실의 궤적을 따라가며 장편소설 ‘탄실(해냄출판 펴냄)을 썼다. 30일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 작가는 작가는 소설 속에 살고, 소설 속에 숨기도 하는데 소설로써 산 탄실을 담으려 했다”고 운을 뗐다.
올해는 탄실이 문단에 나온 지 햇수로 100년째 되는 해다. 1917년 문예지 ‘청춘의 소설 공모전에서 단편 ‘의심의 소녀가 당선된 김명순은 이광수의 극찬을 받아 1세대 여성문인이 된다. 하지만 한 세기 전 문단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없었고, 가난과 고독에 갇힌 그는 동경 아오야마 뇌병원에서 결국 정신이상으로 사망한다.
김별아 작가는 기생의 딸이자 여성작가란 이유로 사적인 인신공격을 받았던 인물이며, 뛰어난 글재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완성시킬 수 없는 상태에 빠진 소설가”라고 탄실 김명순을 재정의했다. 이어 그는 당대의 공격은 문학사에서 탄실 김명순을 누락시킨 요인 중의 하나였다. 잃어버린 이름을 찾아 문학사 안에서 자리매김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펜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기생 산월과 거상(巨商) 김희경 사이에서 태어난 김명순이 부모가 사망한 뒤 17세 몸으로 동경 유학길에 오르는 장면에서 소설은 시작된다. 친인척이 소개해준 리응준은 일본에서 탄실을 겁탈하고, 언론의 참혹하고 잔인한 가십거리가 돼 귀국한 그는 되려 등단해 문인이 된다. 매일신보 기자로도 활동한 신여성이었지만 주류 소설가들의 배척을 이겨내진 못했고, 문학사에서 기억되지 못했다.
‘누락된 역사는 김별아의 소설적 지향점이다. 김별아 작가는 존재만으로도 투쟁인 사람이 있고, 탄실이 그와 같았다”며 역사의 한 자리에 분명히 존재했는데,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누락된 역사가 나는 궁금했고, 그들의 삶을 복원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김별아 작가는 1993년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2005년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받아 베스트셀러 작가의 대열에 올랐다. 30대에 접어들며 역사적 소재에 몰입했고 조선왕실 동성애 스캔들을 다룬 ‘채홍, 양반가 간통사건을 소재로 한 ‘불의 꽃, 조선의 스캔들을 소설화한 ‘어우동, 사랑으로 죽다등 조선 여성 3부작을 펴내기도 했다. ‘역사 속의 여성이란 점에서 이번 소설 ‘탄실은 맞닿은 면이 없지 않다.
‘역사와 ‘여성이 소설가 김별아의 소설적 심연에 두 키워드로 자리잡은 이유는 뭘까. 달리 말해, 소설가란 업(業)에 대해 소설가 김별아는 답했다.
작가는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 알고 싶어하고, 질문하는 존재예요. 작가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이승이나 저승에도 없는, 그런 존재 같아요. 여전히 이름을 찾지 못한, 이름이 있어도 세상에 나오지 못한 여성들이 많아요. 빛나는 자리가 아닌 그림자에 놓인 존재를 발굴하는 책무가 제게 있지 않을까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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