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8월 29일 뉴스초점-'억' 소리나는 노역
입력 2016-08-29 20:23  | 수정 2016-08-29 20:30
연봉 1억이라고 하면 성공한 직장인의 기준이라 할 수 있을텐데 연봉이 아니라 일당이 1억이라면 믿어지십니까.

정확히는 돈을 받는 건 아니고 벌금을 탕감해 나가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일당 1억은 너무 많죠?

얼마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전재용 씨가 일당 400만 원의 노역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황제노역 논란이 다시 제기됐습니다. 일당이 400만 원이라곤 하지만 하는 일은 교도소 내 쓰레기 수거나 배수로 청소, 풀깎기 같은 게 전부입니다.

전 전 대통령의 처남인 이창석씨 역시 일당 400만 원 짜리 노역을 하고 있는데. 역시 쓰레기 줍기나 종이접기, 전기 콘센트 조립 같은 일을 합니다.

전재용 씨가 미납한 벌금은 38억, 이창석 씨는 34억 원. 재용씨는 입소한 지는 50일 됐지만 실제 일한 날짜는 34일이니까, 불과 34일만에 2억 원을 탕감 받았습니다.

보통 형사사범의 노역 일당이 10만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5년 6개월치 일을 50일 만에 한거니 생산성이 대단한 분인거죠.

황제 노역이 논란이 된 건 지난 2014년 대주그룹 허재호 전 회장의 일당 5억 원 짜리 노역 때였습니다.

당시엔 노역형에 대한 권한이 재판부에 있었고 판사의 재량으로 일당 5억 원이란 판결이 나올 수 있었죠.


논란이 거세자 법이 개정됐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긴거죠. 개정법은 노역기간을 3년 이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벌금 액수에 관계없이 이 기간내에 모든 돈을 탕감해야 하니까, 오히려 탕감받을 돈이 많은 사람이 유리해지는 겁니다.

보통 일당을 10만 원 정도로 치고 3년 동안 갚아야할 빚을 계산하는데, 만일 제가 300억 원의 벌금이 있다면 이건 3년 이내에 탕감이 되어야하고 그러니까 계산을 하면 일당은 2,700만 원이 되는 겁니다.

'환형유치제도'는 사회적 약자나 가벼운 범죄에 대한 벌금을 탕감해주기 위해 시작됐는데, 오히려 큰죄를 짓고 더 많은 벌금형을 받은 사람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겁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독일은 일수 벌금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벌금 액수를 정하기 전에, 피고인이 일당으로 얼마를 낼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하고 그 뒤에 거기에 맞춰 총액과 형량을 정하는 거죠. 때문에 벌금이 많을수록 노역기간도 길어지는건 당연합니다.

핀란드·스페인 등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이걸 시행하고 있고, 미국도 벌금을 지불하는 기간을 20년으로 길게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 국회엔 노역장 유치기간을 3년에서 6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일명 '전재용 방지법'이 발의돼 있는데, 이 경우에도 재용 씨의 일당은 4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줄어드는 데 그칩니다. 이것으로 국민들의 법 감정이 누그러질까요.

노역의 뜻은 '몹시 괴롭고 힘든 노동'입니다. 그런데 청소를 하고, 전기 콘센트를 조립하면서 하루 400만 원씩 탕감받는다면 그것은 이미 노역이 아닐 겁니다.

브라질 미나스제라이스 주의 한 교도소는 노역형을 사는 죄수들에게 자전거를 타게 합니다. 이 자전거 페달은 발전기로 연결돼 강변 산책로 가로등에 전기를 공급해 길을 밝힙니다.

돈은 안되더라도 오히려 의미는 더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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