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사 2분기 8700억 손실 `위험한 베팅`
입력 2016-08-25 17:52  | 수정 2016-08-25 21:58
주가연계증권(ELS)을 비롯한 파생상품 운용에서 손실은 비단 한화투자증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ELS 등 파생상품 운용에서 2분기 연속 거액 손실을 기록하면서 올 상반기 13개 국내 주요 증권사 전체 순이익(7900억원)은 지난해 같은 기간(1조7500억원)에 비해 55%나 줄었다. 증권사들이 ELS 운용 과정에서 챙길 수 있는 초과수익을 노리고 자체 헤지 비중을 과도하게 높인 게 주요인이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 증권사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자체 헤지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지만 노하우가 축적될 때까지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분기 국내에서 영업 중인 56개 증권사들의 파생상품 매매 손실은 약 87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1분기 파생상품 매매 손실 8304억원보다 400억원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2분기 증권사 파생상품 매매 손실은 홍콩 H지수 급락으로 지난해 3분기 기록한 1조3187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파생상품 손실 대부분은 ELS 운용에서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증권사들의 상반기 ELS 손실이 불어난 데는 자체 헤지 확대가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2011년 말 31%였던 국내 증권사 ELS 자체 헤지 비중은 2013년 말 40%, 2015년 말 47%까지 높아졌다. 올해 3월 말에는 53%로 절반을 넘어섰다. 2003년 국내에서 ELS가 발행되기 시작한 지 13년 만에 처음이다. 헤지 비용을 아끼거나 헤지거래 과정에서 초과 운용수익을 챙기려는 욕심에 자체 헤지를 늘렸지만 결과적으로 헤지 운용에 실패하면서 대규모 손실 폭탄을 맞은 것이다.

한 대형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일부 파생상품 임직원들이 자체 헤지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 맡겨 본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면서 "국내 증권사 규모나 운용 경험을 봤을 때 노하우가 쌓일 때까지 자체 헤지 비중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지난해 3분기나 올해 1분기처럼 시장이 급격하게 변할 때는 경험이 많은 파생 전문가들조차 손실을 회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화투자증권의 경우 회사채 신용등급(한신평 기준 A+, 등급전망 부정적)이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편이라 기관 영업 물량을 우회적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백투백 헤지를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관의 경우 AA 등급 미만 증권사 ELS는 거래하려 하지 않는다"면서 "한화증권이 신용등급이 높은 증권사가 발행한 ELS를 가져와 위험을 무릎쓰고 운용을 대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화증권은 CEO 교체 이후 지난 3월 파생상품 담당 본부장과 임원을 교체하고 장외파생상품(OTC) 운용과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여승주 한화증권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규모 손실 주원인인 ELS 불완전 헤지를 해소하기 위해 평가 기준을 바꾸며 올해 상반기 1026억원의 일회성 손실을 추가로 반영해둔 상태"라며 "ELS 위험을 정교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 앞으로 어떤 시장 변동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ELS를 포함한 파생결합증권 발행잔액이 지난달 말 기준 103조9000억원으로 100조원을 넘은 상태다. 금융당국도 ELS가 증권사와 투자자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25일 증권사 임원 간담회에서 손자병법에 나오는 '초윤장산(礎潤張傘)'을 거론하면서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항상 전조증상이 있으니 시장 상황을 면밀히 살피며 대비하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날부터 한화증권 후속으로 미래에셋증권에 대한 ELS 현장 점검에 돌입했다. 금감원은 삼성증권과 신영증권 등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점검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원회는 다음달 말 장내 파생상품 활성화 및 ELS 건전화 방안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일률적인 총량 규제보다는 감독당국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위험하다고 경고를 주고, 그에 따라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발행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유력해 보인다.
[최재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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