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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낙하산인사공화국] 인선규정도 없는 검증 사각지대 `産銀 자회사`
입력 2016-08-07 16:38 

산업은행에서 제가 자회사 관리 책임을 맡았지만 외부 인사 영입을 절차대로 진행해본 경험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윗선에서 결정이 나고 신문에 이름이 공개된 다음에야 사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 등을 사후적으로 진행했습니군요. 인사만 놓고 보면 산업은행 입장에서 자회사 대부분이 ‘무늬만 자회사입니다.”(산업은행 간부 A씨)
정부가 100% 지분을 보유한 산업은행이 출자한 자회사들은 CEO(최고경영자) 인선 관리·통제의 대표적인 사각지대로 꼽힌다. 지난해말 기준 산업은행이 15% 이상 지분을 출자한 비금융 자회사는 132곳이지만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라고 볼 수 있을 만한 회사는 대우조선해양과 동부제철, 현대상선, 현대시멘트,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일부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산은 자회사는 낙하산 출신으로 구성된 산업은행 이사회가 자회사 이사회를 또다른 낙하산들로 채우는 거수기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공공기관의 경우 법률에 따라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후보 평가를 거치도록 하는 형식적인 절차라도 마련돼 있는 반면 산은 자회사의 사장 인선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이사회의 비공식적인 연장선에 있는 ‘사장추천위원회나 최근 현대상선 CEO 선임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전문 HR컨설팅업체 용역 역시 이같은 낙하산 관리·통제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산업은행의 대표적인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인 2009년 3월 13일 정기주주총회에서 남상태 기존 대표이사를 재선임했다. 남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의 남동생 고(故) 김재정 씨와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는 결국 지난달 27일 회계사기와 사기대출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산업은행의 한 간부는 (남 전 사장 연임)당시는 공교롭게도 민영화가 시작된 시기라 산업은행이 시중은행처럼 영업을 뛰기 시작했는데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이 외환거래 등 거래를 할 때 오히려 ‘갑처럼 굴어서 젊은 직원들이 당황해했다”고 회고했다. 남 사장 연임과 함께 이사회 대열에 합류한 사외이사들은 장득상 힘찬개발 대표이사, 송희준 이화여대 사회과학대 학장(정책학 전공), 배길훈 한국델파이 대표이사, 김영 전 부산MBC 사장 등 조선업과 무관한 인물들이었다.
2012년 3월 30일 정기주총을 앞두고는 남 전 사장의 측근인 고재호 사장이 후임으로 내정됐다. 이사회를 중심으로 사장추천위원회가 구성됐지만 당시 이사회 역시 남 사장과 송희준 교수, 김영일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 김지홍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등 낙하산 사외이사들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청와대 대변인이 된 윤창중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이 대우조선해양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된다. 고 전 사장 역시 지난달 27일 회계사기·사기대출 혐의 구속기소됐다.
대우조선해양 본사의 한 간부는 이사회나 사추위는 요식행위일 뿐이고 임명한 주체가 누군지 불분명하다 보니 나중에 사장이나 경영진 비위 의혹이 제기되더라도 이를 견제하고 통제할 주체 역시 없었다”며 대규모 분식 의혹이 나오고 나서 낙하산과 거리가 먼 정성립 사장이 오긴 했지만 정권이 또 바뀌면 어떤 인물이 올지 모르는 ‘무정부 상태”라고 지적했다.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도 마찬가지다. 법적 근거가 없는 자율협약은 물론이고 워크아웃을 규정한 기업구조조정 촉진법 역시 워크아웃 대상기업 CEO 인선을 둘러싼 규정이 없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별도 규정은 없고 관행상 경영진추천위원회에서 채권은행별 대표, 회사 대표, 실사 회계법인 담당자가 참석한다”며 실제 사람이 만나는 회의가 열리지 않고 주채권은행 부행장 전결로 처리되는 거라 경추위가 의미가 있는 협의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고 전했다. 그는 또 경영진추천위원회의 위원장은 해당 구조조정 기업의 현직 대표이사이고 대표이사를 선임할 때는 대표이사가 제척되게 돼 있어 대표이사 선출을 위한 기구는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산업은행 구조조정 체제 하에 있다가 민간 자본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한 기업 직원들이 ‘산업은행 밑에 있을 때가 정말 편했는데 다시 팍팍한 오너를 만나게 됐다고 아쉬워하더라”며 그만큼 산업은행 자회사들의 경영진 인사 시스템이 엉망이란 얘기”라고 했다.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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