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시인이자 극작가, 시극(詩劇)을 펴내다
입력 2016-07-19 16:39 
<김호영 기자>

극(劇)을 시(詩)로 써야 할 이유부터 묻자 폭넓은 이야기”라며 그는 입을 뗐다. 20분이 흘렀다. 준비한 질문 스무 개는 첫 답변에 무력화됐다. 더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들이었다. 타이핑하던 손을 내려놓고 즉석에서 물었다. 인스턴트 다방 커피같은 질문을 퍼부으면, 진한 에스프레소의 문장이 쓰리샷, 포샷으로 부어졌다.
‘시인 공화국에 몸 담고도 극작가 겸 시인 김경주(41)는 어떤 아나키스트였다. 시와 극은 하나”라며 연극, 뮤지컬, 낭송, 공연기획으로 외연을 넓혔다. 업(業)의 본질이 시임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시인으로 기억되길 고집하지도 않았다. 시극 ‘나비잠(호미 펴냄)을 낸 그를 15일 그의 ‘친정 상수동 이리 카페에서 만났다.
시극 ‘나비잠은 사대문 도성 축성이 한창이던 조선 초기 여름날의 이야기다. 가뭄과 기근은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기억을 남겼다. 남들보다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달래는 흉조의 근원으로 소문이 난다. 두 팔 벌린 아기의 나비잠처럼 잠들기만을 백성들은 소망한다. 김 시인은 시극은 현대성을 시사한다”고 단언했다.
14세기 백성의 불면은 21세기의 우리의 불안을 닮았다는 것. 잠은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는 일”이라고 정의한 김 시인은 자장가는 우는 아이 외에 자신을 위해 부르기도 하고, 때로 고통도 죽음도 달랜다. 불면의 시대에 필요한 건 리듬감으로, 잠 못 자는 존재들의 상실을 시극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시극의 문장과 대화는 서슬이 퍼렇다. 살아 있는 것들을?”이란 대목수 질문에 죽어 가는 것들을”이란 천문사관의 답(47쪽)이 꼭 그렇다. 비밀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56쪽)거나 숨 냄새에도 정이 드는 게 인간”(78쪽) 등의 문장은 영락없이 김경주의 필체다.
김 시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자체가 비극시 교본이었고, 고대 문인은 비극을 쓰는 시인이었다”며 역사적으로 자본의 점유율이 높아지며 서사가 따로 떼어져 나왔고 문학적 서정성이 이분화돼 시와 극이 별개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와 극은 사실 쌍생아”라고 비유했다.
자장가는 김 시인에게 ‘달래다의 동의어다. 그는 ‘좋아요나 ‘공감으로 상징될 SNS의 ‘달램의 형식에 냉소적이다. 현대사회는 실시간으로 연결돼 고백의 트래픽을 쏟아낸다”는 그는 그 안에 인간성과 진실성이 담겨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며, 그 뒤의 비밀과 상실이 나는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시인은 시는 내면을 달래는 흔적”이라는 그는 시극은 언어를 지워 공간을 비우는 것이며, 행간을 읽는 것이 문학이다.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떨림도 이야기가 아닌 시적인 느낌으로 채워나가려 한다”고 강조했다.
타이피스트(typist)는 김 시인의 태생적 직업이다. 함의를 묻자 내게는 ‘쓰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두드리는 자의 삶, 펜 노동자란 삶의 가치를 원한다”고 했다. 쓰는 이유에 대해선 시간이 흘렀을 때 내 문학 스스로의 온전성을 갖기 위해”라고 답했다.
시인과 극작가. 무게중심이 기우는 방향을 묻자 표정이 서늘했다. 시는 지키기 위해 쓰는 것이다. 몇 천년을 지켜온 시의 유산이 소실되는 건 치명적”이란 그는 따지고 보면 전부 시적인 작업이며, 시의 무게를 확장하는 작업이다. 나는 시인이 아니면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다섯 번째 시집 제목으로 ‘리본 공장의 노동자들(가제)를 꼽은 김 시인은 장례인지 사랑고백인지, 리본이 어디에 달리는지 리본을 만드는 이들은 모른다”며 창작과 그 창작물을 만나는 사람의 공존지가 어디에 있는지에 끌린다”고 말했다.
‘김경주 시를 통칭할 단 하나의 단어를 뽑아달라고 물었다. 거침없이 시차(時差)는 나의 코드네임 같은 것”란 답이 돌아왔다. 김 시인은 커다란 자장력 안에서 시차가 빚어져 다양한 요소가 만들어진다. 그걸 달래는 게 내 시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가 한동안 눈을 비볐다.
[김유태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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