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성주 주민들 "전자파참외 소문나면 끝장 아닌교"
입력 2016-07-17 15:52 
성주 군민 1000여명이 지난 16일 오후 8시 군청 앞에서 사드 배치 반대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유준호 기자>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걸로 생각하였다.<영화 ‘곡성의 프롤로그 자막>
전쟁 같았던 ‘사드 불통 대치 국면이 휩쓸고 간 다음날 인 지난 16일 경북 성주엔 아침부터 ‘곡성의 첫 장면 마냥 억수 같은 비가 퍼부었다.
15일 주민설명회에 나선 황교안 국무총리에 계란과 물병 세례를 퍼부은 성난 민심은 차가운 장대비에도 좀처럼 식지 않은 모습이다. 성주의 참외농가가 빼곡이 들어선 성주읍 성산 6리 마을회관은 몇일 전 까지만 해도 지나가던 관광객들에게도 참외하나 깎아서 내놨던 인심이 넉넉한 ‘사랑방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16일 기자가 찾아간 그 곳엔 외부 사람들에 대한 경계의 눈길이 역력했다. 뭐하러 왔노. 대통령도 못 믿을 세상에, 요즘 못 믿을 게 사람이야. ”
회관 사랑방에 모여 있던 할머니들의 한 목소리다. 지난 50년간 성산리에서 참외농사를 해왔다는 이모 할머니(65)는 우리는 사드는 잘 모르고 농사 짓는 거 밖에 몰라도 전자파 나쁜 거는 세상이 다 안다. 근데 전자파 참외 판다고 소문나면 여도 끝장 아인교”라며 손사레를 쳤다.
순박한 농심을 들끓게 만든 것은 사드의 고주파 레이더, 발전기 소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갑작스럽고 소통이 안된 정부의 일방적 ‘사드배치 발표라는 게 이 곳의 얘기다. 신문·방송에 ‘성주배치 가능성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와도 군수조차도 ‘설마설마 했던 상황에서 ‘덜컥 확정 발표가 나버렸다는 것이다. 평생 새누리당 찍은 사람들이니 ‘그냥 참겠지 한거 아니겠어요. 투표 때마다 새누리당 찍은 이 손가락을 잘라 삐고 싶어예.”
이윽고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지만 성주 곳곳엔 빗줄기 보다도 더 짙은 ‘불신의 안개가 뒤덮었다. 전날 성주읍내 곳곳에 내걸렸던 ‘사드반대 플래카드 수도 하루이틀사이 훨씬 늘어버렸다. 성주군농민협회, 성주여자중학교 학부모회, 바르게살기협의회, 한의사협회, 건설기계협회, 참외 작목반, 부녀회, 새마을회, 각종 동창 동문회 동문회 등 세기 힘들 정도다. 전날에 이어 이날도 밤늦게 까지 촛불집회와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성주군청에서 만난 이주인(59)씨는 사드 배치를 한마디로 ‘못된 전자레인지로 표현혔다. 내 아이가 전자레인지에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 한컵을 전자레인지로 끓이고 양파를 넣어봐라. 뿌리가 내리나 안 내리나. 전자파는 이런 거고 사드 레이더가 바로 이 건데 우리 더러 전자레인지 안에서 살라는 얘기다.”
전날 밤 촛불집회서 발언자로 나온 이상문씨(50)는 번개가 치면 땅에 있는 공중 공기와 땅의 공기가 부딪치듯이, 전자파 역시 지상에 전자파 유도 물질이 있으면 전자파를 잡아 당겨 아이들 필통과 연필까지도 영향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의심은 이미 ‘확신으로 변했고 사전에 소통하지 못했던 정부가 내놓은 설명은 그저 ‘변명으로 흘려 듣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이다.
현지에서 사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은 지역의 대표 관광명소인 세종대왕자태실과 포천계곡, 한개마을 주변 상인들이다. 사드 사태 후폭풍과 함께 비까지 내리자 ‘성수기에도 관광객 발걸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주말마다 관광객으로 북적였던 세종대왕자태실은 이날 텅 비어 한산했다. 이곳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50)씨는 주말이면 주자장에 차 댈 곳이 없어서 주차요원이 필요할 정도였는데, 사드 배치가 결정되고 시위가 시작된 후부터는 관광객이 뚝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광우병 사태 때처럼 현지에선 중앙언론들이 정부와 짜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분위기도 팽배해지고 있다. 지난 15일 밤 촛불 집회에선 공정 보도 안하는 언론들 가만두지 않겠다”며 사회자가 부르짖었다. 밤늦게 집회에 참여한 성주중·성주고 학생들에게 기자가 사드 관련 정보를 어디서 얻냐”고 묻자 대부분이 페이스북 등 SNS와 친구를 통해 얻는다”고 대답했다. 성주중 3학년 생인 김모군은 페이스북과 인터넷에 들어가면 사드가 ‘살인무기라는 얘기가 널려 있다”며 지구가 망해가는 단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성주고 3학년생인 또 다른 김모군은 아무리 사드 레이드 파장이 주로 직선으로 나간대 해도 결국 전자파니까 크게 보면 사방으로 퍼지니까 위험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사드는 방어체계이고 고주파일수록 직진성이 강하다는 과학원리를 설명해줘도 그렇게 안전한 것이면 이렇게 강제로 하겠느냐”는 답변이 돌아올 뿐이다.
16일 오후 5시께 성주 군청 건너편 성주문화원 입구에서 보수단체인 진리대한당과 사단법인 ‘월드피스자유연합 소속 회원 10여명이 ‘사드찬성 맞불집회 까지 벌이면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기도 했다. 그들은 사드 배치는 성주의 발전과 애국자”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폈고 시가로 행진하면서 전단지를 나눠줬다. 그들이 돌린 전단지에는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 성주군민은 받아들여라. 사드 레이더의 건강 침해는 없다”고 쓰여있었다. 이들의 ‘찬성집회에 뿔난 성주군민 차량이 성주문화원으로 모여들고 경적을 ‘빵빵 울려대자 경찰들이 출동해 충돌을 가까스로 저지했다.
‘사드배치 발표 이후 정부나 이 곳 성주군청이나 가장 큰 걱정 거리 중 하나가 과거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등 장기 갈등 사태에 개입했던 환경단체·노동단체 등 외부세력들이 개입해 사태가 장기화·악화 되는 것이다. 경찰출신인 이항곤 성주군수는 외부세력과 연계는 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난 14일 대구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에서 진보단체인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하 평통사)이 정부의 사드 성주 배치 결정을 철회를 요구하면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문규현 신부가 이끄는 반미 성향의 평통사는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제주도 강정기지 사태에도 개입했다.
경찰에 따르면 아직 외부 단체들이 직접 성주에 들어와 ‘반사드 활동에 나서고 있는 정황은 없지만 몇 몇의 개인들이 혼란스런 시위과정에 섞여서 폭력행동에 가담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벌써 진보성향 야당 정치인들이 속속 성주로 모여 들고 있다. 지역에서 반사드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들을 지원사격하기 위해 지난 15일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다녀갔다. 김 의원은 최근 강정마을 해군기지 구상권 철회를 둘러싼 분쟁사태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인천 서구갑에 출마했다 낙선한 유길종 씨도 이날 집회에 나서 성산포대 뒤가 고향이고 나도 조모·조부가 모두 성주사람”이라며 사드반대를 외쳤다.
그는 전국금속노조 지엠대우차 사무지부장 출신이다. 유씨 발언을 듣고 있던 한 할아버지는 언제 봤다고 지 고향이고, 다 지묵고 살라고 어리숙한 촌사람들 이용할라고 만 한다. 우리가 바보가”라며 혀를 차며 자리를 일어섰다.
[성주 = 서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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