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금 할 수 있는 건 짐 하나라도 더 챙겨오는 것" 기업인들 한숨
입력 2016-02-11 16:51  | 수정 2016-02-12 17:08

11일 아침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통일부 남북출입사무소(CIQ)와 차로 불과 3분 거리에 있는 북측 개성공단 현지는 무거운 긴장감에 휩싸였다.
이날 오전부터 개성공단 철수절차가 시작되면서 설 연휴기간 공단을 비웠던 입주기업 관계자들은 이른 시간부터 불안안 표정으로 모여들었다. 30분 차이인 남북 시간을 알려주는 두 개의 시계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정부의 갑작스런 통보에 불만을 표하며 개성공단이 조속히 정상화되길 희망했다.
개성공단에 LPG 가스를 공급하는 E1 개성영업소의 김학주 부장(63)은 막대한 시설 투자가 돼있어서 피해가 매우 클 것”이라며 이런 식으로 정책이 되면 과연 재개가 되더라도 누가 리스크를 안고 여기에 투자할 것인지 의문”이라며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정부가 발표한 지원책에 대해서도 그는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이 너무 많다”며 정부에서 내 살림처럼 꼼꼼하게 챙길 수 있겠나?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은 이날 출경해 공단에서 LPG 관련 위험요소를 차단한 뒤 13일 오후 입경할 예정이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의류업체의 홍재왕 공장장(54)도 기자들과 만나 통보를 받고 참담했다. 어느 정도의 제재는 예상했지만 중단 결정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측에서 새로 자리를 잡는다는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서 빨리 해결돼서 복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엇부터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최대한 회사의 피해를 적게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기계와 설비도 있지만 일단은 제품들을 완제품 위주로 가져오는 것이 최우선순위”라고 밝혔다.

냄비 생산업체에서 일하는 전주명 씨(65)도 예상은 어느 정도 했었지만 갑작스럽게 이렇게 막으리라곤 생각 못했다”며 모든 게 다 어긋나버려서 납기일을 맞추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남북출입사무소에 위치한 현대아산 출장소도 대책 마련에 분주했다. 닫힌 사무실 밖으로 ‘개성공단공동브랜드 PEACEWORKS 광고판만 초라하게 서있었다.
남북출입사무소에서 2009년부터 식당과 매점을 운영해온 양경우 씨(60)는 허탈한 표정으로 내일은 좀 낫겠지, 모레는 좀 낫겠지 하다가 열 살을 더 먹었다”면서도 가게에 파리 날려도 (북한을) 조일 땐 강하게 조아야 한다”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출경자들이 게이트로 들어간 뒤 북측에서의 입경도 시작됐다. 이들이 전한 개성공단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하다였다. 공단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 모씨(43)는 오늘 북측 근로자들은 출근하지 않았다”며 북측 근로자들은 중단을 원치 않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같이 근무하는 의사 김준형(53) 씨도 병원에서 일하는 북측 근로자 2명은 오늘 나오지 않았다”며 사람만 없다 뿐이지 평소랑 같다”며 개성의 분위기를 전했다.
사무소 밖 차도를 통해서는 트럭들이 오고갔다. 개성을 향하는 트럭은 대부분 빈차로 온 반면, 서울로 돌아오는 차들 중에는 짐을 싣고도 모자라 차 위에 박스를 여러 개 쌓고 줄로 묶고 온 차들도 많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들은 최대한의 자재를 회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공단 현지 분위기를 전해왔다.
한 사출금형 전문업체 대표는 개성공단 현지에서 북측 직원이 한 명도 출근하지 않아 직원 한 두 명을 보내서 두 시간여 만에 필요한 물건을 싣고 있는 상황이다”며 기업 내부적으로도 완전히 초상집처럼 망연자실한 분위기”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번 조업 중단으로 인해 특히 개성공단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일수록 더 큰 피해를 호소했다. 귀금속 케이스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모 업체 대표는 지난 2013년에 공단이 멈춘 위기를 1년만에 극복했더니 또 다시 납기가 몰린 시점에서 조업 중단이 됐다”며 많은 생산량을 개성공단에 의존하고 있었던 만큼 실무자 1명을 5톤짜리 화물차량과 함께 보내 완제품 일부라도 챙기고 있다”고 탄식했다.
일부 대표들 가운데서는 정부의 조업 중단 조치에 대해서는 철수를 위한 시간을 더 달라는 입장과 함께 정경분리의 원칙을 어겼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섬유업계에 종사하는 한 대표는 시간이 너무도 촉박해 급히 직원과 차량을 보내 물건을 챙기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공단 폐쇄 수순으로 가고 있어 당황스럽다”면서 정경분리의 원칙에 입각해 세워진 개성공단을 북에서 한 번, 남에서 한 번씩 정치적으로 주고받으니 기업하는 사람으로서는 답답할 뿐이다”고 말했다.
[파주 남북출입사무소 = 노승환 기자 / 서울 = 안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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