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유전자 골드러시] 제도가 기술 못 따라가는 한국 `남 좋은 일만`
입력 2016-02-05 14:08 

유전자 가위와 관련된 임상 실험을 위해 미국과 중국에서 연구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국내 한 대학에서 유전자 가위 연구를 하고 있는 A교수는 한국을 떠날 것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연구를 방해하는 규제 때문이다.
A교수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체세포에서 질병을 유발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치료법이 암,에이즈 외의 다른 질병에도 적용이 가능한지를 연구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법규상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착수조차 엄두를 못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1일 인간 배아에 대한 유전자 가위 적용을 허용했다. 자궁 착상을 금지하긴 했지만 과거 끊임없이 논란이 됐던 인간 배아 연구의 길이 열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인간 생식세포에 대해 유전자 변화를 가져오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돼 있다. 지난해 말 개정된 생명윤리법에서도 유전자 편집 관련연구는 유전과 관련되어 있거나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켜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현재 법상으로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간단한 실험조차 한국에서는 진행할 수 없다.

동물 유전자 연구 뿐 아니다. 국내 대학에서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식물 교정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은 국내법이 여전히 유전자변형생물(GMO)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한다. 서로 다른 유전자를 조합하는 GMO 연구는 자연계로 퍼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지정된 연구실에서만 실험을 해야만 한다. 생태계 교란이 발생할 수 있고 인체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GMO와 달리 식물 자체 유전자의 일부를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연구도 규정상 GMO와 같은 조건하에서 실험을 진행되어야 한다. 한 연구자는 미국은 유전체 교정 실험시 외부 유전자의 도입이 아니라면 규제하지 않는다”며 유전자 가위 기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어떠한 검토나 의견 수렴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유전자 가위 기술이 급부상하자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삶에 미칠 영향을 논의하는 ‘기술영향평가를 실시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언론을 통해 제기된 문제를 반복하는데 그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술영향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만든 개체에 대한 안전성 검증을 위한 새로운 규제 체계 마련”과 함께 배아에 대한 연구는 사회 각계각층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156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교수는 유전자 가위에 대한 기술적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설문조사를 통해 규제를 다시 만들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규제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과학기술 후진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철 기자 / 원호섭 기자 / 이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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