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우디의 강경노선 뒤엔 `정치불안 돌파` 또 다른 의도
입력 2016-01-04 17:02 

지난 2일 사우디아라비아가 시아파 유력인사 님르 알님르를 처형한 데 이어 하루만에 주(駐)이란 대사관 철수와 국교단절을 전격 선언하는 등 연일 초강수를 두고 있다. 시아파 종주국 이란 입장에서 사우디의 도발을 마냥 지켜볼수만은 없는 만큼 더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할 개연성이 크다. 게다가 벌써부터 사우디를 지지하는 수니파와 이란을 지원하는 시아파 국가들이 편가르기에 나서면서 종파갈등에 따른 중동발 지정학절 불안이 최고조로 치달을 전망이다.
일단 지정학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도발이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왕권교체 이후 안으로는 정치불안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경쟁상대인 이란의 부상에 따른 국제무대에서의 영향력 쇠퇴라는 난국을 맞아 국면전환을 위해 사우디가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영국 버밍엄 대학 스캇 루카스 이란전문 분석가 겸 국제정치학 교수는 4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알님르 처형을 통해 선을 넘었지만 이는 계산된 노림수”라며 무장조직 ‘알카에다와 같은 패거리로 알님르를 몰아넣었다는 것 자체가 시아파 종단에 모욕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2일 사우디 정부가 처형한 알님르는 중동 지역 ‘아랍의 봄을 주도하는 등 사우디 왕가에 매우 큰 불안 요소였다. 지난해 왕권을 이어받은 살만 국왕은 유가 폭락으로 경제위기론이 커지고 국민지지가 추락하면서 ‘쿠데타설 에 직면할 정도로 정권유지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시아파 상징인 알님르를 제거하는 것은 혹시 모를 반란을 제압하는 동시에 정권에 불만을 품은 다른 세력과 이를 후방지원하는 미국 등에 한꺼번에 강력한 경고메시지를 날리는 격이다.
이란 견제 의도도 숨어있다. 지난해 핵 협상 타결로 이란에는 경제재제 해제를 앞두고 서방자본이 물밀듯 유입되고 있다. 살만 국왕은 지난 9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이란 견제와 사우디 지원 등을 호소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사우디와 이란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내몰리자 중동내 수니·시아파 국가들도 일제히 상대방을 비난하며 대결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우디의 도발에 이란 시아파 수장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사우디를 ‘하얀옷을 입은 IS로 묘사한 모욕적 그림을 자신의 블로그에 내걸고 신의 복수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지도자 사이드 하산 나스랄라는 TV 연설을 통해 사우디가 ‘피의 메세지를 전한 것”이라며 종파 분쟁 불씨를 당겼던 이들이 다시 전쟁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최고 성직자 알 시스타니도 우리 형제들이 부당한 공격을 받아 순수한 피를 흘렸다는 보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보내는 슬픔과 애도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도 재결집에 나섰다. 걸프 지역 수니파 왕정 6개국의 모임인 걸프협력회의(GCC)의 압둘라티프 알자야니 사무총장은 테러리스트를 지원한 책임은 이란에 있다”며 사우디를 지지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 이집트 정부도 이란 시위대의 사우디 외교공관에 대한 공격을 공식 비난하고 나섰다.
종파갈등이 심화되면서 파리테러 이후 ‘슈퍼연합군 결성까지 거론됐던 IS격퇴 전선에도 균열이 불가피해졌다.
거대악 IS 퇴치를 위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시리아내에서 이란과 사우디의 지지를 받는 정부군과 반군간 내전양상이 심화될게 뻔하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수니파가 국민 다수지만, 시아파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다. 알아사드 정권은 정부에 반대하는 수니파 반군세력과 IS, 두그룹의 적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이번 일로 인해 알아사드 정부군이 IS 대신 반군격퇴로 ‘확 돌아설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예멘에서는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반군 후티가 수니파 정부를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가 지난 2일 휴전종료를 선언하면서 극심한 혼전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 이라크에서도 시아파 정부와 수니파 주민간 적대감이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IS에 승리를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당황한 곳은 역시 미국이다. 최근 이라크 라마디에서 IS를 완전 몰아낸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IS퇴치작전에 자신감을 되찾던 중 발생한 돌발변수이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는 올해 최우선 외교과제로 IS 퇴치를 꼽았고 유엔도 시리아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 협상을 이달 말 열기로 하는 등 대 중동정책에 각별한 힘을 쏟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일(현지시간) 한 미국 고위관료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와 이란이 아주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결국 IS퇴치전 뿐 아니라 시리아 평화도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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