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YS 떠났다…2015년 11월 26일 마지막 등원
입력 2015-11-26 16:07  | 수정 2015-11-26 16:24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외치며 폭압과 불의의 밤과 맞서 싸우시던 님의 그 사자후의 목청은 여전히 우리 가슴을 울리고 있는데 이제 왜 더 이상 아무 말씀이 없으신가요”
9선 국회의원을 지낸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등원하던 26일 국회의사당에 집결한 7000여명의 시민들은 말이 없는 그의 영정 앞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고인을 추모하기라도 하듯 그의 운구 차량이 국회에 도착할 즈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민주화를 향한 그의 험난한 인생역정을 추도하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의 추도사가 낭독되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의 생전 육성이 담긴 영상물이 상영되자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난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는 이날 오후 1시 50분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2시부터 거행된 영결식에는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가 주요인사, 각계 대표, 주한 외국대사를 비롯한 해외 조문사절까지 7000여명이 넘는 조문객이 참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날 영결식은 △국기에 대한 경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조사 △추도사 △종교의식 △영상상영 △헌화·분양 △추모곡 △조총발사 △운구행렬 출발 △폐식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정종섭 행장자치부 장관이 9선 국회의원과 14대 대통령을 지낸 고인의 약력을 보고한 뒤 장례위원장인 황교안 총리가 조사를 낭독했다. 황 총리는 조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국민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해오신 대통령님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황망한 마음을 가눌길이 없다”면서언제까지나 우리 나라를 지켜주시고 우리 국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 주시기 바란다”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고인과 함께 했던 상도동계의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추도사를 통해 고인을 떠나보낸 황망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 전 의장은 초산테러, 가택연금, 국회의원직 제명 등 혹독한 탄압이 중단없이 자행됐지만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 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대통령님의 숭고한 의지를 꺽지 못했다”면서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던 국민들의 가슴 속에 민주주의에 대한 비원이 아로 새겨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씨가 됐다”고 회고했다.
김 전 의장은 또 지난 닷새의 장례기간 빈소를 지키면서 금방이라도 환한 미소를 지어며 조문객 사이에 끼어 앉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시는 대통령님의 모습을 부질없이 상상해 보기도 했다”면서 전화벨이 울리면,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나, 김영삼인데요하는 대통령님의 음성이 바로 들릴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고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이어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 등 4대 종단의 종교 의식이 거행됐다.생전 고인과 각별한 친분을 나눈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를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화암 스님, 한국천주교 인천교구장 최기산 신부, 원불교 황도국 교무 등이 종교 의식을 집전했다.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리는 5분간의 영상물도 상영됐다. 미래 대통령을 꿈꾸던 고인의 중학생 시절부터 반독재 민주화 투쟁, 대통령 재임시 업적을 소개하는 영상물에 식장 분위기가 더욱 숙연해 졌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 아들 은철·현철씨를 비롯한 직계 가족을 시작으로 영결식에 참석한 각계 인사 대표단이 헌화와 분양에 나섰다. 추모곡으로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청산에 살리라를 바리톤 고성현 한양대 교수가 구리시립소년소녀합창단과 함께 불렀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차량은 ‘통합과 화합이라는 마지막 유훈을 남긴채 국회의사당을 떠나 자택이었던 서울 상도동을 거쳐 국립 현충원으로 이동했다.
[박승철 기자 / 김강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