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막다른 길 현정은 회장, 현대상선 매각 카드 꺼내나
입력 2015-11-10 17:49 

끝이 보이지 않는 해운업 불황 속에 정부가 좀비기업 구조조정 방침을 밀어붙이면서, 정부 도움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매각을 놓고 마지막 결단을 해야할 처지에 몰렸다. 정부는 현대증권 매각이 불발된 현대그룹에 더 이상 구제자금을 넣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 매각카드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10일 금융권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그룹 측은 그룹회생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책으로 ‘현대상선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그룹 경영진은 팔기 쉽고 규모가 적은 현대증권 매각을 추진했으나, 현재는 ‘증권 보유, 상선 매각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현대그룹 고위 관계자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영업이익도 좋고 잘 나가는 회사인데 현대상선에 돈을 퍼주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대상선을 빨리 처리하는 게 그룹 차원에선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분위기는 현대그룹과 함께 자구안에 대한 조율을 하고 있는 금융권에서도 감지된다.

현대증권 매각 딜에 참여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오릭스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에 접근하는 태도를 볼때 진심으로 매각할 의사가 없다는 추측이 많았다”며 지금은 그룹내에서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증권을 팔 경우 (그룹) 미래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어 증권 재매각 절차를 밟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은 영업이익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구책으로 핵심 사업부문까지 팔아치웠다. 해운업이 다시 호황을 맞더라도 천문학적인 부채를 갚을 여력이 사라진 셈이다. 여기에 그룹 알짜 계열사들 역시 현대상선 수익 악화로 덩달아 휘청이는 상황이다. 그러다보니 현대그룹이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 지분 매각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특히 현대상선은 내부적으로 ‘15척의 저주로 불리는 벌크선 고가용선 계약에 발목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업 활황으로 선가가 뛰던 시절 꼭지에서 장기 용선계약을 맺으면서 수익성 악화가 가속화됐다는 것.
현대그룹은 2008년 순이익 8920억원을 달성했지만 2009년 적자로 전환했다. 2013년엔 손실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 실적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현대상선은 2009년 영업손실 5760억원을 기록한 후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대상선은 2010년 3조 3000억원 규모 자구안을 마련하며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6000억원 규모였던 현대증권 지분 매각이 불발되면서 자구안 이행에 비상이 걸렸다. 산업은행으로부터 자구안을 ‘다시 세우라는 요청 이후 새롭게 계획을 세우고 있는 현대그룹 측은 ‘현대상선 카드를 꺼내들 전망이다.
현대상선을 처분하게 되면 현대그룹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현정은 회장으로부터 시작되는 지배구조 역시 단순화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상선->현대증권·현대아산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대글로벌->현대엘리베이터->현대증권·현대아산으로 축소되는 것이다. 부채비율이 높은 현대상선 대신 알짜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증권 대주주가 되면서 현정은 회장 지배력이 강화된다.
현대상선을 매각하겠다는 분위기는 최근 재계 구조조정 이슈 중심에 있는 현대상선이 발표한 공식 해명에도 감지된다. 언론을 통해 ‘한진해운-현대상선 합병설이 터진 직후 현대상선 측은 정부로부터 검토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현대상선 매각설이 언론에 보도된 후엔 상선 포기 등을 포함한 자구계획안을 산업은행에 제출한 적이 없다”며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방향을 잡긴 했지만 현대그룹 최고 경영진 선에선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해운업은 국가 기간사업으로서 개별기업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매각하기 어려운 산업이다. 안보와도 직결되는 산업이기 때문에 해외기업으로 매각하는 것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상선 매각은 개별 기업이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정부 차원에서 방향을 정해줘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전부 나몰라라하는 분위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한진, SK 등 국내 대기업들도 정부 지원이 없다면 현대상선을 떠안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범주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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