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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게 넓게 빨리?…선진국 주택정책은 ‘해피타운’으로 중심이동 중
입력 2015-11-04 13:08 
도쿄역세권 전경_2_도쿄도청제공

서울 김포공항에서 도쿄 하네다공항까지 비행기로 1시간50분 만에 도착한 뒤 20여분 급행 모노레일 등을 타고 내린 도쿄역. 출구를 나서니 돛을 모티브로 한 230m 길이 지붕을 얹은 도쿄역 역사(驛
舍) 양 옆으로 초고층 글라스타워 2개동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도쿄역 주변은 크게 동부역세권인 야에스와 니혼바시, 그리고 서부역세권인 마루노우치와 오테마치 등으로 나뉜다. 동·서역세권에 새로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자웅을 겨루듯 솟아 오른 모양새다. 도쿄도청에 따르면 불과 2~3년 새 10여개의 복합빌딩이 새로 들어섰다.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 전후로 도쿄를 상징하는 롯폰기 힐스(238m)보다 높은 61층(390m), 54층(250m), 45층(245m) 건물 등 10여개가 추가로 착공에 들어가거나 준공될 예정이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청은 도심개발 억제와 지역 간 균형발전이란 패러다임을 버리고 ‘콤펙트 시티로 도쿄를 재생하고 있다. 이 같은 도시 개발에 도쿄도청과 미쓰이부동산과 미쯔비시지쇼 등 민간 디벨로퍼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거대 프로젝트를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라고 부른다.
세계 주요 도시에서 행복한 마을 만들기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선두를 달리는 도시는 ‘마을 만들기의 교과서로 손꼽히는 도쿄다.
도쿄의 중심부인 도쿄역세권 개발이 대표적이다. 몇년 전만해도 교통 요충지이지만 낡은 역사와 오피스 건물 뿐이어서 사람들이 지나치거나 잠시 머물다 떠나는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용적률과 고도제한, 건폐율 등 규제를 없앤 도시재생특별지구(코이즈미 내각)와 국가전략특구(아베 내각) 지정으로 첨단 복합빌딩이 잇달아 들어서자 보도가 넓어지고 상점들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다시 모이는 핫플레이스로 탈바꿈하고 있다. 비즈니스, 주거, 상업, 문화, 교육 등을 결합한 초고층 복합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채우고 24시간 불꺼지지 않는 미래형 마을을 만드는 게 목표다.

도쿄도 부지사를 역임한 아오야마 야스시 메이지대 교수는 도시가 성숙해지만 사람들은 일 뿐 아니라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삶의 질을 높이는데 관심이 높아진다”며 20세기의 도시는 오피스, 주거, 상업시설 등 각각 분리된 하드웨어로 충분했지만 21세기의 도시는 문화와 예술, 교육, 환경 등 소프트웨어를 입혀야 하기 때문에 ‘마을 만들기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감소 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도심으로 유턴하는 트렌드를 적극 반영해 도시 한복판에 사람들이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도쿄는 지난 6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선정됐다(영국 모노클지). 2011년 9위에서 여덟 계단 껑충 뛰었다.
도쿄 주변엔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 실험도 진행되고 있다. 도쿄역에서 동쪽으로 38㎞ 떨어진 지바현 유카리가오카. 1971년 뉴타운으로 지정된 유카리가오카는 인근에 별다른 산업단지가 없는 전형적인 베드타운이다. 일본은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도쿄 외곽에 조성된 뉴타운 등을 중심으로 빈집만 벌써 800만채를 넘어섰다. ‘잃어버린 10년의 여파로 불황의 그늘도 짙다. 그럼에도 유카리가오카는 20·30대 인구가 계속 유입되고 집값이 오르고 있다.
비결은 민간의 힘이다. 유카리가오카는 정부나 지자체가 아니라 디벨로퍼인 야마만이 지속 가능한 마을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개발해 왔다. 1989~1990년 일본 경제 버블이 터지기 전 건설사와 시행사가 주택을 앞 뒤 따지지 않고 쏟아낼 때부터 지금까지 매년 200~300가구만 신규 분양하고 있다. 분양 후 철수하는 사업 모델을 일찌감치 접고 지역에 눌러 앉아 인구 증가와 시장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며 5년 단위로 마을에 필요한 부대시설을 짓고 운영하는 쪽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크고 작은 마을 만들기 움직임이 싹트고 있다. 대표적인 공동주택인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 맘즈·키즈카페, 도서관 등을 갖춘 대형 커뮤니티시설이 생기면서 단절과 폐쇄로 상징됐던 주거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주민들이 이웃이 되고 동호회를 만들면서 아파트에서 마을 공동체가 생기고 있는 것. 아파트 밖에서는마포구 성미산 마을처럼 개개인의 참여가 커다란 마을 공동체로 발전한 사례도 있다. SH공사는 미국과 유럽처럼 창업과 예술, 육아 등 공통 관심사를 가진 주민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이루며 사는 소셜 하우징(사회적 주택) 을 선보이고 있다. 시작은 우역곡절이 있었지만 신도시 조성의 최신 기술과 노하우가 집약된 세종 행정중심복합도시의 실험도 빛난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30년 넘게 개발의 시계가 멈춘 대한민국 교통의 심장격인 서울역세권과 기업들이 계속 떠나면서 공실률이 높아지고 있는 강남 테헤란밸리 등은 새로운 마을 만들기를 통해 생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도쿄처럼 미래형 고밀도 집적 개발로 강남북 도심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시장에서 창조기업과 인재,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대혁신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분당과 일산 등 수도권 1기를 비롯해 지방의 구도심 등은 지속 가능한 마을이라는 틀로 새로 짜야 한다. 올해 출범한 주택도시보증공사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전망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주택도시기금을 조성해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은 한국도 도시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재생 전략을 짜고 과감하면서 창의적인 마을 만들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한나 차장(팀장) / 김기정 기자 / 손동우 기자 / 문지웅 기자 / 김태성 기자 / 임영신 기자 / 신수현 기자 / 김인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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