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파리지엥의 맘 훔친 한국 할머니 ‘땐스’
입력 2015-10-08 14:36 
안은미의 ‘땐스’ 3부작중 한 장면

지난달 말 프랑스 파리에선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일반인 할머니 11명이 센 강변에 있는 ‘테아트르 르 라빌 대극장 무대에 올라 막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울릉도 트위스트 ‘백만송이 장미 등에 몸을 신나게 흔드는 할머니들의 몸짓에 진지한 파리지앵들도 어깨를 들썩였다. 국경과 문화, 언어의 장벽은 스르르 녹아 내렸다.
파리가을 축제에 초청된 현대무용가 안은미(53)의 ‘땐스 3부작 풍경이었다. 세 작품 중 60∼80대 할머니들이 출연하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는 단연 압권이었다. 단순한 몸짓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켜켜이 묻어 있었다. 이 화제의 춤을 서울 강남구 언주로 코리아나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은 여성 작가 12명과 남성 작가 1명이 참여하는 ‘댄싱마마전을 연다. 여기서 하이라이트 작품은 안은미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전국을 일주하며 할머니들의 즉흥 몸짓을 촬영·기록하고 이를 안무로 해석한 작업이다. 막춤을 추는 무대는 다양하다. 생선을 파는 시장통과 미장원, 정류장, 마을회관, 모내는 논 등 실제 삶의 터전이다.
팔을 앞뒤로 움직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굽은 허리에 몸을 흔드는 몸짓 등 세월이 만들어낸 몸짓은 그 자체로 무용이 되고 몸의 역사가 된다. 배명지 큐레이터는 할머니들의 몸의 현란한 움직임은 의미 없는 막춤이 아니라 역사와 삶의 기억이 축적된 인류학적 몸짓”이라고 해석했다.
안은미의 막춤 퍼포먼스는 달라진 페미니즘의 단층을 보여준다. 1970년대 여성 페미니즘 작가들의 신체 퍼포먼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해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몸짓으로 대응하는 ‘저항의 몸짓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이런 경향은 여성 작가들조차 페미니즘을 기피하게 만들어버리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댄싱마마 전은 이런 페미니즘의 전형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는 여성 작가들의 다양한 시도를 영상과 사진 작업에서 만날 수 있다.
한국 작가 홍이현숙의 ‘폐경의례도 웃음을 자아낸다. 작가 자신의 폐경 경험에서 출발한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영상 시리즈인데, 작가는 동네 현수막 게시대 곳곳에 ‘나의 몸이 폐경을 하였습니다. 당신의 폐경은 어떠신지요? 등의 문구를 쓴 현수막을 걸고 그 앞을 지나가면서 이를 사진에 담았다. 또 남의 집 담벼락에 올라가 거닐거나 축지법을 이용하는 것처럼 주택 지붕과 지붕 사이를 날아다니는 작가의 퍼포먼스를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폐경을 월경이 닫히는 것(閉經)이 아닌 경계를 허무는 것(廢境)으로 보는 작가의 확장된 관점이 담겨 있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여성 예술가들의 죽음의 순간을 다양한 퍼포먼스로 재현하고 이를 사진에 담은 독일 작가 클라우디아 라인하르트의 작품도 눈길을 끈다.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여성성을 표상한 로레 프로보스트 등 국내외 작가 13명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전시는 12월5일까지. (02) 547-9177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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